[성전강의실] 반야심경강의 15

성전강의실

2009-09-08     관리자

 實로 苦는 독자적 존재가 아니다. 고는 바라밀다의 몰각에서 일어난 妄覺이다. 실로는 없는 것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반야가 이르는 곳에 바라밀다가 현전하므로 고가 있을 까닭이 없게 된다. 다음에 관자재보살은 반야바라밀다는 「진실」 한마다를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眞言은 강력한 實現力 성공력을 보유한다. 진언이 가지는 이러한 성격상, 진언에는 신비한 내용이 담겨있다. 그것은 진리가 가지는 불가사의한 위력을 含藏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인간은 진리의 具存者며 그의 표현이기 때문에 그의 언어는 진언으로서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망념에 飜弄되기 때문에 그 위력이 감손 되었을 뿐이며 본질적으로는 진언이 갖는 功能成就의 가능성은 언제나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眞言驅使의 위력을 발휘하고 善用하도록 힘써야할 것이다.

呪는 呪文, 神呪,梵呪. 密呪라고도 한다. 梵語 Mantra의 번역인데 Mantra는 진언이다. Dharani라고도 하고 陀羅尼라고 적는다. 이때는 總特呪라고 번역하는데 모든 뜻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뜻이 강조된 말이다. 또 Vidya라고도 하는데 이때는 明呪라 번역된다. 呪는 번역하지 않는 것이 관례이다. 그것은 뜻이 모호해서 번역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2] 반야바라밀다주의 功能평가

 관자재보살은 반야심경을 맺는데 있어 반야바라밀다주를 說하기로 하고 呪를 설하기에 앞서 대체로 세 가지 각도에서 이 呪의 功能을 설명하였다.

 그 첫째는 내용면에서의 論斷이다 曰 『반야바라밀다는 이것이 大神呪며 大明呪…』라 하였다. 大神呪란 무슨 말인가. 범어의 maha-mantra이니 큰 진언이라는 말이다. maha란 大로 번역하지만 여기의 大가 단순한 大가 아님을 우의하여야 할 것이다. 大小 相對의 大가 아니다 대소가 없는 상대가 아닌 절대적 大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maha-mantra는 절대적인 本心本地 즉 바라밀다의 목소리며 말이게 된다. 근원진리의 言聲的 波動形態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그러므로 大神呪라 함은 반야바라밀다呪의 근본 성격을 밝힌 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반야바라밀다呪는 절대적 大인 무한의 함량을 가지고 있음을 밝히는 것이다.

 다음에 大明呪라함은 무엇인가. 이것은 일체완성, 一切廓通, 一卽一切, 一切卽一의 절대적 원융전일성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대립이 없다. 막힘이 없다. 是도 非도 없다. 무한허공을 태양이 찬연히 그 광명을 흩듯이 막힘없이 거침없이 일체에 무한으로 一通한다. 여기서 이 明呪는 바로 대진리의 全量的 表出임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그의 절대적 위력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外廷面에서의 論斷이다. (여기에 바라밀다의 外廷이라 함은 큰 語弊가 따르는 것이지만 말이 없으니 부득이하다. 설명에는 개념화가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성찰을 바란다.)

 관자재보살은 반야바라밀다呪가 『無上呪며 無等等呪라』말함으로써 唯一無二的인 神呪임을 말하였다. 無上呪는 上이 없다는 뜻이지만 下도 없는 것이다. 唯一者며 無二者인 때문이다. 만약 또 하나의 呪가 있어 이에 비교하여 설사 적은 것이라도 있다면 이는 이미 비교되는 또 하나의 呪만큼은 적은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 大 즉, 無上이 될 수 없는 것이니 여기에는 필연적으로 이 모두를 합하고 이에 초월한자 까지도 합한 또 하나의 大呪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반야바라밀다呪는 실로 절대적 無上이라는 말이다. 다음에 「無等等呪」라 함은 比할 데 없다는 뜻이다. 범어의 Asama Sama다. 전체적인 大이므로 다시 이와 비교할데 없다. 이로서 반야바라밀다呪의 외연적 규정은 다시 더 여지없는 완벽한 大로 설명되었다.

 셋째는 功用面의 評論이다.
 관자재보살은 반야바라밀다가 내용적으로 大神呪며 大明呪며 외면적으로 말하여 無上呪며 無比呪라 말씀하고는 다시 이 呪와의 功用面을 언급하기를 『능히 일체 고액을 없애고 또한 진실하여 결코 허망함이 없다.』 고 말씀하였다. 반야바라밀다는 일체고가 범접할 수 없다. 雨立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태양이 共立하지 못하듯이 반야바라밀다에는 고액이라는 어둠이 立할 수 없는 것이다. 光明이 가는 곳에 일체 암혹의 자취가 없어진다. 반야가 있는 곳에 광명스런 바라밀다, 즉 성취와 자재가 있을 뿐이다.

 實로苦는 독자적 존재가 아니다. 고는 바라밀다의 몰각에서 일어난 妄覺이다. 실로는 없는 것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반야가 이르는 곳에 바라밀다가 현전하므로 고가 있을 까닭이 없게 된다. 다음에 관자재보살은 반야바라밀다라는「진실」한마다를 강조하였다.

「眞實」이라 함은 공허하지 않음을 말함이다. 一切善功德이 충만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無限功法을 의미하며 바라밀다의 실질을 가르킨 말이다. 실로 반야바라밀다는 이「眞實」一句에 결론이 있다 하겠다. 이「無限眞實」을 현출하기 위하여 佛과 관자재보살이 등장하고 사리불이 동원되고 반야법륜이 열린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이「진실」일구가 가지는 絶對甚深微眇之意를 살피는 바 있어야 하겠다.

[3] 반야바라밀다주의 어구

 위에 보는 바와 같이 관자재보살은 반야바라밀다주의 총괄적인 공덕평가를 하고 이와 같은 대공덕의 寶藏이며 그를 開顯하는 秘鍵이기도 하는 반야바라밀다주를 설하게 된다.
呪에 이르길를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제사바하』라 하였다. 

 ① 呪의 原意
 呪는 원래 번역하지 않게 되어 여기서도 범어를 원음대로 음사하고 있다. 이것은 이른 바 五種不飜의 첫째로 그 뜻이 오묘하고 깊어서 생각이나 이론이 닿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呪가 갖는 문학적 原意를 살피기 위하여 억지로 말을 옮겨 보기로 한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