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寺의 향기] 경남 진해시 불모산 성흥사(聖興寺)

고사의 향기/무염국사의 구국혼 이어받아 부처의 나라 불국토 이룩하리라

2009-08-27     관리자

청정 그윽한 진해(鎭海)는 조용하고 아름답다. 쭉 뻗어지는 해안 길을 따라 바다 곳곳에는 뭉게뭉게 섬들이 보이고 툭툭 만개하여 져버린 벚꽃잎들은 이미 초여름 싱그러운 바람에 날려 우윳빛 꽃향만 남겨놓고 있었다.
한참이나 바다를 볼 수 있는 행복감에 젖어 두 번, 세 번 잔잔한 남해의 물결을 쓰다듬어 보고 고요함과 평온을 간직한 해안 길목 길목에 펼쳐진 우아한 6월의 자태 속에서 더욱 심흥에 취한다.

동국여지승람을 살펴보면‘ 이곳은 본래 신라의 웅지현(熊只縣)이다. 경덕왕이 웅신(熊神) 이라 고쳐서 의안군(義安郡) 속현으로 만들었고 고려 현종은 금주에 예속시켰다. 본조 세종조에서는 구자(口子)를 설치하여 첨절제사(僉節制使)를 두었으나, 문종조에 지금 명칭으로 고쳐서 현감을 두었다.’ 라는 진해의 기록이 있다.
진해는 1910년 한 ․ 일 합방이후 일인(日人)의 대륙침략의 교두보(橋頭堡)로서 중요시 되었다. 그 까닭에 해군의 군항시설이 설치되고 군사기지로 주목되었으나 광복이후부터는 우리 해군의 발상지로서 자리 잡고 세계적인 군항(軍港)으로 또한 관광, 휴양도시로 발전하였다.

고사 성흥사(聖興寺)가 있는 불모산(佛母山)은 진해시 북쪽에 솟아있다. 해발 801m의 수려한 풍모의 불모산을 뒤병풍으로 두르고 확연히 자리한 성흥사는 신라 제 42대 흥덕왕(興德王)8년(833)에 초창되었다 한다. 웅동(熊東)지방(지금의 진해) 에 침입한 왜구를 지리산에서 정진 중에 있는 무염(無焰)스님으로 하여금 흥덕왕이 평정시키도록 하였다. 스님은 구국의 길은 오직 부처께 의지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하였으며 그러한 호국정신은 결국 왜구를 크게 물리치는 성과를 올리게 되었다.
그 뒤 흥덕왕은 무염스님을 국사(國師)로 정중히 모시고 그 공덕의 뜻을 기리기 위해 구천동(九川洞)에 절을 짓게 하였다. 이렇게 초창된 성흥사는 구천동이 수원지가 되는 까닭에 그 후 현재의 위치로 옮겨짓게 되었고 승군의 훈련도량으로 큰 역할을 담당하는 장소가 되었다.

성흥사는 지금의 규모보다는 훨씬 가람터가 방대했고 한꺼번에 1,000여명의 승군들이 주석하며 훈련할 수 있는 풍족한 절 살림이었다 한다. 현재의 성흥사 담벽 밖 시냇물 건너편에 후원이 있었고, 절 아래 있는 정자나무에 이르기까지가 절 마당이었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큰 절구통을 비롯하여 취사용품, 너른 돌등이 눈에 띄고 있어 당시의 가람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경내에 이르기 전인 일주문밖엔 아름다운 모습의 백색 탑이 있다. 이 탑은 28과의 부처님 사리를 모신 사리탑으로 82년에 불사하였다. 대웅전을 보수 불사하던 중에 부처님 복장 안에서 발견된 사리중의 일부를 모신 것으로 사리탑 불사는 진해 사부대중의 일념 된 불심으로 이루어졌다 한다.
사리탑을 뒤로 하고 경내에 다다르면 잘 다듬어진 잔디, 동백나무, 목련, 초여름 꽃들이 화사한 성흥사를 만난다. 깔끔하고 단정하게 가꾸어진 수목들과 대웅전을 비롯한 나한전, 산신각, 범종각, 요사채의 성흥사는 싱그러움을 내뿜는 불모산 품속에 더욱 푸르렀고 참배객을 맞이하는 반가움에서인지 풍경소리 더욱 청아하게 경내를 매웠다.

성흥사는 구국혼이 깃든 가람이다.
빈번한 왜구의 침략은 나라를 지키겠다는 승군들의 불심을 더욱 돈독하게 하였고 승군을 비롯한 마을사람 모두는 혼연일치된 한마음으로 나라를 지켰고 불법을 지켰다.

근래에 어렵게 단청과 개금불사를 하였다는 나한전의 나한님은 다른 사찰의 나한님들보다 더욱 익살스런 표정으로 친근히 참배객을 굽어보신다. 나한전 오른편에는 산신각이, 산신각 뒤편은 선원이 있었다는 선원 터가 자리한다.
초창 당시 성흥사는 선원을 갖춘 가람이었다. 지금의 자리로 가람을 옮긴 이후 화재로 전소되었다가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선원은 복원되지 못했다. 그 후 토지개혁으로 인해 대부분의 사찰 소유의 토지가 국유지로 편입되어 더욱 복원의 기회를 놓치게 되고 절 살림은 어렵게 되었다.

“진해는 아직 불교 활성화를 이루지 못한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젊은 스님들이 대중불교 활성화를 위해 노력을 하고 있고 성흥사 역시 그 일을 담당할 진해의 중요 가람입니다.” 라고 주지 지선(至禪)스님은 말씀하신다.
성흥사는 해야 할 일이 많다. 지역분화를 이끌어갈 의무를 담당한 곳이다. 재정적인 어려움과 신도 활성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아니했다는 난점이 있지만 성흥사 스님을 비롯한 진해 불자 모두는 일념 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노인복지, 어린이를 위한 포교사업, 문화사업 등 종합불교단지를 조성하여 지역문화 활성화에 앞장서려한다. 사상지역에 공업단지가 곧 들어서면 인구가 급증하게 되고 그렇기에 성흥사 주변자연을 교육도량으로 할 유치원 건립은 무엇보다도 우선될 교육사업이다.
“가람을 중창하는 일은 정책적인 문제로 아직까지는 힘이 듭니다. 이곳이 군사지역이고 사찰소유의 토지가 아닌 국유지가 대부분이어서 쉽게 불사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꼭 이뤄야 할 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린이 포교와 교육에 앞장서는 유치원건립입니다. 성흥사는 시내에서 외진지역에 자리하고 있지만 산이 있고, 물이 있고, 나무가 있는 대자연과 친숙할 수 있고 그리고 불법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갖춘 교육도량이라 생각합니다.”

지난 성흥사의 역사만큼 오늘의 성흥사는 그 역할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을 한켠에 접어두고서 주지스님은 푸른 눈빛으로 어린이 포교에 열변을 토하셨다.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행복하다. 그것이 무조건적인 사랑ㅇ의 베풂이면 더욱 그렇다. 산속이면 산속, 도회지면 도회지, 자기자리에서 부처의 나라 불국토를 이루리라는 염원은 더욱 행복을 가져다준다. 하물며 동심의 불국토는 어떠하겠는가.

성흥사는 곳곳에 무염국사의 한결같은 구국혼이 배어 있었고 오늘날까지 그 정성 변함없었다. 그리고 잔잔하게 미소 짓는 대웅전 부처님 상호에서도 익살스런 나한님의 모습에서도 오늘의 염원 동심의 불국토는 이미 완성되었음을 엿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