蓮塘의 소낙비

*보리수 그늘

2009-09-01     관리자
 나는 어린 시절부터 무척이나 비를 좋아라 했다. 어머니의 꾸중으로 훌쩍거리다가도 빗소리가 들려오면 그런 눈물은 금시에 가셔지고 나는 아주 반가운 동무나 찾아온 듯 그를 따라 나서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들길이고 산 위이고 마구 쏘다니며 정말 신들린 아이처럼 놀아났기 때문에 나중엔 몸살이 나서 고열에 시달리기까지 했는데 그것이 오늘에 와서는 사뭇 즐거운 추억이다. 그래서였을까. 내 회갑 때 나온 《노석시선집》을 보면, 비를 노래한 것이 세 편이나 실려 있다. 그런데 사람은 오래 살고 볼 것이, 그 시집이 나온 지 1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나는 참 기막히게 좋은 빗소리를 듣고 또 보게 되었다.

 내가 본 한국의 연못 중에 전주의 시립 공원인가 하는 거기의 연당이 최고라고 생각된다. 지난 여름, 나이가 들수록 더해가는 나의 방랑벽(放浪癖)으로 하여 바랑을 둘러메고 전라도 쪽으로 구경을 나섰다가 전주에 발길이 닿았다. 전주라고 하면 우리나라 팔도강산에 있어서 그 풍물과 음식으로도 오래부터 이름난 고장이지만 인심 또한 두드러지기에 정이 간다. 오후 일곱 시쯤이었을까. 아직도 한 발이나 넘게 남아 있는 눈부신 햇살 아래 나는 거기 「연정」이든가 하는 수만 평으로 펼쳐진 연못 속으로 밀고 들어 서 있는 주점의 구석 자리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먹장구름이 모여 들더니 와르르 바람을 실은 소낙비가 쏟아지는 것이었다. 혼자 앉은 외로운 나그네의 술자리인데 나는 진정 이러한 나를 알아주는 가장 다정한 벗이라도 찾아온 듯 반색을 했다. 수만 평의 연당 위에 내리는 소낙비 소리! 그것은 대단한 풍류(風流)이었다. 바람결에 흔들대는 수백만도 될 성 싶은 연잎 위에 뛰노는 빗방울! 거기 자욱하게 일어나는 물안개! 그것은 흡사 짙푸른 바다의 파도 위에 내리는 비를 연상케 했다. 녹청(綠靑)의 빛깔이 더욱 선명해지는 연잎 사이사이에 연분홍 정정(淨淨)히 피어 있는 꽃봉오리! 이러한 빛깔의 깊은 의미야 내 어찌 알까마는 소박하고 은은하고 그지없이 깨끗한 그 빛깔, 그것만으로도 나의 마음은 크게 세심(洗心)이 되었고 무한히 기쁘고 무한히 감사했던 것이다.

 빗방울은 더욱 굵게 떨어지는데 더욱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수백만의 그 연잎들이 제각기 함지박 같은 그 커다란 잎 위에 고여 드는 빗물을, 춤추듯 흔들흔들 하다가도 꼭 물레방아 함지가 물이 가득 차면 쏟아내듯 그렇게 유유히, 차면 쏟고 안차면 그대로 흔들거리고 그러다가 차면 또 쏟아 내고 있었다. 그것은 무엇 하나 잘못되는 것도 애태우는 것도 없는, 유유자적(悠悠自適)한 품격자의 태도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것이어서 황홀한 속에서도 경건히 옷깃을 여미게 했던 것이다.

 연꽃이나 연잎이 다 같이 저러한 진니(塵泥) 속에서 피어나면서 어떻게 저렇게도 깨끗할 수가 있는 것일까? 어떠한 벌레의 침식도 용납되지 않으며 장미 같은 진한 향기도 내어 뿜지 않는 청향(淸香)의 은근함이여! 거기는 벌나비 떼의 극성도 얼씬을 못하게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무구(無垢)함을 어떻게 사람의 말로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그 날의 감동이 어느 때 가서 한편의 시를 낳게 될지는 모를 일이나 아무튼 나는 도연(陶然)히 술잔만 거듭하고 있었는데 그러는 동안 얼마만한 시간이 흘렀을까, 그렇게도 억수로 퍼붓던 소낙비는 간다 온다 소리도 없이 훌쩍 떠나 버리고, 연당은 짙어오는 모색(暮色)으로 하여 숙연(肅然)히 정적(靜寂) 속으로 잠겨 드는 것이었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했던가. 그래 나도 떠나 갈 차비를 서둘렀건만 무엇인가 미련이 남아 지금까지 그날 그때를 뒤돌아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