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불교 성지] 중국 선종사찰

중국선사들의 발자취를 따라

2009-09-02     관리자

 

▲ 남악 형산

중국을 여행하는 여러 코스 가운데 선종사찰 순례만큼 마음을 살펴볼 수 있는 길은 없을 것 같다. 일반적인 여행을 넘어 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선종사찰 순례는 스스로 선객의 멋을 담고 있는 듯한 묘한 착각을 들게 한다. 스님들 말씀에 선방의 문고리만 잡아도 3세의 악업을 끊는다고 했다. 이런 기분 좋은 인연을 담고 중국 선종사찰 순례를 떠나자.

달마에서. 혜능까지.

▲ 달마 대사 비석

중국 선종은 인도에서 넘어와 선종의 씨앗을 심은 달마 대사로부터 시작한다. 배를 타고 중국 광주에 도착한 달마 대사는 지금의 광효사에 머물다가 양자강 남쪽의 강국이었던 양나라 무제의 초청으로 남경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달마 대사는 자신의 공덕이 얼마나 큰가를 묻는 양무제의 질문에 ‘무(無)’라고 대답한 후 양자장 너머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지금의 낙양 등봉 숭산 중턱의 한 평 남짓한 동굴에서 때를 기다리며 구 년 동안 면벽 좌선을 했다.
은사 스님을 떠난 혜가가 달마 대사를 찾아왔던 것은 이 무렵이었다. 혜가는 오랫동안 달마 대사를 시봉하며 법을 구했지만 달마 대사는 계속 별 말이 없었다. 기다리다 못한 혜가는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왼팔을 잘라 보이며 달마 대사에게 법을 청한다. 감동을 받은 대사에게 혜가는 자신의 괴로운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때 달마 대사는 “괴로운 그 마음을 내놓아라.”라는 말을 하고, 이 말에 혜가는 깨달음을 얻는다. 혜가는 이렇게 해서 중국 선종사의 2조가 되었다. 그 후 혜가 대사는 법란을 피해 양자강 이남으로 옮겨 법을 펴다가 속가 나이 40이던 승찬을 만났다.

▲ 3조 승찬 선사

혜가 대사를 친견한 승찬은 죄업이 많아 평생 몹쓸 병에 시달린다고 했다. 그때 혜가 대사는 “그럼 그 죄업을 내놓아라.”라고 말했고, 이에 승찬은 대각을 얻어 3조가 되었다. 승찬 대 사는 지금의 잠산현 천주산 자락 삼조사에서 주석했다. 그 옛날 달마 대사가 양자강을 넘기 전에 들렀던 곳이기도 한 이 사찰에는 승찬 대사가 수행하던 동굴, 곡식과 엽전이 나오던 승전문곡, 대사가 서서 열반에 들었던 입화탑, 그리고 도신을 만났던 해박석이 있다.
승찬 대사가 삼조사에 머물 때 어린 도신이 그를 찾아와 “속박으로부터 해탈하게 해주십시오.”라는 부탁을 했다. 그때 승찬 대사는 “누가 너를 묶었느냐?”라고 물었고, 도신은 이 말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도신 대사는 스승인 승찬 대사를 시봉한 후 황매현 쌍봉산 사조사에 거처를 잡고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사조사에는 도신 대사의 등신불이 모셔진 비로탑이 있다. 이 탑에는 신라의 유학승이었던 법신 스님의 상도 모셔져 있어, 구법을 향한 그 옛날 신라 스님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현재 사조사에는 중국불교협회 부회장인 정혜 스님이 주석하고 있다.
오조 홍인 대사와 관련해서는 전설 하나가 전해진다. 어느 날 해질 무렵 쌍봉산의 늙은 도사가 도신 대사에게 찾아와 출가의 뜻을 밝혔다. 하지만 도신 대사는 “너는 이미 늙었으니 새 몸을 받아 와서 출가하라.”고 대답했다. 늙은 도사는 그날 저녁에 한 처자의 자궁에 들어가 아이로 태어났는데, 도신 대사는 어느 날 길에서 이 아이를 만나게 되었다. 그때 도신 대사가 이 아이에게 “너의 성은 무엇이냐?”라고 묻자 아이는 “성은 없고, 오직 불성만이 존재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한마디 말에 도신 대사는 그의 그릇을 알아보았는데, 이 아이가 오조 홍인 대사가 되었다. 30년 동안 스승을 시봉했던 홍인 대사는 약 20분 거리에 있는 동산에서 수행했는데, 문하의 제자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한다.
동산 오조사 입구는 그 옛날 혜능도 법을 구하기 위해 괴나리봇짐을 메고 걸어왔을 법한 옛길이 남아있어 선방의 문고리만큼 반가운 기분이 든다. 사찰에 들어서는 옛 다리에는 선객들의 마음을 잡아주었을 ‘방하착(放下着)’, ‘막착거(莫錯去)’와 같은 글귀가 쓰여 있다. 오조사는 참배할 곳과 볼거리가 참 많다. 곳곳에 신수 대사의 글귀가 남아있고, 홍인 대사의 홀어머니를 위한 성모전, 홍인 대사의 등신불전, 혜능 대사가 8개월간 방아를 찧던 방앗간, 혜능 대사가 홍인 대사에게 법을 받은 수법동이 남아있다.
홍인 대사에게 금란가사를 받은 22세의 혜능 대사는 40세가 되기까지 18년간을 산 속에 숨어서 지냈다. 그 후 혜능은 광주 광효사에서 삭발을 하고 광동성 소관 남화선사에서 제자를 양성하고 수행을 하다가, 열반 2년 전에 자신의 고향인 광동성 신흥현 국은사로 주석지를 옮겼다. 입구에 측천무후가 내린 편액이 걸려 있는 국은사는 혜능 대사의 부모님 합장묘가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혜능 대사는 이곳에서 입적했다. 하지만 혜능 대사의 진신상은 국은사가 아닌 남화선사에 모셔져 있어 눈길을 끈다.
“이제 금란가사를 전해 제자를 삼는 것을 그만두겠다. 선풍은 이제 강하며 많은 제자들이 법을 이을 것이다.”라는 혜능 대사의 말처럼 오늘날까지 선불교의 맥은 강하게 흐르고 있다.

