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강의실] 반야심경 강의 8

2009-08-31     관리자

인간과 천상중생은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현상적 유인 물이나 심에 떨어지지 말고 바로 만인 본생인 청정본연의 대바라밀행을 전개할 뿐이다.

5) 實相空과 五蘊
<經 文>
이 까닭에 공 가운데는 색이 없고 수상행식이 없으며...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앞에서 삼종의 다르마를 말 하였거니와 이하에서 삼종(법)을 다시 상기해 주기 바란다)
필자는 현상의 무를 의미하는 현상공(오온공)과 현상이 아닌 실상의 자재원만성을 의미하는 실상공을 앞서 일언한 바 있다.
그러면 여기에 (空 가운데는...)한 공은 여느 공을 말한 것일까? 만약 전자의 공을 가리킨다면 이 공은 색은 아니되 그래도 하나의 有(존재)인 공을 의미하게 된다. 그렇다면 공의 본래의 의미인 o(영)과는 어긋난다. 여기서 불가불 후자인 공 즉 실상공을 의미한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즉 제일의 Dharma다.
그래서 이 실상 즉 바라밀 본지에는 색이라는 범부가 이해 하는바 일체 물질적 존재는 없는 것이며 또한 수상행식 등 정신적 일체 작용도 없는 것이다.
이와같이 五蘊의 無를 거듭 거듭 강조하는 것은 범부는 오온 현상에 첩첩으로 매여있고 오온 밖에는 그 인식이 미치지 못하므로 오온에 대한 집착력은 절대적이다. 이 집착만 버리면 곧 실상본지인 자기진면목을 보게 되는 것이므로 “五蘊空”에 대한 해석이야말로 범부성 해설의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6) 바라밀다와 십이처. 십팔계
<經 文>
안.이.비.설.신.의도 없고, 색.성.향.미.촉.법도 없으며 안계 내지 의식계 까지도 없다.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1. 六 根
사람에 있어 인식기관이 여섯이 있으니 안이비설신의가 그것이다. 이것이 범부가 외부와 접촉하는 창구며 촉각이다. 안이라 함은 뛰어난 작용이 있다는 뜻인데 그래서 육근이라 한다.
시각,청각, 후각,미각,촉각 ,분별각을 감각하는 감관과 그 기능을 총칭한 말이다.
이들이 외계대상을 잡아 안으로 心內에 인식작용을 일으킨다. 안구, 고막 등 육체적 기관을 부마근이라 하고 육체내부에 있어 육근으로는 볼수 없으나 실지 대경을 잡는 작용을 하는 것을 승의근이라 하는데 제대로 말하면 이 승의근을 근이라 할 것이다.
육근중 전오근(안이비설신)은 감각기관이고 그 체는 물질을 본질로 하는 이른바 색법이다. 그래서 색근이라 한다. 그러나 의근은 물질이 아닌 心法이다. 그래서 무색근이라 한다. 이 의근은 다른 오근과는 다른 독특한 위치에 있다. 전찰나의 육식이 변하여 없어지며 다음 찰나의 육식이 생기는 중간역할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육식이 생 하려면 반드시 의근을 所衣(通依)f 하여야 하며 다른 五識은 각각 특정한 根(別依)이 있으나 意識은 意根을 소의로 할뿐 다른 별의가 없다.
이와같이 六根을 살펴 볼 때 전오근은 근원적으로 색법 즉 물질로 이뤄진 것이며 의근은 심법이다. 육근의 근원은 오온이므로 이를 오온과 상관하여 볼 때 전오근은 색이요, 의근은 정신작용이니 이것은 受, 想, 行, 識이다.
앞에서 누누이 살핀 바와 같이 五蘊은 空이었다. 바라밀 본지 즉 實相에서 볼 때 오온은 없고 따라서 그의 복합체인 육근이 없는 것이다.

2. 六 塵
육경이라고도 한다. 육근의 對境이다. 즉 안근.이근.비근 등등의 대경인 색경,성경,향경,미경,촉경,법경 이다.
육경을 六塵이라 하는 것은 이것이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색경에는 빛깔과 장단방원 등 形色이 있고, 聲境에는 생물성과 비생물성, 有意味聲과 無意味聲, 快, 不快聲이 있고. 香境에는 好, 惡, 過, 强 등 구별이 있고 味境에는 若甘幸鹹 등이 있고 觸境에도 신, 濕, 軟, 動 등 여러 차별이 있다. 法境은 널리 말하면 일체법을 말 하겠지만 줄여 말하면 意根의 對象을 가리킨다.
그러면 이 六境은 어떤 것인가?
六境은 모두가 色法의 전개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것 역시 실상 바라밀 광명 앞에서 無일 수밖에 없다.

