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 잡초에 감사 드릴 때

신앙수기

2009-08-06     관리자

  거친 마음을 참회합니다.

  감사합니다. 그저 감사하다는 말 밖에 다른 말로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저는 불광법회와 인연을 맺은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나왔지요. 그러다가 집안 사정과 마음의 나태함으로 해서 2,3년 법회참석을 못했습니다. 그러나 불법인연을 끊은 것은 아니지요. 이 절 저 절로 방황을 했습니다. 그러니 온전한 기도가 될 리 없었고 번뇌 망상은 점점 쌓이기 시작했지요. 시어머님도 남편과도 너무 뜻이 맞지 않아서 살림을 정리할 생각으로 딸아이는 멀리 외국으로 시집보내고 아들아이와 둘이서 따로 살 생각까지 하였답니다.

  여러가지로 괴롭고 슬픔에 쌓여 날이 가면 갈수록 아이들 아빠에 대한 신뢰가 점점 엷어져 가고 회의심만 더해갔지요.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변했어요.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몹쓸 마음 다 사라지고 착한 마음만 남은 것 같습니다.

  아들의 교통사고

  1987년 6월 5일 아침 등교길에 아들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하였습니다.

  문구점에서 학용품을 사가지고 급히 뛰어나오다 자가용에 치어서 3미터나 날아가 떨어졌답니다.

  머리를 다쳐 뇌출혈이 많이 되었답니다. 의사들은 출혈이 심해서 살 가망이 없다고 하면서 마음을 굳게 가지라고 무서운 말만 하였습니다.

  아이가 2,3일 넘기기가 어렵다고 의사들이 말할 때, 아이아빠는 죽어도 한이나 없게 큰스님 한번 뵙게 해주자고 애원했습니다. 저는 그동안 쭉 불광에 나가지 않다가 하계 50일 기도하니 함께 들어가자고 한 본안보살님의 권유로 5월 30일 입제 들어가고 닷새만에 사고가 일어난 것입니다.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자식의 일이라 염체를 무릅쓰고 본안보살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우리 병호 살려 달라구요.'

  본안보살님은 자신은 없지만 노력해 보겠다며 기다려보라 하셨습니다.

  6월 6일 사고 다음 날 중환자실 복도 앞에서 가슴을 조이며 초초히 기다려지는 순간 순간들 ....

  중구 우리 법등식구들이 먼저 도착해서 스님이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습니다. 조금있다 우리스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시각거사님과 본안보살님의 부축을 받으시면서 병실복도를 걸어오시는 우리스님은 부처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엄한 눈으로 저를 보신 스님은 중환자실로 들어가셨습니다.

  (중환자실에 들어있는 환자는 하루 2번, 오후 30분, 저녁에 30분 면회가 있었습니다. 병원에는 가도 환자 얼굴도 볼 수 없고 문앞에 대기상태에 있었으니까오.)

  그러나 우리스님은 너무 수척하시고 걸음도 걸으시기 힘드신 것 같았습니다. 그러심에도 불구하고 와주신 것이 너무도 고마웠습니다. 이제 우리 병호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우리 중구 법등 식구들에게도 너무 감사했습니다. 여러 해 법회참석도 하지 못한 저에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열심히 기도해 주시니 너무 고맙고 고마웠습니다. 그러나 날이 가면 갈수록 다시 초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의사들은 계속 가망이 없다고 하니 세상에 이런 기막히는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오직 부처님께 매달리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아니 현대의학의 힘으로도 길이 없다는 겁니다.

  계속 몸 전체적인 경련이 일어나는 거예요. 경련을 할 적 마다 뇌세포가 죽어가며 계속 경련을 하면 아이는 버린다는 겁니다.

  가족이 한마음 되어 기도

  세상에 태어나서 꿈도 많고 희망도 많았던 어린 생명이 나날이 꺼져가고 있는 겁니다. 온 집안 식구가 무릎이 닳도록 부처님께 매달렸습니다.

  마음이 각각이던 우리식구가 모두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매일 아침 중환자실 앞에서 무릎에 피멍이 들도록 절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러하니 비웃는 사람도 많았지요.

