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만 부인의 설법과 수기

거사와 부인이 함께 읽는 불경 이야기 / 『승만경』

2009-09-02     관리자

장마가 지나고 더위가 몰려오자 모두들 휴가를 떠납니다. 그런데 대개의 휴가란 것이 이동 중에 이미 진이 빠지기 마련입니다. 목적지로 가는 길이 주차장이 되어버린 것을 보고 많은 이들이 집 떠난 것을 후회합니다. 차라리 집에서 가족들과 선풍기를 켜놓고 수박 한 통 나눠먹는 것이 더 좋을지 모릅니다. 나아가 “우리 모두가 성불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승만경』을 함께 읽는 것이 더 나을지 모릅니다. 우리 도반들은 이번 휴가철에 한 거사 - 부인의 집에 모여 승만 부인의 설법과 수기가 설해진 『승만경』을 읽기로 했습니다.

환정 거사 _ 오랫동안 신행을 해 오면서 재가불자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출가자가 중심이 되는 초기불교 및 부파불교와 달리 대승불교는 재가자 중심의 신행을 해 왔습니다. 이제 재가자도 출가자의 외호(外護)와 청법(廳法)에 머물 것이 아니라 깨침과 나눔을 행하는 수행자로 거듭나 보고자 합니다. 불교적 인간의 삶의 모델도 아라한상에서 보살상으로 전이되어야 합니다.

민락 부인 _ 당시에는 불탑 신앙의 흥기, 불전 문학의 탄생, 대승 경전의 편찬 등이 주요한 계기가 되었지요. 지금 역시 그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재가불자들의 올바른 위상을 확보해야 한다는 자각이 있어야겠지요?

만산 거사 _ 그렇습니다. 이제 수동적인 불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불자, 다시 말해서 배우는 불자가 아니라 행하는 불자로 바뀌는 것이지요.

정여 부인 _ 『승만경』은 본디 『승만사자후일승대방광방편경』(1권)입니다. 보리유지가 개역한 『대보적경』에 제48 승만부인회가 있지만 널리 알려진 것은 구나발타라가 번역한 것이지요. 대부분의 주석도 이 번역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범본은 산실되었지만 『보성론』 속에서 상당부분을 인용하고 있고 『대승집보살학론』 속에도 인용이 있어서 범본의 단편을 엿볼 수 있지요. 티베트역본은 『대보적경』 제48 승만부인회를 번역한 것입니다.

승만 부인 _ 『승만경』은 ‘모든 존재들은 여래의 본성[如來藏]을 지니고 있다’는 여래장계 경전(『여래장경』, 『부증불감경』 등)의 중심입니다. 이 경전은 사위국의 파사익 왕과 말리 부인이 딸인 승만 부인의 보리심을 일으키기 위해 편지를 쓰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승만 부인은 부처님께 귀의한 뒤 10대 서원과 3대 원을 세웁니다. 다시 하나의 큰 원인 정법(正法)을 받아들이는 원을 설하려고 하자 부처님이 이것을 기쁘게 받아들여 듣기를 허락한다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요. 승만 부인은 삼승(三乘)의 가르침이 모두 대승의 일승(一乘)에 귀일한다는 것, 중생이 모두 번뇌에 싸여 있지만 본성은 청정무구하여 여래와 같은 성품을 갖추고 있다고 제시합니다.

시당 거사 _ 『승만경』의 일승사상은 『법화경』의 일승사상을 계승한 것입니다. 특히 『승만경』은 재가의 부인으로 하여금 그 법을 설하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마경』과 함께 재가주의를 표방하는 대표적인 경전이지요. 종교인의 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경전은 독특한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때문에 『승만경』은 대중들에게 널리 보급된 친밀한 경전이지요.

덕만 부인 _ 흔히 여인의 몸에는 다섯 가지 장애가 있어 범천왕, 제석, 마왕, 전륜성왕, 불신(佛身)이 되지 못한다는 ‘여인오장설’의 관점에서 보면 이 경전은 파격적입니다.

청화 거사 _ 『법화경』에서 사리불은 ‘여성은 성불할 수 없다[女人不成佛]’는 말로 종래의 여인오장설에 대해 정리한 후, ‘여인은 남성의 몸으로 변한 뒤에 성불할 수 있다[女人變性成佛]’고 진전된 설명을 합니다. 그 예로 용녀(龍女)의 성불을 거론하고 있지요. 하지만 이것은 사실 여성의 성불이기보다는 남성의 성불일 수밖에 없습니다.

공덕 부인 _ 그런데 『승만경』에서는 여인인 승만이 설법을 하고 부처님으로부터 보광(普光)여래가 될 것이라는 수기(授記)까지 받습니다. 이것은 남성의 몸으로 변하지 않더라도 여성의 몸 그대로 성불한다는 ‘여성즉신성불설(女人卽身成佛說)’이지요.

환정 거사 _ 『승만경』은 ‘올바른 가르침[正知]’을 ‘대승’이자 ‘대승의 바라밀’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성문과 연각과 보살 삼승 중의 ‘대승이 곧 일승’이라는 관점이지요. 여기서 대승은 곧 불승(佛乘)을 말합니다. 이것은 삼승 밖에 따로 일승을 세우는 『법화경』의 시각과는 다르지요.

