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힘겨워하고 있을 학생들에게

나의 믿음 나의 다짐

2009-08-18     관리자

  학창시절 동안 나의 공부에 대한 지나친 굴레와 고통은 심했다. 모의고사나 중간 . 기말고사 성적에 신경이 항상 곤두서 있었고, 주위의 기대와 그리고 나 자신의 소위 자존심을 지키기 위하여 무척 힘들었다. 극도로 날카로워진 신경은 집안 식구들이나 친구들에게까지 짜증을 내게 만들었다.

  급기야 고3 때부터는 시험철이 다가오면 극도로 불안한 증세로 불면증에 시달렸다. `잠을 자야 할텐데....` 하는 걱정을 안은 채로 항상 잠이 들어야 했다. 얼마 전에 우리 나라 고등학생의 3분의 1이 정신과 의사와 불안증세로 상담한 경험이 있다는 설문결과가 나왔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크게 공감이 갔다.

  우리 나라의 엄천난 교육열은 우리의 학생들에게 크나큰짐이 되어 억누르는 것 같다. 못 배운 한을 자식에 대한 기대로 투영하는 우리네 부모님들...... 설상가상으로 요즈음 초등학생들은 학원 스케즐로 일주일이 꽉 차있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것은 총 망라해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우리 나라의 학생들이 초등학생 때부터 `상대친구는 내가 이겨야 할 대상` 이라는 경쟁심에만 익숙해져서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예를 들면, 나는 왜 존재하고,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등등......) 자신의 모습을 발전시켜 나갈 반추의 시간을 거의 갖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대학시절 나를 포함해 나의 친구들은 이와 같이 고등학교 때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해서 매우 방황했던 기억이 있다. 경쟁심! 우월감!   학문 자체에 대한 욕심이라가 보다는 남들모다 성적이 잘 나옴으로 인하여 생기는 우월감이 나의 경쟁심을 자극하여 기계적으로 공부를 하도록 만들었다.

  우월감은 나를 다시 공부에의 집착으로 몰아 넣었고, 나는 성적표에 찍힌 숫자를 보면서 말 할 수 없는 희열감에 싸이곤 했다. 그리고 공부를 매개로 하여 남들로 부터 나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사실은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았다.

  그 버릇이 어디 가나? 그러다보니 대학생이 되어서도 나의 소위 삶의 목적은 계속 유지가 되어갔다.(관성이란 무서운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내가 해온 일들과 기계적인 생각들이 대학교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공부 열심히 해 성적표에 찍힌 학점을 통해 나의 소위 삶의 목적이 달성되어가고 았음을 느꼈다.

  행복했다. 아니 행복하다는 엄청난 착각을 했다. 이러한 생각없는 삶에 대해 차츰 회의가 들기 시작할 때 나는 가장 친한 친구의 소개로 대학 1학년 말 정토 포교원에 나가게 되었다. 모든 것에는 원인이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은 그 동안 내가 무의식적으로 기계적으로 해왔던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하여서 그 일들 자체의 근원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해왔고 하고 있나?`    근원적인 질문에조차 쉽게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여러 달에 걸친 숙고 끝에 결국 남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 즉, 명예심 때문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다. 어렴풋이나마 내 안을 들여다 보고나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고 다짐했다.

  그러던 중, 1학년 겨울바학때 접한 나눔의 장(정토포교원의 수행 프로그램. 경북 문경에서 열리며, 5박 6일 일정이며, 1년에 20차례 정도 열린다. 정신없이 목적도 모른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자기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괴로움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자신을 바꿔나가는 역활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이다.) 과 깨달음의 장을 통해서 남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방법과 사물의 본질을 있는 그대로 보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나눔의 장은 인간관계에 생기는 과로움의 근원을 케내는 데 도움을 주었고, 깨달음의 장은 나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가면서 생기는 괴로움의 근원을 캐내고 고치게 해주었다. 나는 100일기도에 들어갔고 정말 모든 것을 고치고 싶은 생각으로 나의 머리는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수련회를 통해서 비운 것들을 토대로 모든 일상 생활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생각과 행동을 일일이 관찰, 수정하고자 하였다. 너무 힘들었다. 고칠 것이 너무 많았다. 괴로웠다. 습은 참으로 질겼다. 계속 과거로 희귀하려고 했다. 머리 속 지식으로는 `아! 내가 명예심이라는 허상에 도취되어 아등바등 조급해하며 살아 왔구나!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야.` 하고 생각을 했지만 그것은 단지 머리속 지식이었을 따름이었다.

  여전히 나는 세월이 흘러도 시험철이면 불면에 시달렸고, 주위 사람들에게 짜증을 냈고, 시험공부하기가 너무 싫어도 알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책상 앞에 않았다. 머리 속으로는 허상을 인지하면서도 바뀌지 않는 나의 생활은 나를 정말 힘들고 괴롭게 만들었다. 잠을 못 자고 뜬 눈으로 지세운 다음 날은 하루종일 `나는 왜 이 모양일까?` 하고 한숨만 푹푹 쉬었다. 나의 행동과 생각은 모순 그 자체였다. 괴로웠다. 나의 모든 것이 무너져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중 문득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 이것은 괴로워 할 일이 아니고 기뻐해야 할 일이야,` 무너지는 나를 보면서 야릇한 희열이 생기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 이것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완성되어가고 있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바뀌어가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너무 조급했던 것이다. 20년동안 쌓여온 습을 바꾸는 데 인내심이 필요한 것은 생각해 보면 아주 자명한 것이다. 그 뒤로 나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나는 왜 이럴까!` 하고 자학하지 않고 자기를 사랑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근원을 들여다 보면 볼 수록 모든 인간은 스스로를 사랑스러워할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급해하지않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하나씩 하나씩 바뀌어가는 나의 모습을 보아오면서 인생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를 중시하면 그 결과물에 집착하게 되고 조급해지지만, 과정을 중요시하는 삶. 즉, 그 과정과정마다 최선을 다하며 하나씩 하나씩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하며 감사해할 줄 아는 삶은 인생을 살찌우고 아름답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