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쁘게 하는 다른 사람의 성공

타의 성공 나의 기쁨

2009-08-20     관리자
어려서 부모를 잃은 어느 소년이 회사 사환도 하고 신문배달도 하면서 간신히 중학교를 졸업했다. 의지할 데 없고 가난한 이 소년은 다시 중국음식점의 점원이나 양복점의 보조원 따위의 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 한때는 길가의 쓰레기더미에서 불끼가 채 식지 않은 연탄재를 끌어안고 추위를 이기면서 잠을 자기도 하고 뒷골목의 쓰레기통을 뒤져 음식찌꺼기를 먹으며 허기를 채우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고학을 계속하여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어느 대학에 장학생으로 선발되었으며, 마침내는 고등고시 까지 합격하여 지금은 변호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느 월간지에 실린 그의 성공담에서 기쁨을 얻은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어느 등산가가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고 하얀 산봉우리에 태극기를 휘날릴 때, 두 팔이 없는 화가가 입이나 발로 훌륭한 그림을 그렸을 때 우리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사회의 정의와 발전을 위해서 자신에게 주어질 고난과 불이익을 뻔히 보면서도 감사부조리를 폭로한 이문옥 감사관이나 보안사의 민간사찰을 파헤친 어느 말단 병사의 양심의 승리도 가슴을 찡하게 한다.

겨우네 칼바람에 시달리던 개나리, 진달래, 목련, 산수유, 벚나무가 빈 나뭇가지에 가득 꽃을 피우고 환한 봄볕 속에서 눈부시게 흔들리는 것을 보면 저절로 눈물이 난다. 이처럼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룬 성공은 누구에게나 기쁨이 되지만 모든 성공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 엄청나게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고 큰 회사의 회장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부러움을 느끼기는 하지만 기쁨을 느끼지는 못한다. 그러고 보면 물질에서의 성공은 다른 사람에게 별 감동이 못되는 것 같다.

걸프전에서 다국적군이 이라크와 지상전을 갖기 전에 이라크를 무력하게 만들기 위하여 한 달여 동안 비행기 폭격을 가하여 이라크 민간인들까지 피해를 받고, 마침내 지상전이 시작되었을 때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참호 속에 갇혀 있던 굶주린 이라크 병사들이 손을 들고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볼 때, 싸움 상대가 되지 못하는 이라크 병사들이 퇴각하는 고속도로에서 다국적군의 폭격으로 거의 전멸할 때, 침략국을 응징한 다국적군의 승리가 기쁘지만은 않던 까닭은 무엇일까. 죄인을 끌고 가는 경찰관의 모습이 기쁨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강자의 성공에서보다 약자의 성공에 공감하는 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아름다움이리라. 그래서 예수는 이 세상에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신 모양이다. 버림받은 사람, 상처받은 사람, 절망한 사람, 못난 사람을 위하여 정의와 도덕을 뛰어넘는 곳에 종교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속담에 ‘사촌이 소를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나의 39세에 늦깎이 시인으로 문단에 등단했을 때 칠순의 부모님들은 나를 껴안고 눈물을 흘리셨다. 그런데 나를 축하해 주기 위하여 모인 친구들 중엔 ‘도대체 나는 뭐지?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했지?’ 라고 탄식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 어떤 친구는 아이가 대학입시 시험에 떨어지자 아이가 합격한 친구를 피하는 일도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모르는 사람이 아닌 가까운 사람의 크고 작은 성공에 자극이 되어 문득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선의의 경쟁심을 불러일으켜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시기심과 질투심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니 남의 성공이 나의 기쁨이 된다는 것은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나, 세상 사람들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처럼 느껴져 희생을 무릅쓰고 그들에게 평화와 행복을 주려고 일한 예수나 부처처럼 사랑의 마음을 갖지 않고는 보통사람에겐 기대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차옥혜 : 시인, 경희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였으며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작품으로 [깊고 먼 그 이름], [바람 바람꽃] [비로 오는 그 사 람]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