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잠에서 깨어나는 보로부두르

권두수상

2007-05-30     관리자

 지난 여름에는 뜻하지 않은 계기로 적도 너머에 있는 남국의 산천과 유명한 불교 유적 '보로부두르(Borobudur)'를 둘러볼 행운이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중앙에 있는 자바 섬, 그 섬안에서 다시 중남부를 차지한 케두(Kedu) 평원 위에 넓게 자리 잡고 있는 보로부두르 유적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미 문헌이나 전파매체를 통해 상당히 알려져 있기는 하나 아직 직접 실물을 접해 본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며 더욱이 이것이 지닌 참 의미를 더듬어 보는 일은 더욱 흔치 않은 듯하여 이 자리를 빌어 독자들과 함께 그 의미를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

 말할 것도 없이 보로부두르가 주는 일차적인 인상은 그 규모의 장대함과 그 솜씨의 정교함이다. 대략 정방형으로 된 기단은 한 변의 길이가 113m나 되며 그 위에 아홉 층이나 되는 테라스가 꾸며져 있어서 마지막 테라스까지의 높이가 26m에 이른다. 그리고 그 정상에는 종을 거꾸로 엎어 놓은 둣한 불탑이 세워져 있고 기층으로부터 불탑끝까지의 높이는 대략 37m가 된다. 가장 이채로운 것은 한 층의 테라스와 다음 층의 테라스 사이에는 성벽 같은 두꺼운 석벽을 쌓아서 좁은 복도 비슷한 구조를 이루었고 이 양측 석벽 면에는 불상과 불교전설을 양각 (陽刻 )으로 새긴 부조 (浮彫 )가 빼곡이 들어 차 있다는 점이다.

 대략 아래 쪽 네 개의 테라스에 걸쳐 이러한 좁은 복도가 형성되어 있는데, 사람들은 높은 성벽 사이에 나있는 골목처럼된 이 복도 사이를 지나가면서 조각된 각종 형상들을 감상하게 된다. 이러한 복도의 총 연장은 대략 1.2km가 되나, 복도 양측의 부도가 모두 상하 두 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층별로 연속된 이야기가 새겨져 있으므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보아 나가자면 동일한 복도를 네 번 통과해야 하며, 따라서 순례자는 이를 감상하기 위하여 장장 5km의 복도를 통과해야 한다.

 이러한 복도층을 지나고 나면 상단의 둥근 테라스들이 나타나는데 거기에는 종을 거꾸로 엎어 놓은 듯한 72개의 탑들이 세층에 걸쳐 원형으로 늘어서 있고 그 안에는 모두 돌로 조각된 불상들이 안치되어 있다.

 총 표면적 1900평방미터에 이르는 1460개의 양각된 부조 석판과 다시 이를 둘러싼 600평방미터의 장식 조각, 그리고 504개에 이르는 실물대의 석조 불상등으로 구성된 어마어마한 구조뿐 아니라 그 위에 새겨진 생동하는 조각 형상 하나하나가 모두 개별적 특성을 지니는 진귀한 예술품들을 이루고 있으니 그 장엄함과 정교함에 있어서는 현존하는 그 어떤 문화유적과도 비교하기 어려운 엄청난 것이다.

 그러나 보로부두르 건조물이 지닌 더욱 큰 특징은 이것의 독특한 형태에 있다. 이것은 아무리 보아도 그 어떤 예배의 장소이거나 그 어떤 기념의 장소 또는 어떤 성스러운 문물의 보관장소가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거대한 건조물을 이렇게 많은 정성을 들여 건조하였는가? 누구도 분명한 해답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많은 사람들을 위한 교화의 목적을 지녔으리라는 점이다.

