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불] 관음의 묘력이 나에게

四面佛

2009-08-11     관리자

 내가 태어나자 명(命 : 수명)이 짧다는 주위의 말을 듣고, 명이 짧은 사람은 절에 보내는 것이 좋다는 옛날 어른들의 말씀에 따라, 어머님은  내가 4살일 때, 당시 청용사 주지스님인 홍 상근(洪祥根)스님 밑에 나를 맡겼다. 아무것도 모르고 불가(佛家)에 몸 담게 된 것이었다.

 짧은 명이 연장되는 시련인지는 몰라도 어려서부터 잦은 병치레로 주변 스님들께 누를 끼치곤 하였다. 어린마음에도 「몸이 허약하니 부처님, 저의 병을 낫게하여 주세요, 그리고 건강하게 하여 주세요」하는 기도하는 마음이 있었다.

 제일 심하게 오래도록 고생한 병은 연주창(連珠瘡)이었다. 별의별 약을 다 써보고 수술도 받고, 심지어는 끓는 기름을 환부에도 발라 보았다.

 나이 들어 20代에 들어서서는 신경쇠약으로 밤이면 열(熱)이 나고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무척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당시 은사스님 역시 엄지손가락이 가렵고 진물이 나오고 껍질만 연실 벗겨지는 이상한 병으로 10여년을 고생하여 남이 볼세라 헝겊을 동여매고 지낼때이다. 은사스님과 나는 침술(鍼術)로 병을 고치려고 적음(寂音)처사 <후에 스님이 됨>를 찾아가 100일 동안 침을 맞기로 하였다. 때마침 여름이라서 적음처사님이 금강산 마하연으로 여름을 지내러 간다고 하여 그곳에서 치료받기로 하고 금강산엘 갔다. 또 다른 이유는 마하연에서 가까운 관음기도처로 유명한 보덕굴(普德窟)에서 기도를 할 생각도 있었기 때문이다.

 보덕굴에서 3일기도 예정으로 첫날 침을 맞고 기도가 끝나는 3일후 침을 맞기로 하였는데, 기도가 끝나는 3일후 여러 스님들(고봉, 석하, 무언스님)과 적음처사님이 보덕굴에 올라와 엄지손가락을 보자고 하셨다.

 헝겊을 끌러보니 흔적도 없이 깨끗이 나아있었다. 이날 침을 안맞고, 3일기도 예정을 바꿔 감사기도와 나의 쾌유를 비는 3․7(21)일 기도를 하기로 하였다.

 하루는 기도 정근을 하고 있는데 비몽사몽간에 탱화뒤에서 어느 스님이 나타나 약 3첩을 주어서 받아가지곤 먹지는 못했는데 3․7일간 기도를 마치고 나니 신경쇠약은 깨끗이 나아 잠도 잘자고 건강해졌다. 그 후 50년이 지나도록 큰 병없이 오늘에 이르고 보니 어린시절에 병고로 시달리던 것이 모두 꿈만 같아 성현의 가피가 참으로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당시 항간에는 보덕굴에서 기도한 상근스님과 상좌<나>는 손이 나았고, 신경쇠약이 나았다 하여 보덕굴로 기도하러 가는 사람이 많았다. 나는 그후 청용사에 머물면서 매년 보덕굴로 기도를 하러 가곤 하였는데 8․15해방 이듬 해 4月까지를 끝으로 남북이 분단되어 다시는 보덕굴을 갈 수 없는 아쉬움만 남았다. 사중(寺中)의 크고 작은 불사가 있을 때마다 꼭 기도를 하여 불사를 마무리 짓곤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관세음보살의 가피를 입은 나는 항상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정리:眞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