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 통하는 길밖에 없으리라

테마 에세이 /나의 껍질을 깨는 일

2009-09-04     관리자

나의 껍질을 깨는 일, 이것이 주어진 주제이다. 인간에겐 피부는 있어도 낍질은 없는데, 없는 껍질을 어떻게 깨는가? 그러니까 여기의 껍질이란 인간의정신적인 허물을 뜻한다. 뱀이나 매미의 껍질처럼 가시적인 허물이건 또는 인간의 불가시적인 정신적 허물이건, 허물이란 반드시 벗겨져야 하고 버려져야 마땅하다. 허물, 즉 껍질이란 생명의 신진대사에 따르는 찌꺼기인 까닭이다.
인간의 생명, 그것은 영원한 생명이 아니고 부단히 죽음의 위협을 받는다. 불과 70년의 그 유한한 수명이나마 유지하기 위해 인간이란 생명체는 필요한 음식물을 섭취하고 불필요한 찌꺼기는 배설하는 일을 죽을때까지 반복해야한다.
먹고, 마시고, 소화하고, 배설하고, 먹고, 마시고, 소화하고, 배설하고, ......그러나 이런 신진대사를 부담스럽게 여긴다거나 싫증을 낸다면, 그는 이미 어딘가 고장난 사람이다. 자연의 섭리에서 어긋난 사람이다. 배 고프면 먹고 찌꺼기는 배설하는 일뿐만 아니라 숨을 들이키고 내쉬는 일, 아침엔 일어나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자는 따위 모든 기거동작이 갖는 의미를 깊이 성찰해 볼 일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인간의 생명 또한 대우주의 운행의 묘리와 일치해 있다는 놀라운 사실에 눈뜨게 될 줄 안다. 더구나 인간에겐 육체만이 아닌 고차원의 정신, 마음, 영혼의 세계가 주어져 있음에랴. 인간은 작은 우주라는 사실, 인간의 신비는 우주의 신비임을 알만하지 않겠는가. 만물의 영장이란 이름에 걸맞게 인간은 각별히 자중자애할 필요가 있다.
자기관리를 잘해야 마땅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연의 섭리를 존중 할줄 알아야 할것이다. 순리를 어기면 인간의 육체에 고장이 생긴다. 생리현상에 이변이 일어난다.갖가지 기관 중 단 한군데만 발병이 되어도 몸전체가 불편해지고 급기야는 병든 부분을 찾아 내어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
육체의 고장은 필연적으로 즉각 정신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역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정신에 정체현상이 생기면 생체리듬에 이상이 온다. 정신의 정체란 즉 정신의 신진대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때 생기는 울적이다. 매사에 의욕을 잃게 되고 쉽게 권태를 느끼는 일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다. 자칫하면 심한 우울증의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
사방이 안보이는 두터운 벽으로 둘러싸인 느낌이다. 말하자면 이런 때 인간의 정신엔 타파해야 할 어떤 껍질이 생겨 있는 것이니라.생명의 본질이란,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간에 더할 나위 없이 유연한 것이고, 무구한 것이고, 유동적인 것이다.초목의 새싹이나, 골짜기의 맑게 흐르는 물, 또는 어린 아기들을 살핀다면, 이내 누구나 수긍되는 일이리라. 그러기에 인간이 늙는다는 것은 그 생명에 한계가 왔다는 신호인 것이며 죽음은 바로 그 종말인 것이다. 또한 그러기에 정신의 정체란 생명이 지닌 본질, 유연성은 경직되고 무구성은 오염되고 유동성은 정지된 상태를 의미한다. 정신의 찌꺼기, 정신의 껍질이 생기고 만 것이다.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애써 기분전환을 시도해 볼 일이다. 가벼운 실내운동, 단전호흡, 야외산책, 목욕을 한다거나 좌선을 한다거나....하다못해 도 닦는 마음으로 집안청소를 한다거나하여 심신을 서서히 풀어볼 일이다. 대개 어느덧 껍질은 깨지고 다시 매사를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되찾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근본적 치유책이 있다면 그것은 도 통하는 길 밖엔 없으리라.

박희진/1931년 경기도 연천 출생. 고려대 여문화글 졸업하고 1955년 <문학예술>지 추천으로 등단. 시집으로 <아이오와에서 꿈에> <라일락속의 연인들> <산화가> 등 11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