▲ 삼조사 해박석
▲ 마경대

 

 

 

 

 

 

 

 

 


선사들의. 자취가. 명멸한. 땅.
남종선의 법맥을 이은 선사들의 활동지역은 대부분 오늘날의 강서성, 호남성, 안휘성, 절강성에서 찾을 수 있다. 특히 호남성의 성도인 장사 근교에는 선사들이 기거했던 여러 산들이 있다.
장사 남쪽에 있는 남악 형산은 남악회양이 기와를 갈아 보임으로써 제자인 마조도일로 하여금 깨달음에 이르게 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한데, 지금도 그곳에는 ‘마경대(磨鏡臺)’라고 불리는 바위가 남아 있다. 형산의 중턱에는 남악회양 선사가 주석하던 복엄사가 있고, 그곳에서 10분 정도 내려오면 황벽희운 선사가 주석하던 남대사가 있다.
장사에서 차로 2시간쯤 이동하면 영향현 위산에 도착하게 된다. 이 산 아래에 자리 잡은 밀인사는 영우 선사가 수행을 했고, 위앙종을 개산한 곳이다. 밀인사는 ‘선다일미(禪茶一味)’, ‘체용일여(體用一如)’와 같은 선차(禪茶) 화두가 탄생된 곳이기도 한데, 지금도 이곳에서는 차가 생산되고 있다.
장사에서 3시간 거리에 있는 석문현 영천선원은 원오극근 선사가 기거하며 『벽암록』을 집필했던 사찰이다. 원오극근 선사는 이곳에서 다선조정을 세우고 “차의 맛을 느끼는 정도가 향상할 만큼 불법의 지혜가 솟아난다.”는 말로 다선일미를 이야기하기도 했으니, 영천선원 역시 밀인사와 마찬가지로 차와 인연이 깊다고 하겠다.
이외에도 중국에는 선사들의 얼이 서린 여러 성지가 있다. 하북성 석가장에는 백림선사가 있는데, 이곳은 ‘끽다거(喫茶去)’, ‘뜰 앞의 잣나무’ 등의 유명한 선어록을 남긴 조주 선사가 머물렀던 곳이다. 이곳에서 1시간쯤 이동하면 임제 선사가 기거했던 임제사가 있다. 또 절강성 항주 인근의 경산은 『서장』을 쓴 대혜종고 스님이 주석했던 곳이며, 이곳에서 두 시간 거리에는 고봉원묘 스님이 머물렀던 천목산이 있다.
선사들이 수행했던 선적지를 참배하는 기쁨은 참으로 크다. 선사들의 흔적을 따라 가며 공안을 되새겨 보는 즐거움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고귀한 체험이다. 이제 그 많은 선사들의 공안과 찰나의 한 말씀을 내 마음속 병아리 부리에 쪼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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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국 _ 경기대 관광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조계종 포교사로서 불교성지순례 전문여행사인 아제여행사 대표와 배재대학교 관광이벤트학과 강사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