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좋은 날

불자가정 만들기/조치원의 원소연 이정희 씨 댁

2009-08-26     관리자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듯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는 세상을 향기롭게 한다. 갑술년 새해, 유달리 상서롭게 다가오는 불향(佛香)의 주인공이 있으니 바로 올해 환갑을 맞은 갑술생 원소연 씨 댁.
조치원 역전 로터리에서 보성당(불교용품점) 을 운영하고 있는 원소연 씨는 포교사(대전 충남지역 불교연합회지도 법사) 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이는 조치원의 불자들은 물론이고 비불자들에게도 합장인사 받는 이 지역의 토박이 포교사이다. 그이가 노른자 위 땅인 로터리에 상업성과는 전혀 무관한 불교용품점을 연 것도 다 포교를 하기 위한 방편에서다. 눈 있는 이는 보고 귀 있는 이는 들을 것 아닌가.
보성당에서 은은히 울려 퍼지는 찬불가와 경전 말씀을 듣고 지나는 이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환희심을 내고. 부처님의 진리에 보다 가깝게 다가선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단다.
“백천만겁에도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늦게나마 만나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래 불교의 진리를 모르고 해매는 사람들이 한없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만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일러주고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생활하다보니 포교사라는 중책도 주어졌습니다.”라고 말문을 여는 원소연 씨.
“내가 요즘은 너무 좋아요. 옛날에는 나만 혼자 절에 다녔는데. 이제는 아들도 포교사고 천주교 다녔던 손녀딸도 둘 다 포교사가 됐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게다가 우리 증손자는 벌써부터 스님될 거라고 하니 마음이 든든합니다.”라고 그이의 어머니 남월출 씨(83세)는 흐뭇한 마음을 밝히며 일구월심 관음주력을 이어간다.
그이와 그이의 두 딸(원동림, 40세). 원동애(38세)이 포교사로서 그렇듯 남다른 포교 열정을 꽃피우고 있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젊은 날의 종교적 방황과 정신적, 신체적 고통 덕분(?)이었다. 그이들 스스로 겪었던 방황과 고통의 나날이 안타깝기에 어쩌면 똑같은 길을 걸으면서 괴로워할 지도 모를 이웃에게 불법{佛法)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방황을 멈추게 하고 고통의 뿌리까지도 치유해 주는 생명의 가르침을 더욱더 열심히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이는 어릴 적부터 종교심이 무척 강했다. 그러나 어린 그의 눈에 비친 불교는 미신스러워 보였다.
전국적으로 가장 불교세가 약하다고 할 수 있는 조치원. 불교학생회 활동은 찾아볼 수조차 없었으며 자그마한 태고종 사찰 몇 군데가 불교의 명맥을 잇고 있는 상황이었다. 비록 어머니는 절에 다녔을지라도 주변상황이 그를 타종교 신자로 만들었다. 유년시절에는 장로교 계통의 교회를 다니다가 성경 속에서 “예수님도 침례를 받았다.”는 구절을 발견하고 나서는 침례교회로 옮길 정도로 그이는 본질적인 것을 추구했고 참된 신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오랫동안 주일학교 반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교직자 회의를 하는데 동료들이 불교를 비방하는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평소 독선적이고 편협한 전도형태를 못마땅해하던 그이는 반박하고 나섰다.
모든 갈등은 이기심과 탐욕에서 비롯되지 않는가. 특히 종교의 집단이기주의는 전쟁까지 일으킨 역사를 갖고 있을 정도로 무서운 일이 아닌가. 그이는 그 일이 있은 뒤로 크나큰 종교적 방황을 해야만 했다. 여기저기 이 종교 저 종교, 심지어 신흥종교에 이르기까지 기웃거려 봤지만 별무소득이었다. 가지가지 다른 이름을 벗어버리고 모두가 하나 되어 공동선을 추구하는 길은 없을까. 그이에게 진리의 빛은 아주 우연하게 찾아들었다.

