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의 세계] 육상원융과 십현연기의 내용

*華嚴經의 世界

2009-08-18     관리자

 육상원융설(六相圓融設)

 지난 호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상호 의존의 관계에서 성립되고 있는데 이 법칙을 불교에서는 연기법이라 하며 화엄에서는 이 연기의 관계를 법계연기라고 하고 무진연기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 무진연기의 실상을 설명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육상원융(六相圓融)이란 것과 십현연기(十玄緣起)라는 게 있습니다.

 여기서 육상이라고 하는 것은 총상(總想)과 별상(別相), 동상(同相)과 이상(異相), 성상(成相)과 괴상(壞相)등 세 가지 서로 반대되는 개념을 말하는 데, 이들 육상은 서로서로 원융해서 자기를 내세우고 여타의 다섯을 죽이거나 자기를 죽이고 여타를 내세움이 없이 상호가 걸림이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각자 자기의 개성을 잃지 않고 자기의 분수를 지키면서도 조금도 서로가 걸림이 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육상원융의 이론은 당역(唐譯)인 80화엄경에 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즉, 화엄경에는 십지품(十地品)이라는 것이 들어 있는데 그 십지품의 초지(初地)에 나오는 환희지(歡喜地) 보살에게 조도법(助道法)을 설하는 곳에 이 육상이란 말과 유사한 용어들이 나옵니다. 이 십지품의 환희지에서 연유되어 육상의 이론이 전개되었는데 이를 맨처음으로 알기 쉽게 해설한 분이 저 인도의 세친(世親)보살이십니다. 세친보살께서는 십지경론(十地經論)이란 책을 쓰셨는데 이곳에서 육상의 이론을 설명하고 계십니다.

 그후 이 육상원융설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분은 화엄종의 제2조로 불리우는 지엄(智嚴)대사인데 그가 지었다고 하는 육상장(六相章)은 유감스럽게도 현존하지 않아 그 구체적인 내용은 알 길이 없습니다. 이 지엄스님의 문하에는 걸출한 두 인물이 있었으니, 신라의 의상(義湘, 625 - 702)스님과 중국의 현수법장(賢首法藏) 스님이었습니다.

 현수 법장스님께서는 오교장(五敎章)이란 책을 지으신 일이 있는데 이 오교장 속에 육상원융의 이론이 자세히 알기 쉽게 예를 들어 설명되고 있습니다.

 육상(六相)이란 전술한 바와 같이 총상과 별상, 동상과 이상, 성상과 괴상을 말하는데 이를 전문용어로 설명해 봐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법장스님께서는 집이라고 하는 한옥 건물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이를 알기 쉽게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집 전체는 총상(總相 )입니다. 그런데 그 집을 구성하고 있는 내용물을 살펴보면 기둥, 서까래, 기와 그리고 주춧돌 등으로 이루워져 있습니다. 이것은 별상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둥, 서까래, 기와 주춧돌 등이 모여 하나의 통일체로서의 집을 이룰 때 이를 총상이라 하며, 집을 이루고 있는 그 구성물, 즉 기둥 서까래 기와 그리고 주춧돌 등은 각기 그 모양과 맡은바 역할이 다른데 이와 같이 그 모양과 그 직분을 달리하는 구성물의 차별상에서 본 것을 별상(別相)이라 합니다.

 이 총상과 별상은 그 표현방법에 있어 서로 다르지만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며 그러므로 이름은 둘이면서 실체에 있어서는 하나인 것입니다.

 다음 동상(同相)과 이상(異相)의 설명인데, 건물을 구성하고 있는 구성물들이 그 모양이 다르고 그 맡은 바 직분이 다르지만 집을 이룬다고 하는 그 목적성은 동일합니다. 다시 말하면 기둥, 서까래, 기와, 주춧돌 등은 집을 이룬다고 하는 것울 전제로 했을 때, 그 이름과 그 직분이 주어지는 것이며 이들 구성물이 존재하는 존재 이유는 집을 이루기 위한 것이며 그 목적이 동일하다는 측면에서 본 것을 동상(同相)이라 합니다. 

 이 구성물들의 존재 이유는 동일하나 그 모양과 역할은 서로 상이(相異)한데 이와 같이 차별상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를 이상(異相)이라 합니다. 다음 성상(成相)이라고 하는 것은 집을 구성하는 있는 그 구성물들은 그 모양과 직분이 달라, 각지 차별상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이들이 모여 집을 성립시키고 있는 측면에서 보면 집이라고 하는 하나의 목적을 성취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성상(成相)이라 부릅니다.
이에 대칭되는 것이 괴상(壞相)인데 괴(壞)란 부작(不作)이란 뜻입니다. 즉 변괴(變壞)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집을 구성하고 있는 내용물들은 집을 이루려고 하는 성취 목적은 동일하지만 기둥은 기둥의 직분을, 서까래는 서까래의 역할을, 기와는 또 기와대로 주춧돌은 주춧돌대로 그 본분을 상실하지 않고 각자 특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 본래의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섞여 혼란됨이 없이 본래의 직분을 유지하는 것을 괴상(壞相)이라 부릅니다.