3. 六 識
識이라 함은 外境을 식별하고 인식하는 작용인데 마음을 작용면에서 본 이름이다.
즉 六根을 근거하여 육경을 대 함에서 見. 聞. 嗅. 味. 觸. 知의 3別 작용을 하는 안식, 이식, 비식, 설식,신식, 의식 등 여섯가지 심식을 말한다. ( 이 육경의 체는 하나 인데 그 작용은 여섯인 것을 비유하여 六窓一猿(육창일원)이라 하는데 이것은 육식이 또 다른 근본되는 식이란 아리아식을 의미한다.)
이 육식의 존재성은 어떠한가? 이미 보아온 바와 같이 육근 육경이 없는 것인 바에야 이 근 경을 의지하여 생한 別作用인 식이 있을 여지가 없다.

4. 십이처(十二處)
범어로 ayatana인데 생장시킨다는 뜻이다. 즉 마음이 작용을 일으킬 所依處가 되어 그것을 기르고 생장시킨다는 말이다. ayaeana는 육근과 육경이 이것이다. 이미 보아온 바와 같이 육근은 주관에 촉한 감각기관 이므로 이것을 六內處라 하고 육경은 感知되는 대상으로서 객관에 속하므로 六外處라 한다. 이 십이처가 일체법을 총괄 하는 것이다.

5. 십팔계(十八界)
界는 범어의 Dhatu로써 종류의 뜻이다. 십팔은 육근과 그 대경인 육경과 이것을 연하여 생긴 육식을 합한 것이다. 이들에 각각 계(dhatu)를 부치는 것은 이들이 각각 독립한 성질과 작용을 가지며 존속하기 때문이다. 즉 눈이나 귀는 각기 독립된 작용을 한다. 그리고 결코 서로 대신 하지 못한다. 눈으로 소리를 듣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 십팔계가 인생의 총체라 할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 십팔계의 존재성은 어떠한가? 십팔계를 오온에 配對해 보면 정확 해진다. 즉 意根界를 제한 안계.이계.설계.신계. 등 오근계와 색.성.향.미.촉.법 등 육경계는 이것이 색온이다. 그리고 수.상.행의 삼온은 법계(법경계)이고 (법계의 일부는 색온) 識薀은 意界(의근계)와 안식계, 이식계, 비식계, 설식계, 신식계, 의식계 등 육식계가 이것이다.
우리는 이미 오온은 (空)임을 철견(徹見) 하였다. 그러므로 五蘊의 분화복합상인 십팔계가 (공)임은 다시 논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經에 “眼界도 없고 내지 意識界까지도 없다” 하심은 바로 이를 말씀 함이다.

6. 십팔계공이 의미하는 것 (十八界空)
범부에 있어 十二處 十八界가 그의 모두다. 生이라는 존재성도 그 안의 일이고 苦樂, 美醜(미추), 성패도 십팔계의 일이며 생사의 의미도 영원도 가치도 모두가 십팔계의 일이다. 범부는 오직 이 십팔계 내의 일을 두고 살고 죽고 투쟁하고 기뻐하고 슬퍼한다. 영원과 안락과 평화와 자유를 구한다고 노력도 인내도 감수하고 죽음도 불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가 육근으로 하여금 육경을 헤매고 맴 돌면서 마침내 육식을 收獲(수획)으로 삼아서 웃고 또는 웃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인간과 천상중생의 가치와 생의 전부인 것이다. 그런데 경에는 이 십팔계가 모두가 없는 것이라 말씀 하셨고 울도 또한 이를 충분히 살핀 바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 이르러서 인간과 천상중생은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대답은 명료하다.
현상적(現象的) 有인 物이나 心에 떨어지지 말고 바로 萬人 本性인 淸淨本然의 대바라밀 행을 전개할 뿐이다. 왜냐하면 십팔계는 바로 物(色界)과 心이며 이는 본래로 空無이며 따라서 實로 있는 것은 바라밀 體性 뿐이기 때문이다.
經의 (십팔계가 없다) 하심은 바로 물심 등 有爲現象에 사로 잡혀있는 인간과 천상중생을 해탈 시키기 위한 감로문 임을 알게 한느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