 층층의 복도를 지나가면서 숱한 이야기를 담은 부조들을 통해 불교의 가르침을 자연스럽게 깨우치게 되고,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 높은 경지의 이해를 추구 하도록 추상화되어 가다가 단순한 구조만을 지닌 정상부에 이르러서는 이 모든 것을 통합한 그 어떤 해탈의 경기를 느끼게 해준다는 점이다. 더욱이 정상에서 둘러 볼수있는 광활한 열대 평원과 가까이 그리고 멀리 둘러서 있는 높은 산들 - 이 가운데는 빼어난 위용을 자랑하는 활화산 메라피(Merapi)를 비롯한 해발 3,000m급의 고산들도 있다 - 이 모든 것이 그 어떤 우주적 신비를 느끼게 해 주기에 보족함이 없다.

 그렇다면 이 장엄한 보로부두르는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가? 불행히도 이 점에 관해서는 그 어떤 분명한 문헌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여러 증거를 통해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바로는 대략 기원 760년경에 시작되어 830년 무렵에 완성된 것이라 한다. 경주 불국사의 건조연대가 751년이니 이것도 대략 불국사, 석굴암 등 우리의 중요한 불교 건조물과 같은 시기에 이룩된 것이며, 이 시기에는 우리 한반도에 뿐 아니라 멀리 남태평양 자바 섬에까지 불교 문물이 번성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보로부두르가 건조된 이후 처음 몇백 년 동안에는 멀리 중국에서까지 순례자들ㅇ이 다년간 흔적이 주변에서 발견된 동전 등을 통해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마호멧의 전파와 함께 불교의 문화권이 세력을 잃고 동쪽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자 이 거대한 건조물도 서서히 잊혀지면서 흙 속에 묻혀버렸다.

 그러다가 거의 천 년이 지난 1814년에 이르러 당시 자바 지역의 부총독으로 있던 레이플이라는 사람이 이를 재발견하고 적지 않은 노력을 들여 발굴해냄으로써 현대 세계에 다시 알려지게 되었고, 그 후 몇 번에 걸친 보수 공사 끝에 1983년에 이르러서야 겨우 오늘의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말하자면 오늘의 보로부두르는 천 년간의 긴 잠에서 서서히 깨어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 거대한 유물이 완전히 되살아 난 것은 아니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이것을 건조한 선인들은 순례자들에게 그 어떤 교화와 영감을 주려 했음이 틀림 없으나, 오늘날 이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경이와 찬탄의 대상은 될지언정 진정한 의미의 교화와 영감의 근원으로 작용하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보로부두르의 생명을 소생시킨다는 것은 이를 탄생시킨 선인들의 뜻이 소생됨을 의미하며, 이는 다시 이를 통해 우리들 자신의 정서적 삶이 고양되어야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생명 그 자체는 선인들로부터 이어지는 하나의 전 우주적 존재일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보로부두르는 선인들과 우리를 하나로 이어주는 귀중한 이음새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 보로부두르에 국한된 것이겠는가?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수많은 선인들의 자취들이 그 모두 앞선 이들과 우리를 하나의 큰 생명으로 묶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디 그것 뿐인가? 우리가 서로 의존해 가며 함께 살아가는 모든 것이 결국 하나의 생명임을 말해주는 것이며, 우리가 살면서 가꾸어 나가는 모든 일들이 또 하나의 보로부두르가 되어 뒤에올 많은 사람들의 생명과 이어줄 이음새가 아니겠는가?

 사실상 지난 여름 나의 보로부두르 방문은 바쁜 일정에 매인 탓도 있겠으나 지나치게 표피적인 '관광'에 그치고 말았다는 아쉬움이 있다. 언젠가 다시 한번 조용히 보로부두르를 방문할 기회를 얻게 된다면, 이번에는 정말 선인들이 뜻한 바의 참의미가 무엇이었던가를 좀더 깊이 생각하고 이를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은 생각이다. 그러나 이것을 하기 전에 좀더 가까운 내 주변에는 보로부두르가 없는지, 그리고 나 자신은 얼마나 후륭한 보로부두르를 건조하고 있는지 자성해 보고 싶다.      佛光

          - 장 회익 : '38년 경북 예천출생. 서울 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미국 루이지아나 대학교에서 박사를 취득하였다. 현재 서울 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