 이 육상 가운데 총상, 동상, 성상은 다 같다는 입장에서 보는 관점이며 별상, 이상, 괴상은 서로 다르다는 입장에서 보는 관접입니다. 화엄경에서 말하는 중중무진(重重無盡)한 법계연기를 설명하는 한 방법으로 이 육상원융설을 이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화엄사상의 배경에는 실천적인 수행과 화엄의 교리가 결부되어야 한다는 요청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화엄경 범행품에 말하는, 처음 발심하였을 때 정각을 이룬다〈初發心時便成正覺〉라든가, 한 가지 수행이 일체의 수행에 통한다〈一行一切行〉든가, 한 가지를 끊으면 일체 것이 끊어진다〈一斷一切斷〉고 하는 수행상의 도리가 이 육상원융의 원리를 근본으로 하여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종교적 실천의 논리를 담고 있는 까닭에 화엄경의 교리가 가장 높고 깊은 불교 교리로 꼽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육상에 관하여 신라의 의상스님께서는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라는 책에서 「육상은 법성(진리의 세계)에 들어가는 중요한 문이며, 다라니(陀羅尼)의 장(藏)을 여는 열쇠가 된다」고 했습니다.

 또 법계도 기총수록(法界圖記叢隨錄)에 보면 고기(古記)를 인용해서 법성게(法性偈)에 나오는 구래부동명위불(舊來不動名爲佛), 즉 「중생이 본래로 부처다」라는 뜻을 육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래성불(舊來成佛)이란 말에 두 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닦지 않고도 중생이 본래 성불해 있다는 뜻이요, 또 하나는 이미 성불하신 부처님도 본래 닦은 바가 없다는 뜻이다.

 만일 육상을 가지고 이 뜻을 설명해 보면 부처님은 총상(總相)이며 중생은 별상(別相)이다. 또 일체 중생이 모두 다 곧 부처다 라고 하는 것은 동상(同相)이며 일체 중생의 모양이 각각 다르니 이는 이상(異相)이다. 또 일체 중생이 인연을 따라 연기하고 있지만 본래부처를 이루고 있다고 하는 것은 성상(成相)이며 일체 중생이 각기 자기 자리에 머물러 분을 지키고 있어 본래를 움직임이 없으니 이것이 괴상(壞相)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육상을 참으로 알기 쉽게 설명한 명구(名句)라 생각됩니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온 우주의 삼라만상은 중중무진(重重無盡)한 연기의 원리에 의해 성립되어 있는데 이를 화엄에서는 법계연기(法界緣起) 또는 무진연기(無盡緣起)라 이름하며 이 연기의 이치를 알기 쉽게 설명한 것이 육상원융의 이론입니다.

 십현문(十玄門)

 이 세상의 개개물물(個個物物)은 고립적으로 홀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개개물물(個個物物)이 상호 연관 관계의 인연으로 성립되어 있음은 이미 말한 바와 같습니다만, 이 중중무진한 연기 관계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육상원융설이 있고 또 지금 이야기하려고 하는 십현문(十玄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십현문이란 모든 현상이 서로 서로 연관 관계에 있으면서도 자기의 고유한 특성을 잃지 않고 서로 걸림이 없이 원융무애한 관계에 있음을 보는 각도를 달리해서 열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 것입니다.

 십현문의 현(玄)이란 깊고 오묘하다는 뜻입니다. 이 십현문의 설은 지상(至相)대사 지엄(至嚴)스님께서 그의 저서 일승십현문(一乘十玄門)에서 그의 스승 두순(杜順)대사의 설을 보완해서 지은 것입니다. 그것을 현수대사 법장(法藏)스님께서 그 뜻을 더욱 부연하고 탐현기(探玄記)라는 책을 저술하시면서 그 미흡한 점을 보완하고자 그 순서를 바꾸고 두 현문(玄門)의 이름을 고쳐 완벽을 기하셨던 것입니다.

 현수대사가 고친 것을 신십현(新十玄)이라 하고 고치기 이전의 것을 구십현(舊十玄)이라 합니다.

 법장스님의 신십현에 의해 청량(淸凉), 규봉(圭峰) 두 스님께서는 전체가 곧 하나〈一切 一〉요, 하나가 곧 전체〈一卽 一切〉란 관계를 설파하므로서 모든 사물은 상즉상입(相卽相入)해서 중중무진한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를 이룬다 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법장스님께서 쓰신 탐현기(探玄記)의 신십현문(新十玄門)에 따라 10현의 내용을 아주 간략히 그 명칭 정도만 소개하겠습니다.

 ①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
 우주에 있는 일체 만유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끝없는 연기 법칙 속에 존재하고 있어 어느 한 가지도 고립하여 독존함이 없이 상즉상입하여 사사무애하고 주반(主伴)구족함을 말합니다. 십현중이를 총문(總門)이라 합니다.