  특히 기독교인들은 노골적으로 하나님 믿어야 살지 부처님 믿으면 아이는 죽는다고 해요. 3개월동안 온갖 소리를 다 들었어요. 좌절하며 허물어지면 본안보살님께서 채찍질을 해주셨지요. 야단도 많이 맞았습니다. 그래도 부처님이 야속한 적이 많았습니다. 반문도 많이 했고 절망도 많이 했습니다. '부처님 정말 계십니까? 부처님 계시다면 이 어린생명 이렇게 비참해 지도록 버려 두실건지요. 살려 주세요....'  하면서,

  이제는 담당박사님마저도 지치셔서 완전히 포기하고 치료를 중단하였습니다.

  천지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완전히 절망에 빠져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하도 답답하여 무당집도 가 보았어요. 아이를 보내 주라는 겁니다.

  엄마가 너무 애착을 하니 아이는 가지도 못하고 고생만 시킨다 하면서 너무 붙들고 있어도 좋지 못하니 보내 주라는 겁니다.

  여기저기 절에 다니는 분들, 기도 많이 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엄마와 인연이 없는 아이라는 겁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기도로

  너무 여러 날 지나고 보니 그도 그럴 듯 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아이를 보내기로 결정하고 나니 너무 서글펐습니다.

  이 어린게 전생에 무슨 죄가 그리 많기에 그 많았던 꿈,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저리 비참하게 가야 하나...

  허나, 이 세상과 인연이 없다면 할 수 없지요. '그래 병호야! 엄마가 잘못했구나. 어서 그 무서운 고통에서 헤어 나거라.'

  그리고 우리 다음에 다시 좋은인연으로 만나자꾸나! 부처님 우리 병호 어서어서 이 고통에서 구해 주소서' 하며 마음을 정리했지요.

  그러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법회에 가서 앉아 있어도 법문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고 하염없이 눈물만 나는 겁니다. 그렇다고 부처님 원망스러운 것도 아니고 그저 아무 생각없이 사람만 만나도, 부처님을 쳐다보아도 우리스님을 뵈어도 인사는 그저 눈물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일요일이 가고 월요일 출근을 하니 도저히 일을 할 의욕이 없습니다.

  여전히 1시 30분 면회시간이 끝나서 딸아이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말을 못하고 울기만 하는 겁니다. 뒷 말은 물어 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완전히 끝장이 났구나. 본안보살님께로 달려갔습니다.

  처음부터 자기자식처럼 안타까워 하시며 일심으로 기도해 주시던 본안보살님도 너무 기가 막혀 아무 말도 못하시다가 다시 희망을 주셨습니다.

  우리스님이 기도만 열심히 하라고 하셨는데 또 ' 남의 말을 듣고 마음이 흔들리느냐'고 야단을 하며 나무라셨습니다.

  '하면 된다는 마음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시각거사님께 마지막으로 기도한번 더 부탁해 보자고 하셨습니다.

  죽는 생명이 아니다. 기도 하라.

  그동안 수없이 큰스님도 시각거사님도 괴롭혀 드렸는데 또 염치없이 오시라고 하기가 죄송했지만 본안보살님이 도와주셨습니다. 기도하고 나오신 시각거사님 말씀이 '경련이 좀 멎을 것이다' 하시며 머리에서 나는 경련이 아닌 것 같으니 검사 다시 한번 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하셨지만 이제는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러시면서 큰스님을 한번 더 뵙자고 하셨습니다.

  다음날 새벽같이 병원으로 갔습니다. 의사들 말씀이 아이의 경련을 멎게 하려면 뇌로 올라가는 중추신경을 끊어야 하며 그러면 경련은 멎으나 아이는 식물인간이 된다는 겁니다.

  수술을 해서 식물인간이라도 살게 하느냐 아니면 그냥 죽게 두느냐 하는 합의를 보고 스님을 뵈러 가려고 했으나 박사님은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오전에 수술이 있고 오후에 병호때문에 여러 박사님들과 회의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박사님을 오후에 만나기로 하고 스님을 뵈러 불광사로 갔습니다.

  평상시 스님 앞에 앉으면 주눅이 들어서 겨우 삼배만 올리고 나왔는데 그날은 눈에 보이는게 없었난 봅니다.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부끄러워 스님을 뵈올 수가 없습니다.

