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사의 추억

보현행자의 서원

2009-08-26     관리자
우리 고장사찰을 대표할 수 있는 문경군 산북면 김용리 운달산 따스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 김용사. 마음이 우울하여 무작정 김용사로 향하는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다. 무르익은 가을날. 햇살은 따갑고 길가에 핀 코스모스가 한창 보기 좋게 어울러져 행인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고 보답이라도 하듯이 몸이 부스러져라하고 차가 지날 때마다 환영인사를 보낸다.
나는 빙긋이 미소를 지은 채 꽃길을 벗어날 때까지 넋 잃은 양 바라보았다. 들판은 온통 황금빛으로 물결을 이루고. 간간이 일터에서 구부렸던 허리를 일으켜 세우며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훔치는 농부의 얼굴은 티 없는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 울통불통한 비포장 길을 뽀오얀 먼지와 함께 달려 조금 왔나 싶었는데 어느새 산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고 평온한마음에 맑은 공기를 흠뻑 마시며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솟았다.
성급한 단풍나무는 다홍빛을 띠면서 산사의 정취를 한껏 돋우고 있었다. 숲속을 거닐며 자연에 도취된 채 항공을 나는 듯한 가벼운 마음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목탁소리가 들린다. 대웅전을 향해 두손을 모으고 합장을 했다. 마침 대웅전 마당에서 등산복 차림의 관광객들을 위해 일천육백년의 역사를 가진 사찰 소개와 법문을 열심히 하시는 주지스님(지광 스님)을 만나뵐 수 있었다.
한쪽에 조용히 서서 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스님의 법문 중에는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이 있었다. “아무리 상대방이 미워도 욕하고 미워하지 말고 그 사람을 위해 항상 기도하라.” 정말 자비로우신 스님의 말씀이시다. 나는 왜 시기하고 미워하고 짜증내며 화를 내야했는가? 부처님의 자비가 모자란 탓일까? 나는 자신에 걸맞지 않는 이기심과 겸허하지 못한 마음이 깊숙이 잠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잠시나마 참회할 수 있으니 온누리에 자비로움이 잉태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법당 안에 들어서자 자옥한 향 냄새 속에서 검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보살님 한분이 염주를 손에 쥔 채 열심히 돌려가며 혼잣말로 웅얼거리며 소원을 비는 지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열심히 절을 하고 계셨다.
남은 여생을 위해서인지,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도 열심히 기도를하시는 걸까? 얼떨떨한 마음에 부처님을 향해 공손히 절 세 번을 하고 조용히 뒷걸음질치다시피 하며 법당문을 나섰다. 스님 한분이 마침 지나시다가 시선이 마주쳐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니 부주지 스님으로 소임을 맡고 계시는 총무스님 방으로 안내해 주셨다. 뵙는 순간 인자하신 모습에서 풍기는 온화함이 마음을 포근히 애워싸는 것 같은 따스함에 마침 부처님 앞에 앉은 듯 숙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맛과 향이 겸비하지 않고 색을 만끽하며 마신다는 작설차를 조심스럽게 마시며 스님의 훌륭하신 법문을 청해 들었다. 오후 5시 석공시간 종이 울린다. 후원으로 내려와 공양주 보살님의 바쁜 일손을 도와 저녁 공양을 했다. 무우거지국이 구수하여 체면도 잊은 채식욕을 채웠다. 내려오는 버스 안에서 잠시 눈을 감고 오늘 하루의 일들을 되새겨본다. 스님이 훌륭하신 법문, 아름다운 산새소리, 공양주보살님의 손끝에서 우러나는 구수한 우거지국 맛, 마음을 사로잡던 고운 빛의 단청, 이 모든 아름다운 추억들 고이고이 접고 또 접어가슴에 간직한 채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