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정치사상(상)-불교의 경우에 대한 시론

종교와 정치

2009-08-31     관리자

-서론 -
우리의 주변에는 종교가 정치와 무관한 것이 아닌 중대한 사실들이 들끓고 있다. 세계의 으뜸가는 분쟁지역에서도 그러한 대결이 이종족 이교도(異種族 異敎徒)간에 그칠 기약없이 파란되고 있거니와 정치에는 그럴만한 세계관적 필연이 자고로 따랐었다. 인간사회의 문제점과 그 역사적 변동, 그리고 정치적 해결등이 신이니 천이니 하는 섭리에서 인간자유도 규율되는 자연적인 진전의 표현이라는 상념으로 깃드러진 것이다. 이와같은 사고방식에서 자연의 법칙을 인정하여 신의 섭리정의를 거기에 두는 자연법 사상이 트이어 노예와 재산문제 상의 갈등에 있어 그 자연법 정의가 자유.평등이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해결 하므로서만 행복과 안전이 자율된다는 이념이게끔 된 것이다. 그리고는 그 자유.평등의 조화야말로 평화이게끔 하는 절대불가피의 과제라는 것도 알게 되었었다. 이리하여 그 이념이 결코 근대 민주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자고로 동서세계가 그러한 상념으로 경행된 적지 않은 자취임임을 말할 수 있다.
아무튼 종교원리와 그 세계관적 반영이 정치사상과 사실을 영향한 관계가 어떠한 것인가를 살피는 일은 아무리 엄중한 방법이 된다하더라도 지나칠수 없을만큼 중요한 것이다. 오히려 그 실정을 여실히 드러내기 위하여는 힘에 겨운 노력도 불사해야 할 종교와 정치관계의 난처사인 것이다. 우리의 주변에서는 불교는 무엇을 하는 것이냐?는 항의도 나온 만큼 불교의 경우를 더덤는 방법으로서 거기에 유관한 다른 주요한 종교의 경우도 간단하나마 실피는 순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기독교. 유교. 도교의 경우
기독교의 일신적 절대권위 주의에서는 인간이 신격화하는 카리스카 자유주의가 되어 자유.평등의 엇갈리는 변증법적 대립과 충돌, 투쟁이 되었음은 주지하는 바이다. 신의 자비인 자유.평등의 실질이 인간 자유주의에서 그르쳐진 결과라고 말할수 있어 이를 와트킨스는 인간이 자유가 원죄의 씨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렇기로 신의 본질과는 이율배반이 되는 양원론적 구조에서 필연되는 불안과 격동인 서양세계 전통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런데 동양세계 유교의 경우는 기독교에 통하는 여러 가지 점이 있기는 하나 천의 덕을 말하고 그것을 효용하는 인도주의가 되는데서 정치사상은 물로닝거니와 정치 실제도 근본적으로 성질이 다른 것이 되었다. 즉 천의 덕을 본떠는 정성을 이성에서 노력하는 소위 궁리진성과 이 양심의 발현인 덕치라야 한다는 것으로 중용에 의하면 천의 도도 만물의 생성화육을 정성하는 것이라 한다. 인간은 그것을 또한 정성한다는 바 이를테면 정치의 덕이 극히 조심하는데서 기초되는 것이다.
서양세계의 경우와는 달리 처음서부터 광대한 국가영역과 사회. 경제의 요인 요소가 온갖 종류에 걸쳐 복합적으로 핍집하는 자유.평등의 어긋남을 두고 전체는 개체를 조화시키는 그러한 균형을 정성한 덕치인 것이다. 그리고 그 효능에 안정되고 동화되는 범위 따라서 국가위신이 탄력되는 역사형이 된 것이다.
이상 기독교와 유교가 다같이 신 또는 천과 자연의 섭리를 인간 자유에서 효능하는 노력이면서도 결국 이 방법이 인격 신과 천의 덕치원리인 차이가 되는 만큼의 성경 차의로 나타난 실상관계를 말한 것이다.
그런데 자연을 믿고 자연의 도를 내세워 순수한 자연법적 형식주의를 주장한 종교형태가 있다. 동양의 도교가 그 전형이 되는 것으로 거기에 의하면 인간은 소박한 자연으로 돌아가므로써 자유.평등이 자율적으로 이뤄지는 이상형이 된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노자 도교의 외침은 서양 근대 민주주의의 이상론자 룻소에 의해서도 (자연에 돌아가라!)는 꼭 같은 상념으로 나타났었다.
물론 신 또는 천이 인간에게 부여한 순수선의 성풍임을 전제하여 역사적 오탁이기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므로써 신 또는 천의 섭리 자비 그대로가 자연적으로 울어나는 자유.평등이 완벽한 실현- 이상향적 황금상황을 그린 것이다. 자연법의 순수정의가 인간 순수성(性 )으로 통해 실현되는 자율이 된다고 본 것으로 결국 자연주의적 일종의 무정부주의 같은 것이다. 그들은 지식이니 덕이니 하여 권위주의 형태가 되는 치자급의 행위를 비판공격하여 그것이 인위로서의 위선이며 인민이 거기에서 수탈되고 도리켜 위선인 악으로 자극되어 갈수록 혼란이게끔 된다고 생각하였다.
아무튼 기독교. 유교. 도교가 신. 인간. 자연의 어느 것에 치우치는 나름대로의 약점면을 지니어 정치사상과 실제에 미치는 중대한 문제거리를 끼친 바임은 부인 못할 일이다.
기독교가 카리스마 자유주의 이기 쉬운데 비하여 유교는 덕을 정성한들 못하는 인품 또는 그릇된 기질이 되는 한의 어처구니 없는 부조리이게끔도 될수 있는 위험성이 따르는 것이다. 더구나 그 자격에 해당하는 자의 그 지위라는 대의명분 주의가 거꾸로의 효용으로 악용될 수도 있어 이 반 민주적 공포성이 얼마큼 하다는 것을 후세사가 증명하였다. 그렇기로 유교가 오늘날에 서는 비판공격 되는 것이지만 유교 본질이 그런 것이 아님은 이해되어야 한다. 오히려 민주행복을 효능하는 자유 그 자체의 덕치 기능일 수 있는 것으로 기독교에 대한 태도와는 너무나 대서적인 편파심의 대상이 되고 있음은 유감된 일이 아닐수 없다. 도교의 경우는 아무리 이상론적 전제이고 그러한 순수사실이 되는 한 문제없이 이상대로의 황금 향이 될법도 한 일이기는 하나 현실의 인간 자연상을 너무나 무시한다기보다 도피하는 그 자체의 논리모순이 명백하다.
현실에서 유리하다기 보다 불가능을 강요하는 무정부주의적 유토피아 형인 것이다. 그러면 불교의 경우는 어떠한 것일까.