기복(祈福)이 계기가 되어
“아들 대학입시 때 너무나 답답해서 철학관에 점을 치러 갔어요 . 그런데 점쟁이가 하는 말이 아들을 스님의 수양아들로 삼아야 좋다는 거예요.” 라며 그이의 아내 이정희(62세) 씨는 첫 인연의 실타래를 풀어낸다. 그때 맺어진 월연사 행법 스님. 한없이 청정한 행을 실천하며 평생을 초발심으로 사시는 행법 스님과의 인연이 큰 행운이었음을 그이와 그이의 가족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한 사람의 수행력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평안으로 이끄는 지 또 한 번 확인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월연사 행법 스님이 주시고 가신 (불교입문)이라는 책자를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때는 1979년. 그이의 초발심은 그렇게 시작 되었다. 스님께서 주신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그의 가슴을 웬 지 모를 환희심이 일었다. 타종교에서 배운 교리가 도움이 되기도 했다.
“부처님의 빛과 향기가 은근히 스며드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미신으로만 알고 있던 불교가 이렇듯 훌륭한 종교라니. 아니 이 세상의 모든 진리가 불교 속에 녹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초발심이 큰 깨달음을 이루게 한다고 했던가. 남보다 늦게 시작한 불법공부이니 만큼 한 치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좋은 불법을 전하자면 나부터 알아야할 게 아닌가. 게다가 그의 공부를 더욱 더 부추긴 것은 한국불교태고종 연기군 연수회 고문이라는 직함 때문이었다. 그의 사람됨을 익히 짐작하고 있었던 월연사 행법 스님의 간곡한 권청으로 덜컥 맡게 되었지만 그 책임은 다해야 되겠다는 일념뿐이었다. 그 후로 펼치는 그이의 맹활약은 연기군에 새로운 불교 꽃을 활짝 피우는 것이었다. 문화원을 빌려서 대법회를 열어 일반인들에게까지 불교를 알리고, 보살계도 합동으로 받았다. 그 동안 각종 법회와 예수재, 방생법회, 사찰순례법회 등을 이끈 횟수는 기억할 수조차 없다. 4월 초파일 봉축행사를 처음으로 제의하여 조치원 거리거리마다 등불이 넘실대는 축재일로 다져놓은 것도 그이의 공로이다.

3부녀가 다 포교사이자 동국대 불교대학원생
“불교 하면 무당이 먼저 생각날 정도였기 때문에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아직도 헤매고 있을 거예요.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한다든가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어머니의 기도가 저를 지켜주는 것만 같았어요. 부모님의 정성이 하도 지극해서 절에 가게 되었고 지금은 너무 행복해요.”
큰딸 원동림 씨는 “모든 사람이 부처님의 진리를 간직하고 있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가슴속 깊이 스며들자 모든 교통이 스러졌다고 한다. 원동림 씨는 마치 미칠 것같은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준 불법{佛法)이 너무 좋아 적극 포교에 임한다. 해동불교대학 철학과에 다니면서 교리공부를 했다. 어린이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불법을 전달하기 위해 삼화불교대학 유아교육학과도 졸업하고 불교 레크레이션법회에 다니면서 교육도 받았다.
원동림 씨는 자신의 집에 아이들을 모아 지극정성으로 돌보아 주었다. 특수학교에 가야 하는데 집안 사정이 어려워 방치돼 있는 특수아들을 가르치면서 눈물로써 기도하기도 했다. “온 몸이 마비되는 중상으로 일 년이 넘게 고생했는데 부모님과 언니, 부처님 덕분에 회생하게 됐어요.”
작은딸 원동애 씨는 사정을 해매다 살아난 종교적 체험을 감격적으로 애기한다. 다시 찾은 삶이기에 회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저절로 일었다. 원동림. 원동애 두 자매는 불교간병인 협회회원이 되어 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찾아 나선다. 지극한 간호와 진심으로 우러난 두 자매의 종교적 교화는 오랜 병고로 지친 환자들의 마음을 평온으로 이끌었다. 원동림 씨는 (동의보감) 등의 의학서적을 열심히 공부. 민간요법으로 환자들을 처방해주기도 한다. 평소에 ‘우리 몸 자체가 부처님 진리의 몸“이라며 환자를 격려하는 그녀의 진심과 민간요법이 신묘한 조화를 이루었는 지 의사도 포기한 환자가 완쾌되는 체험도 자주 했다.
“신해행증(信解行證), 믿고 이해하고 행하고 증득해야 비로소 불교신자라고 할 수있지요. 아직도 심오한 불교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듯해서 동국대 불교대학원에 들어갔어요.”
힘써 믿고 행하면서도 더욱 바르게 불교를 실천하기 위해 뒤늦게나마 대학원에 들어갔다는 원동림(4기. 원동애(5기)씨. 불교로 처음 이끌어준 아버지를 이젠 그녀들이 이끌었다.
“우리 딸 둘이 제 입학금을 마련해줬답니다. 사실 애들의 권유로 가끔 도강을 하기도 했는데 이번에 정식으로 불교대학원 7기생이 됐습니다.”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짜다. 아무리 자그마한 행이라도 실천하지 않으면 결과가 없다는 얘기. 하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행하는 데 있어서랴. 바르게 실천하지 않으면 불자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힘써 행하는 불자가정. 이들이 복된 삶과 꿈이 햇빛처럼 찬란하다. 기자의 마음속에도 불심(佛心)이 새롭게 샘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