 ② 광협자재무애문(廣狹自在無碍門)
 일체의 사물은 이증(異證)이 보편한 것처럼 한 티끌 한 사물이 각각 그 작용력으로 일체에 가득 차서 끝이 없음은 넓디 넓은 광(廣)의 뜻이요, 모든 것에 편만해 있으면서도 자기의 위치를 잃지 않고 능히 차별상을 지니는 것은 좁디 좁은 협(狹)의 뜻입니다.
 이 광· 협이 상즉상입하는 관계에서 걸림이 없이 자재하다는 것입니다.

 ③ 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
 만유의 모든 것은 하나 가운데 여럿을 용납하여도 대(大)가 되지 않고 여럿 가운데 하나를 포섭하여도 소(小)가 되지 않으며, 또 하나로 하나의 본분을, 여럿은 여럿의 본분을 지켜 혼란되지 않으면서 차별상을 지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④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
 제법은 일즉일체(一卽一切)하고 일체즉일(一切卽一)이 되어 자재무애함을 말합니다.

 ⑤ 은밀현료구성문(隱密顯了俱成門)
 상즉상입의 관계에 의하여 모든 사물이 각각 거리낌없이 자재할 뿐 아니라, 사물에는 표면과 이면이 있어 나타남〈現成〉은 표면이고, 잠겨 보이지 않음〈隱密〉은 이면입니다. 이 표면〈현상〉과 이면〈본체〉이 상즉상입해서 일체가 된다는 것이 이 문의 뜻입니다. 표면과 이면은 원래 한 체(體)이기 때문에 보는 방향에 따라 둘로 이름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하나일 뿐입니다.

 ⑥ 미세사용안립문(微細相容安立門)
 소(小)에 대(大)가 포용되고 일(一)에 다(多)가 포용되며 그 반대 이론도 성립된다고 하는데 그렇게 될 수 있는 이유는 서로가 상즉상입(相卽相入)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일(一)과 다(多), 소(小)와 대(大)가 자체에 모양이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무애함을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⑦ 인다라망경계문(因陀羅網境界門)
 이 문은 비유에 의해 법계 연기의 중중무진함을 보여주는 문입니다. 인다라망(因陀羅網)은 제석천(帝釋天)의 궁전을 장엄하고 있는 인다라 신(神)의 그물을 말하는데 그 그물은 하나하나의 그물 눈〈매듭〉마다 구슬이 장엄되어 있기 때문에 그 구슬과 구슬이 서로 비치고 비치어져서, 수없이 반사작용이 거듭되어 일대광명(一大光明)의 세계를 이룬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중중무진한 법계연기를 비유로 설명하는 문입니다.

 ⑧ 탁사현법생해문(托事顯法生解門)
 무진연기의 이치는 깊고도 미묘하여 불가사의하기 때문에 이를 알기 쉬운 현상계에 붙여〈托事〉 가르치므로서 지혜와 근기가 얕은 사람도 쉽게 알 수 있도록 일깨워 주는 것이 이 문의 본 뜻입니다.
 탁사현법(托事顯法)이란 이 현실계의 현상〈個個物物〉에 의지해서 진리〈무진의 법문〉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꽃잎 속에서 화엄법계의 진상을 보려 하고 한 티끌 속에서 진리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며 천태(天台)에서는 이을 일색일향무비중도(一色一香無非中道), 즉 바람에 날리는 티끌 하나 향 내음 하나 모두가 중도(中道)아님이 없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현실 긍정의 사상인데 개개물물 그 자체에 절대적인 진리가 내포되어 있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⑨ 십세융법이성문(十世融法異成門)
 앞의 문은 공간적으로 원융의 미묘한 작용을 밝힌 것인데, 이 문은 시간적으로 걸림이 없음을 나타내는 문입니다. 10세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와 그 삼세에 또 각각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가 있으므로 이를 합하면 9세가 되고 이 9세를 종합한 일세(一世)를 합해 10세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과거와 현재 미래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셋이 그대로 동시라고 보는 것이 화엄의 시간관입니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는 과거겁(過去劫)에 들어간다든가, 미래겁이 과거겁에 들어간다고 하는 상즉혼융(相卽渾融)의 입장을 얘기합니다. 이와 같이 시간적으로도 상즉상입해서 무애자재함을 나타내는 문입니다.

 ⑩ 주반원명구덕문(主伴圓明具德門)
 시간과 공간을 통해서 다함이 없이 연기하여 단 한 가지도 홀로 생기고 홀로 존재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주(主)와 반(伴)이 서로 교차하고 평등하여 끝이 없음을 나타내는 문입니다.

 이상에서 십현문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보았습니다만, 이 십현문은 결국 무진 연기를 설명하는 한 방법인데 존재하는 개개물물(個個物物)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에 의해서 성립되어 있으므로 자성〈실체〉이 없고 자성이 없으므로 공(空)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체 만유는 상즉상입(相卽相入)의 관계에 있으므로 무애자재한데 이 무애자재한 관계를 열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 것이 이 십현문입니다. 그러므로 십문중 어느 하나만이라도 확실하게 이해하면 나머지는 같은 원리로서 알기가 쉬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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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道 業  · 동국대 경주캠퍼스 정각원 원장 
              · 금수선원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