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 청소년의 비행 심리와 불교의 역할

□ 특집 . 불교의 청소년 교화

2009-09-01     김병옥

1]비행의 요인과 심리

  근자의 비행연구를 보면 대개가 비행발생의 원인 또는 요인을 해명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감이다.  사실 비행의 대책은 올바른 요인의 해명 없이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이 것이다.  그러나 원인을 규명했다고 해서 다 되는 것도 아니어서, 그 원인의 제거가 여기에 뒤 따라야만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원인의진단은 가능하나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비행문제를 들고 여러 분야에서 떠들고 있는 형편이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진단과잉만 있지, 여기에 결부된 치료가 부재하다는 섯이 현실이다.  비행의 요인 또한 단일(單一)한 것이 아니다.  한사람에게 있어서의 비행의 요인이 다른 사람에게 있어서의 비행의 요인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요인만 나열식으로 늘어놓는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그 요인의 동력(動力)이 무엇인가를 규명해야만되는 것이다.

  나는 평소에, 비행은 성장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인간──인격이 성장하듯 비행──그 요인도 성장한다는 생각이다.  성적이 낮다는것은 단순히 「성적이 나쁘다」는 것 뿐이지 비행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아이가 정당한 취급을 받지 못하고, 즉 정상적인 성장을 위한 적절한 지도를 받지 못하게 되면, 커가는 과정에서 자연히 학교가 싫어지고, 집에가도 공부 독촉 받기가 싫어서, 되도록이면 도로상에서 오래 지체하고, 귀가를 늦추며 과자도 훔치게 되고 나쁜 아이들과 사귀게 마련이다.

  결국은 또래끼리 합쳐서 마땅치 않는 일도 꾸미고 비행도 저지르게 된다.  현재 비행의 일반적인 경향을 통계적으로 보면 대부분 폭력화, 집단화 성적비행(性的非行)등인 것으로 나타나 있다.  비행집단을 조사해보면 그 집단의 특징이 봉쇄적, 페쇄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집단내의 단결은 강하다.  이것은 집단의 자기방위라는 이해관계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강한 요인으로는 성원(成員)끼리 느끼고 있는 심정적인 깊은 이해와 친근감, 유대감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비행은 이상과 같은 요인을 내포하면서도 크게 나누어서 두가지로 볼 수가 있다.  환경적 외적요인과 인간적 내적요인이다.  이 중에서 환경적.외적요인은 통계나 조사에 의하여 비교적 상세히 밝힐 수 있는 일이지만 인간적. 내적요인은 쉽사리 구명될 성질의 것이 못된다.  앞의 것이 사호의 병에서 오는 것이라면 뒤의 것은 내 마음의 병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역동적(力動的)인 여러 요인의 내면적인 조화를 고려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옥의 구조나 문화시설 따위의 숫자로써는 절대적으로 풀지 못하는 것이고 보면, 청소년들이 가장 흥미를 갖고서 추구하는 목표와 관심, 생활속에 있어서의 희열을 느끼는 내용, 생화과 노동에 대한 사고방식 등, 그들의 일상적인 생활의 다이나믹스가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비행의 심리란 바로 이 인간적. 내적 요인들을 말한다.  여기에는 흔히 논의되는 신체와 정신의 불균형성숙이 등장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신체적인 발달과 성적성숙(性的性熟)을 촉진하는 요인은 상대적으로 상당히 미약하다.  따라서 사회성이 풍부한 인간보다는 동물성, 수성(獸性)이 강한 인간이 많아진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문화의 진보, 문화의 진전에 비하여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은 남겨두고 문명과 문화만 달리고 있는 꼴이다.

  요사이 비행심리를 연구하는 추세속에서 두드러지는 것이 적응이론의 입장에서의 연구이다.  간단히 말해서 비행을 개체와 환경과의 부당적응(不當適應)으로서 파악하는 것으로서,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욕구불만의 해소로서 부당적응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항 욕구불만 곧 부당적응이 아니고 욕구불만에 대한 내성(耐性)이 함양되어 있으면 부당적응은 일어나지 않으므로,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비행을 방지하는 것이 아니라 욕구에 대한 내성의 훈련, 육성이야마로 비행방지의 정도(正道)라는 주장이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필요한 적당한 훈련만 선행된다면 비행은 어느 정도까지 방지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내성을 키우는 것만이 비행의 대책이랄 수는 없는 일일게고, 이것은 오로지 교육 전반에 걸친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2]指導.治療.豫防으로서의 佛敎의 役割

  인간성이라고 하는것은 참으로 부가사의한 측면을 갖고 있따.  그러므로 영원한 연구과제로 남은 것인지도 모른다.

  가령 여기에 간단한 이런 예가 있다.  한 소년이 흔히 있는 과정──가출, 방랑 그리고 비행집단의 참가라는 길을 걷게 된 이야기다.  애당초 부모와의 사소한 언쟁으로 그는 집을 뛰쳐나왔다.  해가 저물고 잠잘 곳도 없어 마음은 외로워지고 배도 고픈 상황에 있을 적에, 누군가 옆에 와서 「배가 고프겠구나, 먹을 것을 줄테니 같이 가보지 않겠어?」하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왔다.  나중에 한 그의 말은 「저승에서 보살을 만난 느낌이었다 」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부량배에 속하는 한 똘만이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의 정과 은혜를 잊을 수 없어 그 무리에 가담하게 되고 동지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게 되었던 것이다.  부모에게 대해서는 정과 은혜를 느끼지 못해도 우연히 만난  한 사람에게 강한 정과 은혜를 느낀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풀이해야 좋을 것인가.  장(場)과 상황, 심정적인 여러 설명의 자료야 있겠지만, 그러나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남은 것은 어찌된 일인가.

  우리는 비행지도(非行指導)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문제 삼아야 할 것이 있음을 안다.

   그 하나에 비행청소년이 그렇지 않는 다른 청소년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같은 인간이라는 점이다.   비행요인으로써 유전과 소질이라는 선천적 요인이 문제 되겠지만, 최근의 많은 연구는 이거슬 전혀 부정을 하지는 않지만, 결정적인 것으로는 보지 않고 있다.  다만 사회적 인자(因子)로서의 친자관계(親子關係)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고, 다음에 선의의 교육적 의도가 충만해야 할 학교생활 속에서 많은 요인을 추출(抽出)하고 있다.  비행의 예방문제는 좋은 교육에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여기서 좋은 교육이란 아이들이 현재의 생활 속에 충족감을 느끼고, 삶에 대한 보람을 갖고서 전인(全人)으로서의 성장을 성취해 주도록 하는 일이다.  우리의 사회형편으로는 이러한 분위기를 가정이나 학교에 기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여기에 불교의 교리가 갖는 특질으로서의 관용심(寬容心)을 바탕으로 조직적으로 정열적으로 학교와 가정에 스며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인간형성을 위한 도야가치(陶冶價値)로서의  이 불교정신은 영원한 당위적인 의의를 갖는 것이다.  무명번뇌(無明煩惱), 아욕아집(我慾我執)의 범부로서의 자신의 모순과 한계성을 자각함으로써 남의 허물과 실수를 너그럽게 감싸주는 아량이 생기는법.  이러한 자가과 관용의 세계에서 생명의 공존성(共存性)이 생기고 일체중생(一切衆生)이라는 심경속에서 이른바 사회인으로서의 가장 중요한 사회연대감(Solidarity)의 바탕이 생긴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개인적인 마음의 병이 비행심리의 대상이고 보면 불교의 이러한 교리체득(敎理體得)이야말로 오늘날 청소년지도의 혼돈속에서 방향을 제시해주는 유일한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