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눌 수 있는 즐거움

만남, 인터뷰 / 홍천 백락사 성민 스님

2009-09-02     관리자
‘백 가지 즐거움이 있는 절’ 백락사(百樂寺)는 주지인 성민 스님이 16년간 일군 절이다. 강원도 홍천 주음치마을에 있는 폐가를 토굴 삼아 살면서 한 해 한 해 가꾼 것이 백락사가 되었다. 삼천여 평의 아기자기한 도량엔 즐거움을 주는 볼거리가 백 가지도 넘는다. 설치미술 작품들이 도량 곳곳에 놓여져 있고, 선화당 앞 작은 연못과 도량 주위에 심어진 나무며 형형색색 꽃들과, 주위의 농작물들까지도 묘한 조화를 이룬다. 주변 산세와 어우러져 있으면서 저마다의 빛깔과 모양을 드러내며 무엇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스님이 깎아 만든 돌조각들도 보통솜씨가 아니다. 백락사 뜰 앞 스님이 만든 갸우뚱한 자화상을 보다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이제 막 캐낸 햇감자 같은 성민 스님을 꼭 닮았다.

땀 흘리며 일하는 것이 덜 미안해
성민 스님은 출가 한 지 10년째를 맞는 1993년에 강원도 홍천, 생면부지의 땅에 짐을 풀었다. 폐가에 온기를 불어 넣고 첫 겨울을 나던 그 다음해 봄부터 농사를 시작했다. 농사를 지어본 것은 아니지만 이웃에게 물어가며 고추, 옥수수, 감자, 상추, 오이, 케일, 고소, 토마토, 참깨, 들깨, 고구마 등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심어보았다. 약간의 시행착오는 있었지만 잘 자라주었다. 덕분에 지금도 절에서 먹는 부식은 거의 자급자족하고 있다. 배나무, 은행나무, 매실나무, 살구나무, 밤나무, 회화나무, 겹벚꽃나무, 대추나무, 호두나무, 꽃복숭아나무도 스님이 직접 심은 나무들이다.
아침예불 마치고 시작하는 농사일은 해질 때까지 계속된다. 이웃의 경운기를 빌려 밭 갈고 로타리 치던 것이, 지금은 포크레인까지 들여놓았다. 도량을 정비하고 농사를 짓고, 해마다 7~8월이면 찾아오는 어린이집, 유치원, 유아원 아이들의 캠프를 위해 백련사 앞 개울을 수영장으로 만드는 것도 스님의 몫이다. 거의 90도에 가까운 경사진 개울가에 포크레인을 몰고 들어가 널찍한 수영장을 만든다. ‘포크레인 기사노릇’도 달인의 경지다.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채 포크레인으로 도량을 정비하고 있으면 모르는 사람들은 말한다. “어디서 저렇게 일 잘하는 포크레인 기사를 구했느냐.”고. 시골절에 살다보면 웬만한 것은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에 못하는 것이 거의 없다.
“만사가 잡사라 해도 몰입할 수 있는 일거리가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아침저녁 예불시간과 법회가 없는 날에는 도량 이곳저곳을 손질하기도 하고 농사를 짓기도 합니다. 그렇게 땀 흘리며 일하는 것이 힘들게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덜 미안해하면서 사는 것 같아서요.”
하루 종일이 지나도 거의 말이 없는 스님은 부처님 전에 예불을 올리거나, 법회를 이끌지 않는 시간이면 무심히 피는 꽃처럼 농사꾼이 되었다가, 도량을 정비하는 포크레인 기사가 되었다가, 또는 돌을 쪼아 자화상도 만들어보고, 소대 옆에 서 계시는 지장보살님도 만들어보는 솜씨 좋은(?) 조각가가 되기도 한다. 그 일 자체도 좋지만 무엇보다 즐거운 것은 그렇게 얻어진 성과물들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며칠 전에 캔 햇감자는 선방과 미타암에 10박스를 보내고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조금씩 나누어주었다. 지천으로 여기 저기 떨어진 살구를 주워 먹는 재미도 솔솔하다.

