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다실

2009-08-15     관리자
 ♧ 4일이 입춘, 19일이 우수······ 어딘가에서 눈이 바삭바삭 소리내어 녹아내리고 먼 언덕에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는 것을 보는 것만 같다. 그 사이에 끊일 듯 말듯 이어지는 피리소리와 함께ㅡ

 이것은 아마도 2월이 가지는 계절에서 오는 환상일게다. 아직도 밖에서는 연일 영하의 기온을 말해 준다.  
 그렇지만 분명 하루하루 태양은 우리에게 가까워 오고 있다. 지구 북반구 우리 지점을 지구는 하루하루 조금씩 길게 태양 앞에 노출시켜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닌가. 눈부신 햇살이 이 대지에 부어지고 땅 속 깊숙이 스며들고 따스한 온기는 그 속에 보존된다. 이래서 얼음이 녹고 대동강물도 풀리는 것이 아닌가. 봄날의 환상에 젖는 것이 조급한 기다림만이 아닌 듯 싶다.

 ♧ 우리 한국 불자에는 우리 나름대로 관습화된 수행일력이란 것이 있다. 왈, 여름안거, 겨울안거, 정초기도, 백중천도 등이다. 이런 수행일력은 철통같이 음력으로 지켜 온다. 그것을 양력으로 바꾸어 봄직도 한데 아직은 요원한 일이다. 그리 어려운 저항요인도 없지만 우리들의 긴 관례가 우리 모두의 깊은 의식속에 인습화되고 있는 까닭일게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지금은 아직 입춘이다, 설이다, 어수선하지만 우리들 불자에게는 깊은 수행의 계절이다. 동안거가 절정에 이르고 있는 시기인 것이다. 지난 17일의 납 8성도재일을 지내고 제방선원에서는 맹렬한 가행정진이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아, 겨울정진이 좋다. 무더운 여름의 정진철에 비하면 추운 겨울 속에 파묻힌 용맹정진의 나날이 참으로 좋다. 땅굴 깊숙이 파고 들어 앉아 좌정한 것 같은 고요가 거기 있다. 천지만물 계절의 변화를 앞에 두고 멀찌감치 뒤로 물러서 계절변화에 상관없는 그 자리에 자약한 겨울안거가 좋다. 그보다도 안거는 일체 번뇌, 그 모두에 걸리지 않고 반연 이전, 번뇌 이전 본자 청정한 자신에 안주함이 아닌가. 그래서 번뇌에서 벗어나고 속박에서 벗어나고 자유를 이루며 한계를 벗어나 자재에 머무는 것이 아닌가. 안거수행이 그런 것이라지만 역시 겨울안거는 좋다. 춥고 무릎이 시려오고 등골이 선선할 때도 있지만 활활 타오르는 용맹의 불꽃이 있어 족히 견딜만 하다.
 
 그 속에서 익어가는 정진의 과실, 역시 겨울은 수행인에게 정말 좋은 계절이다. 뿌리 깊숙이 살찌고 힘을 가득히 머금은 나무는 봄을 만나면 물줄기 솟아 오르고 잎이 피고 새 순이 창공을 뚫고 솟아 오른다.
그리고 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왕성한 한 해의 성장이 벌어지고····· 이런 한해의 성장을 간직한 겨울의 축적을 우리는 겨울안거에서 느낀다.
 
 좋다. 겨울의 안거여. 우리 모두 힘을 모아 겨울철 정진에 빠져 들자. 뿌리에 담겨진 크나큰 힘이 보살행도의 동력이 되는 것이다.

  우리들은 제각기 수행내용, 수행일과가 같지 않다. 그렇지만 견고한 믿음의 밭을 참선이든 독경이든 염불이든 자기 일과에 따라 쉬지 않고 갈아가는 점은 누구나가 마찬가지이다. 출가인이든 재가인이든 차이가 있을 리 만무하다. 어려움을 안고 있기도 마찬가지이다. 그 속에서 우리 모두는 정진의 과실이 익어가는 것이다.
 
 자, 우리 모두 새 봄의 왕성한 성장을 위하여 이 겨울 한껏 뿌리를 북돋우자. 힘을 기르자.
 
 어려움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데서 힘은 길러지는 것이다. 형제 여러분의 용진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