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광식물원(菁光植物園)의 봄

타의 성공 나의 기쁨

2009-08-20     관리자
나는 언제부터인가 먼 산이나 수평선을 우두커니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동이 트는 산등성이나 수평선을 바라보면 가슴속에서 새로운 기운이 이는 것을 은은하게 느낀다. 춥고 어두운 겨울이 가고 수평선 너머로 아장아장 걸어오는 봄을 맞아 나서지 않으면 온몸에 열이 오른다.

더구나 자꾸만 어려워지는 세상에서 쓰리게 아파오는 마음을 짊어지고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미 떠난 마음을 따라 동해 남부선을 타고 있다. 계절의 손짓은 바람을 일으키고 앞서 간다.  거기에는 언제나 넘실거리는 바다의 넓은 가슴이 있다. 그 손길은 언제나 따뜻하다. 특히 공휴일에만 운행하는 동차를 타고 털컥거리며 달릴 때에는 명치를 누르고 있던 체증이 쑤욱 내려가는 것이다. 툭 트인 바다가 가슴을 열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해운대역을 떠나 30여분을 가면 좌천역에 닿는다. 여기서 다시 30여분을 걸으면 ‘청광식물원’이 기다리고 있다. 이 식물원은 하늘에 솟아있는 달음산의 비호를 받으며 망망한 동해의 푸른 바다를 안고 있다. 이곳은 얼마 전만 해도 버려진 야산이었다. 누구보다도 수목에 관심을 가진 청광선생은 이 산을 개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이십여 년의 각고 끝에 이제는 오늘의 대 식물원으로 성장시켜 놓은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는 삭막한 현실의 소용돌이 속을 떠밀려가면서도 명리에 허둥거리지 않고 자연의 순수 속에서 자신을 구하려고 노력하여 왔고, 그러한 정신으로 자꾸만 병들어가는 현대인의 육체와 정신을 치유하기 위해 최선을 기울인 결실이라 생각된다. 더구나 그는 모든 생명에 대한 경외심으로 작은 풀포기 하나에도 정성을 다해 왔다.
장자(莊子)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장자의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 혜자(惠子)가 조문을 했다. 그 때 장자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자는 장자에게 물었다. “그대는 지금까지 아내와 고락을 같이하고 자녀를 낳고 행복하게 살아왔는데 어찌하여 노래를 부르는가?” 하니 장자는 대답했다.

“아내의 임종 때는 나도 놀라고 슬퍼서 울었다. 그런데 근본을 돌아보면 본래 생이란 없는 것이다. 생만 없는 것이 아니라 형체도 없고 기도 없다. 단지 큰 혼돈 속에서 형체를 이루어 비로소 생이란 것이 된다. 아내는 지금 생에서 사로 돌아갔다. 춘하추동 사시절이 왔다가 가고, 갔다가 다시 돌아오듯이 생은 무한한 순환의 반복과 다르지 않다. 이처럼 우리 아내도 천리라는 큰 집에 안식하고 있다. 이때에 내가 소리를 치고 통곡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것을 깨닫고 울음을 그친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자연의 이법에 순응하는 것이 천리라는 이야기이다. 이런 성인의 말씀을 다 이해하고 터득하여 따를 수는 없어도 자연은 그러한 이치를 언제 어디서나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작은 풀포기 하나, 나무 한 그루에서도 그러한 행위는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우리가 사는 도시 공간은 숨쉬기조차 어려운 시대로 변해버렸다. 가로수가 있다 해도 제대로 자라지도 못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만 상하게 한다. 수많은 자동차가 내뿜는 매연에 눈이 따갑고 목이 아프다. 그 맑던 강물이 시름시름 앓고 있으니 고기조차 살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고운 들꽃이 그립고, 맑은 물이 그립고, 깨끗한 공기가 그리운 시대에 살고 있다. 게다가 따뜻한 인정이 그리운 시대로 변해버렸다. 오늘도 기차를 타고 동해 바다의 푸름을 마시며 달리고 싶다. 청광식물원의 수많은 수목을 만나고 싶다. 그 포근한 가슴속에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이곳은 누가 와도, 따뜻이 맞아주는 나무의 세상이다. 거기에는 작은 산새가 재잘거리고 개구리가 울어댄다. 그 풍경 속으로 늘어진 오솔길이 아름아름 떠오른다.

청광 선생은 틈만 나면 나무를 손질한다. 그는 그 수많은 수목의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목이 마르고 삭막한 오늘도 청광식물원에는 맑은 물과 신선한 공기와 따뜻한 사랑이 송이송이 맺혀있다. 화창한 날씨다. 청광식물의 봄도 한창 무르익고 있을 것이다.

차한수 : 문학박사. 동아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대시학』에서 시 천료로 문단에 데뷔했다. 한국문협, 한국시협, 국제펜클럽 회원으로 있으며 시집으로 『버리세요』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