불교 - 제종교의 변증법적 종합
불교는 첫째로 (법-진리)에 있어 진신도 인간도 자연도 위치지워지는 교리 교의의 종교인 것이다. 인간을 포함하는 삼라만상의 자연이 불법아님이 없는 무량 무변대의 것이고 제천제신(諸天諸神)도 부처님께 귀의하여 불법수호의 서원으로 나아가는 경전상의 증명인 것이다. 인간을 포함하는 중생계에의 효능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자연에 관하여는 삼라만상의 존재와 변동 그리고 그 관계등 무한대 시공의 것이 인간과 인연현상으로서의 추호만큼도 어긋남이 없는 법칙의 것임을 설법하셨다. 그러한 의미에서 불법아님이 없는 삼라만상이라고 말씀한 것이며 이들 온갖 것을 덮는 부처님의 자비와 구제원리가 요컨대 자유.평등의 조화 - 법에 있어서의 그 자율인 바를 깨우쳐 바르게 하는 것이다. 말세중생의 고난을 두고서는 부처님 지견을 열어 그와 같이 되게끔하는 것이라고도 말씀하신바, 이와같은 것의 오늘날에 대한 의의는 다른 종교에서는 찾을 길 없는 극히 존귀한 소식이 아닐수 없다.
요컨대 신. 천. 인간. 자연을 덮어 법의 여여(如如)에서 도탈시키는 부처님의 여래(如來) 경지이며 이에서 모든 것이 구제 되는 법력(法力)의 시현에 환희하여 귀의하는 불국토의 성립이라는 것이다. 이와같은 종교설질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거니와 구태어 정치와 그 사상에 관한 자유. 평등이란 것을 두고 불교의 거기에 대한 면모를 살펴 보기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평등이 되어지는 자유가 참된 것이다. 평등이 얼마나 불교의 철저한 기중인가는 부처님도 중생과 다름 없는 법에 있다는데서 볼 수 있다. 즉 법을 깨우쳤기로서의 부처님이고 깨우치지 못하기로서의 중생이지 법을 간직한 성품에 있기로는 마찬 가지라는 것이다.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닌 생불불이(生佛不二)임이 그러한 사실의 평등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점 진속불이(眞俗不二)이기도 하는 것으로 이와같은 데서 알수 있는 가장 중대한 사실은 다음과 같다. 깨우치고 깨닫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닌 법에 있어서의 평등 구제가 된다는 철저한 자비와 그러한 진리가 엄연히 있다는 불가사의한 소식인 것으로 그렇기로서 인간이 자각적인 자기구제 일수도 있는 동시에 그러한 법력에 의탁하는 부처님에의 무조건적인 환희 귀의에서 구제될 수도 있다는 셈이 된다.
물론 부처님도 전지전능 하시며 불.법.승 삼보 일체를 말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기독교의 삼위일체 설과는 성질이 구별된다. 신의 절대 권위 중이에서 기준되는 성령, 성자의 파출로서의 것이 아니고 법에 있어 부처님도 중생도 일체적인 평등이 되는 그러한 것이다.
물론 가치론적인 측변도 있어 초발심이 곧 정각이 되는 순수경지의 중생인데서 그러한 실질이 보장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와는 구별되는 특징이 어디까지나 주관적이 아닌데 있다. 객관적인 타당성이 유교와 도교의 경우와도 일맥 통하는 동양종교의 본질성인 것이다.
불교는 그러면서도 유교의 인도주의와 도교의 자연주의를 법의 지위에서 타당 지울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신의 권위도 위치지우는 제종교의 변증법적 종합상을 자제한다.
부처님의 전지전능인 법에 있어서의 그러한셈이 되어 이에는 변증법 철학이 말하는 테제, 안티테제의 단범들의 지(止)와 장점들의 양(楊)인 변증법 종합이 법에 있어 자율되는 셈인 것이다. 불교의 지위와 차원이 다른 종교의 유가 아닌 그 이상일 수 없는 증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이를테면 부처님의 전지전능한 법덕에 있어 자신의 장점, 단점과 인간의 그러한 것들이 자율적으로 지양되는 황홀한 경지임을 의미한다. 평등자각과 해탈자유가 되어지는 그러한 것으로 이것이 법자재의 자연에서 이룩되는 셈인 것이다. 불법의 지상무비성과 불가사의의 품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와같이 되는 인간에 있어서의 자유 평등이란 현실론적으로 어떠한 것일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