정여 부인 _ 승만 부인은 “대승은 곧 불승입니다. 삼승은 곧 일승이기에 일승을 얻는 이는 위없이 바른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바른 깨달음[阿?多羅三貌三菩提]은 열반입니다. 열반은 곧 여래의 법신입니다. 구경의 법신을 얻는다는 것은 곧 구경의 일승을 얻는 것입니다. 법신은 여래와 다르지 않고, 여래는 법신과 다르지 않으므로 여래가 곧 법신입니다. 구경의 법신을 얻는다는 것은 구경의 일승을 얻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만산 거사 _ 그러니까 이 경전은 대승, 불승,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열반, 구경법신, 구경일승, 여래를 모두 같은 뜻으로 설합니다. 이러한 이치는 인간과 천인, 성문과 연각 등은 알 수 없으며 오직 부처님만이 알 수 있는 것이지요.

공덕 부인 _ 이 여래장사상은 『법계무차별론』과 『보성론』, 『무상의경』과 『불성론』, 『능가경』과 『기신론』에서 수용되고 발전되었지요.

시당 거사 _ 여래장 사상은 인도와 서역을 거쳐 중국에 와서 종합됩니다. 지론종 남도파와 북도파의 대립 역시 여래장에 대한 해석의 차이 때문이지요. 즉 지론종 남도파에서는 아뢰야식(阿賴耶識)을 정식(淨識)으로 이해하고 8식설을 취한 반면, 북도파에서는 아뢰야식을 진망화합식(眞妄和合識)으로 인식하고 9식설을 취합니다. 이것은 제8식을 망식으로 하고 제9식을 진식과 청정식으로 하는 것입니다.

덕만 부인 _ 여래장에 대한 논의는 『대승기신론』에 와서 절정을 이룹니다. 원효의 『대승기신론별기』와 『대승기신론소』에서 거론하는 일심(一心)과 심진여(心眞如)-심생멸(心生滅)의 구도 및 체상용(體相用) 삼대(三大)의 배대 등에 의해 극대화됩니다. 원효의 영향을 크게 받은 중국의 법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소승교-대승시교-대승종교-대승돈교-대승원교의 5교(10종)판을 세운 뒤에 후기 저작에서 원효의 4교판에 영향을 받아 다시 수상법집종(소승교 1종~6종), 진공무상종(대승시교 7종), 유식법상종(대승시교, 10종판에는 없음), 여래장연기종(대승종교 8종)의 4종판으로 교판을 수정한 뒤 화엄까지도 여래장연기종에 포함시켜 버립니다.

덕만 부인 _ 나아가 법장은 일심(一心)과 여래장(如來藏)을 합친 ‘일여래장심’(一如來藏心)이란 술어도 만들어냈지요.

만산 거사 _ 그렇습니다. 이 기호는 7~8세기 동아시아 사상계를 관통하는 주요 개념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여래장’과 ‘아뢰야식’과 ‘일심’을 어떻게 연결시키느냐의 문제였지요. 이것은 인간의 심연과 세계의 본질에 대한 깊은 탐구 과정에서 생겨난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정여 부인 _ 이 팔식구식(八識九識) 논변은 부처와 범부의 경계를 갈라 볼 것인가(9식론) 아니면 함께 볼 것인가(8식론)의 문제로 집중됩니다. 이를테면 “나는 이미 한 소식을 했는데 감히 누가 나를 가르쳐?”라는 아만심을 갖는 이에게는 ‘너는 아직 진망화합식 속의 진식을 경험했을 뿐이니 8식 바깥의 아마라식을 얻도록 해야 한다.’라며 수행을 촉구하는 것이지요. 반대로 “나 같은 사람이 감히 어떻게 부처가 되겠어?”라는 자굴심을 갖는 이에게는 ‘망식 속에 사는 너나 진식 속에 사는 부처나 모두 팔식을 지니고 있으니 어떠한 인식의 전환을 통해 망식을 진식으로 전환시키면 너도 부처가 될 수 있어.’라며 수행을 촉구하는 것이지요.

민락 부인 _ 결국 『승만경』은 『유마경』과 함께 부파불교의 출가 중심주의와 형식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재가 중심의 수행을 강조하고 있지요. 여래장사상을 역설하는 이 경전의 특징은 일상생활을 통한 수행의 강조와 현실참여를 통한 대중 구제의 강조에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승만경』은 대승불교의 지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경전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지요.

도반들과 『승만경』을 함께 읽으며 휴가를 보낸 것은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불자의 정체성은 ‘배우는 나’에서 ‘행하는 나’로의 전회를 통해서 확립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 부처님 전기 1권 이상을 수지 독송하고, 2) 불교사전 1권 이상을 구비 탐구하고, 3) 불교관련 신문 1종 이상을 정기 구독하고, 4) 불교관련 잡지 1종 이상을 구매 탐독하고, 5) 가까운 사찰의 정기법회에 참석해야 합니다. 이들 다섯 가지는 불제자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인식틀을 확보하는 지름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