  그동안 있었던 모든 아픈 일들을 푸념으로 돌렸던 겁니다.

   "중환자실 앞에서 기도하니까 하느님 믿어야 살지 부처님 믿으니까 아이가 죽는데요. 삼천배도 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등등...

  묵묵히 듣고 계시던 스님께서는 '죽는 생명이 아니다. 열심히 기도하라'는 말씀 외에는 아무 말씀도 안계셨스비낟.

  스님방을 나오니 시각거사님께서 '웬말이 그리도 많아 '하시는 말씀이 '아차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하고 말씀을 마구 드렸구나'라고 후회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지요.

  다시 병원으로 갔습니다. 박사님 방문 앞에서 가슴이 두근거려 문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며 박사님 방문을 여는 순간 이게 웬일입니까.

  여지껏 단 한번도 웃지 않으시던 분이 그날 환히 웃는 겁니다.

  어안이 벙벙해 하니 앉으라 권하시며 오늘 회의 결과가 아주 좋다 하셨습니다.

  의사 말씀이 뇌경련이 아니고 근육경련이라는 겁니다.

  수많은 컴퓨터 사진을 찍은 결과 중추신경이 너무 많이 다쳐서 소생이 불가능하다던 아이가 하루 아침에 바뀐겁니다. 스님께 하소연하며 울며 불며 하고 있는 순간에 병원에서 증세가 바뀐겁니다.

  누가 믿겠습니까? 누가 알겠습니까? 그 순간부터 거짓말처럼 경련도 줄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깨어 나지도 않은 아이를 데리고 중환자실에서 병실로 옮겼습니다.

  중환자실에서 나온지 3일만에 아이의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다친지 80일 만에 중환자실에서 나오고 83일만에 의식이 돌아오고 90일만에 말문이 터졌습니다. 애아빠는 너무 기뻐 엉엉 통곡하는 겁니다.

  한 때는 기가 막히고 슬퍼서 울었는제 지금은 기뻐서 웁니다.

  풀 한 포기에도 감사가

  너무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부처님 정말 감사합니다.

  안면있는 분들, 그리고 우리 불광식구들, 모두에게 감사했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해도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아침 일찍 병원길을 나오노라면 지금껏 한번도 의식 안했던 그 많은 수목들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나무 사이사이의 작은 풀 한포기도 그렇게 싱그럽고 감사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서야 스님 법문 생각이 났습니다.

  ' 작은 풀포기 하나에라도 감사한 마음이 들 때 모든 것이 이루어 진다'던 그 말씀이'''

  그리고 더욱 더 기쁜 것은 그 여러날 동안 의식이 없었던 아이가 깨어나는 순간부터 지난날의 모든 것을 다 기억한다는 겁니다.

  또 하루하루 눈에 뜨이게 회복되는 우리 병호를 보노라면 이 세상에 나혼자만이 자식을 둔 것같이 기쁘답니다.

  이제는 저혼자 조금씩 걷기도 하며 제법 농담까지 한답니다. 감사한 마음 어찌 표현해야 할가요. 그런 시련이 없었던들 저는 지금 번뇌, 망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깊은 죄의 구렁으로 빠져가고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참된 자비와 진리를 찾지 못했을겁니다.

  돌아온 나의 집 「佛光」

  밖을 좋아하던 남정네가 몸에 병이 들면 본가를 찾는다는 옛말처럼 제가 바로 그런 사람인 것 같습니다.

  다시 불광식구들 품에 안기고 보니 그동안 산란했던 마음은 간 곳 없고 포근하고 편안함을 느낀답니다. 마음도 든든하고요. 암흑에서 엄마 소를 잃어 방황하는 송아지에게 다시 엄마를 찾게 해 준 우리 병호가 한없이 자랑스럽답니다.

  우리 병호를 위해서 일심으로 기도해주시고, 걱정해주신 우리 큰스님,시각거사님, 그리고 우리 중구식구들과 불광의 모든 형제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이제는 한발자국도 헛디디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기도정진하는게 여러분에게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하며 세세생생 부처님 법에 살기를 맹세합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佛 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