나눌 수 있을 때 나누어야
성민 스님의 화두는 늘 이렇게 가까운 일상과 이어져 있다. 서 있는 그 자리가 불교의 현장이요, 생활 그 자체가 불교요, 포교로 이어진다. 근처 군법당의 요청으로 법회를 보면서 군 포교를 시작했고, 홍천불교사암연합회를 통해 지역 내 포교활동을 펼쳐왔던 일 등 스님의 화두는 생활불교에 뿌리를 내리는 일이다. 조계종포교원 신도국에 잠시 소임을 맡았던 인연으로 서울지방경찰청 경승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한 달에 한 번은 법회를 보고 있다.
가까운 춘천교도소와 인연이 되어 정기법회를 이끌다 최근에는 불교총괄지원을 계속해 오고 있다. 홍천군청불자회인 ‘미타회’의 지도법사를 맡게 된 것도 이곳에 사는 빚 갚음이라 생각한다. 법회 내용은 가능한 딱딱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짧은 순간이지만 함께 대화도 나누고 서로의 고민도 경청해 본다. 방문자가 많지는 않지만 백락사 홈페이지(http://www.100-happy.org)에 사진과 글을 올리는 것도 지인들과 나누는 공감의 창이 되고 있다.
산골마을에 살며 지역주민들을 포교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백락사 인근마을에는 대개가 노인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그나마 모두가 교회에 나간다. 교회 목사님이 마을까지 봉고차를 몰고 와서 노인들을 모두 모시고 가기 때문에 일요일이면 동네마다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다. 안 되겠다 싶어 거사림회를 만들었고, 매월 한 차례 법회를 꾸준히 지속하고 있다. 농번기에는 나오기 힘들기 때문에 외지에서 참배 오는 인연이 있으면 가능한 법회 일에 맞추어 오도록 하고 있다.
“내가 발 딛고 있는 이곳이 가장 소중한 땅이요, 지금 만나는 이 인연들이 가장 소중한 인연들입니다. 함께할 수 있을 때 나눌 수 있는 것은 나누어야지요. 백락사에 설치미술전이 시작된 것은 부처님오신날을 이웃과 함께 하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부처님오신날부터 2주일간 환경설치미술전 ‘일락전(一樂展)’을 열면서부터 였습니다. 백락사의 주변 환경을 캔버스 삼아 사찰 경내를 전시장으로 활용했어요. 전체를 작업공간으로 확대시켜 작품으로 만든 것이지요. 이렇게 외진 곳에 작가들을 모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다들 흔쾌히 응해주었는데 작가 선생님 중의 한 분이 거사림회 회원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백락(百樂)의 근원은 일락(一樂)

작지만 아름다운 절 백락사는 매년 가을 초입에 음악회와 백락사 경내를 배경으로 설치미술전을 열고 있다. 사찰 경내에 다양한 소품을 활용한 야외 설치미술전시회다. 오는 8월 22일부터 9월 12일까지 열리는 이번 설치미술전은 건국대 문화예술대학 이필하 교수와 홍익대학교 섬유미술 패션디자인과 정경연 교수를 비롯하여 설치미술, 조각, 공예, 섬유예술, 라이트 아티스트 등 25명의 중견작가가 다채로운 설치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다.
“종교와 상관없이 그저 백락사가 좋고, 뜻이 좋아 참가하는 작가들은 저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작품을 싣고 와서 구슬땀을 흘리며 작품을 설치합니다. 작품을 설치하는 분들이나 보시는 분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더할 나위 없는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어요. 작가들에게도 또 하나의 축제의 장이 되는 셈입니다.”
2006년 부처님오신날에 시작된 설치미술전은 해를 거듭하면서 지역문화축제로까지 확산되며 자리를 잡아갔다. 작품을 내주시는 분들이 대부분 대학에 계시는 터라 방학을 이용해야하기 때문에 전시회 날짜도 8월 말에서 9월 초 사이로 옮겨지게 되었다. 백락사는 오는 8월 22일부터 3주간 ‘살아있는 갤러리’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첫 해부터 한 번도 빠짐없이 백락사 설치미술전에 참여하고 있는 홍익대 정경연 교수는 “백락사의 좋은 산세를 배경으로 작가들이 함께 모인 것은 우리 미술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불교계로서도 새로운 기록으로 남을 만한 일이다. 산사음악회는 많지만 매년 이렇게 사찰에서 설치미술전을 열고 있는 경우는 전무하기 때문이다. 9월 5일 저녁 7시 백락사 경내에서는 명상음악회 ‘김영동의 달빛소리’와 도량 이곳저곳에 천 개의 촛불을 밝히는 ‘천등제(千燈祭)’가 열리게 된다.
“백락사에서 행복해 하는 미소를 보면서 우리가 사는 의미가 이런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서로의 종교를 떠나서 모두 함께 즐거울 수 있는 작은 시간들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사랑하고 즐겁게 할 수 있으면 그것도 부처님의 가피일 것입니다. 무엇을 할 것이라는 목표도 없었고 사명감도 없었지만 출가자로 살아가면서 해야 될 최소의 처신이 무얼까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어 봅니다. 백락(百樂)의 근원은 일락(一樂)이라고 생각하기에 한 사람의 소중함과 그 작은 정성이 지금의 백락사를 있게 한 것 같습니다. 처음처럼 사소한 주변의 일상들이 내가 바라보아야할 대상임을 기억하면서 한 사람에게도 소중한 백락사가 될 수 있도록 부처님께 기도드립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다. 백 가지 즐거움을 주는 절, 백락사의 즐거움 역시 꽃보다 아름다운 성민 스님에게서 피어난다. 설치미술전이 아니더라도 백락사는 오며 가며 한번쯤은 꼭 들러볼 만한 숨은 보석 같은 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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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 스님 _ 양산 통도사로 출가했으며, 출가한 지 10년째가 되던 해 강원도 홍천 주음치리의 폐가를 토굴 삼아 수행정진하며 백 가지 즐거움을 주는 절 백락사(http://www.100-happy.org)를 일구었다. 인근 군법당과 춘천교도소, 홍천군청, 서울지방경찰청 내 불자들에게 법음을 전하며, 매년 가을 초입에 백락사를 무대로 작은 음악회와 설치미술전, 천 개의 등불을 켜는 천등제를 열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물하고 있다. 새벽예불 후 듣는 산새 지저귐 소리가 가장 좋다는 스님의 화두는 일상 중의 즐거움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스님의 글 모음집으로는 『여유를 알면 삶이 아름답다』와 『우리 삶에 타인은 없습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