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웃브레이크와 바이러스

21세기 생활과학

2009-08-02     관리자
“어머 서태지 패션이네요….”
날마다 병원에서 살지만 아직까지 입원을 해본 적은 없으니 그래도 비교적 건강하다고 자부하는 편인데 감기는 연중행사처럼 한두 번은 꼬박꼬박 앓고 지나간다. 요즘 감기는 유난히 골치가 아픈 것이 특징인 모양이다. 며칠 전부터 머리가 아프더니 결국은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일단 감기에 걸리면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몸이 불편한 것은 둘째치고 ‘의사 선생님도 감기에 걸리느냐’는 것이다. 선생님이 화장실 가는 모습을 처음 본 국민학생 모양 신기해하는 사람도 있고 한편으로 고소해하는(?) 사람까지 있고 보면 골치가 더욱 아파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쩌랴! 일단 고비는 넘기고 봐야지…. 두툼한 오리털 파카에 길다란 머풀러로 목을 두서너 번 감아 두르고 그것도 모자라서 마스크까지 쓴 완전 무장으로 출근했더니 간호사들이 내뱉는 일성이다. 마스크를 하는 것이 서태지와 아이들 중의 한 명이 유행시킨 새로운 패션 중의 하나란다.
서태지 패션이라는 것이 머리카락을 빨갛고 파랑게 물들이는 것만 있는 줄 알았더니 찬바람을 피하기 위해서 마스크를 쓴 것이 뜻하지 않게 유행의 첨단을 걷는 행운(?)을 누르게 되다니….

불치의 병-감기
과학발전과 함께 의학발전 또한 눈부신 것이었다. 평균수명이 그만큼 늘어났고 노인연령층이 증가해 왔다. 하지만 발달의 이면에 암, 에이즈 같은 불치의 병이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을 완치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연구결과는 아직은 듣지 못했다.
특히 에이즈의 경우 오는 2,000년이면 전 세계 인구 중 4,000만 명의 환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참담한 예측이 있고 보면 현대를 사는 인류에게 가장 무서운 질병은 에이즈인가?
에이즈가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가장 무서운 질병이라면 이 감기는 흔해 빠진 질병이다. 내과를 찾는 외래환자들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감기이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일년동안 가벼운 고뿔 한 번 앓지 않고 지나간다면 어쩌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만큼 흔하고 대수럽지 않은 질병이 또한 감기이다. 하지만 이 감기 또한 불치의 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아직까지는 감기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발견되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감기는 치료를 하건 하지 않건 대개는 일정기간이 지나면 저절로 치료가 된다는 것이다. 의사의 처방이라는 것이 그저 아차감염에 의한 합병증을 예방하고 증상을 완하시키는 정도가 고작이니 말이다. 치료를 할 수도 없지만 치료를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 병인 것이다.
결국 감기조차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의사들의 현실 때문에 ‘의사는 환자를 낫게 해주는 사람이 아니고 환자 스스로 병을 치유하는데 조그만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겸손을 강요하는 것이다.

영화와 에볼라 바이러스
우리를 걱정스럽게 하는 것은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아웃브레이크’라는 영화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수년 전 아프리카의 어느 마을에서 발생했던 바이러스가 원숭이의 몸 안에 잠복하고 있다가 원숭이가 생포되는 바람에 미국의 갤리포니아의 어느 마을을 죽음의 질병지대로 몰아넣는다는 내용이다. 공포의 사망률과 무서운 전염성 앞에 인간은 그저 하늘을 원망하며 죽어 간다. 방치할 경우 전체 인류의 멸종을 암시할 만큼 극도의 공포감에 떨게 한다.
이 영화의 모델이 되었던 에볼라 바이러스는 아직 그 치료법은 물론 감염 경로 등의 기초적인 역학도 알려지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한 번 발생하면 수십 명에서 수백 명씩 죽어가고 있다. 20년 전에 아프리카 지역에서 발생해서 400여 명의 사망자를 냈었고, 작년 4월에 또 발생해서 6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었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지난 19년 간 어떤 숙주에서 어떤 상태로 생식해왔는지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무서운 발톱을 감추고 있다가 언젠가는 또다시 인간에 감연되어 공포의 질병을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인플루엔자와 천연두
하지만 에이즈와 에볼라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마지막 바이러스가 아니라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우리가 흔히 독감이라고 부르는 인플루엔자의 경우 돌연변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끊임없이 진화를 거듭하고 발생할 때마다 때로는 수만 명, 때로는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영화에서처럼 자꾸만 새로운 변종이 나타나고 있다.
인플루엔자는 그 변종을 처음 발견된 지역의 이름을 따서 홍콩 독감이니 소련 독감 등으로 불리고 있다. 이미 에이즈 바이러스의 변종이 보고되고 있고 백신의 개발로 예방이 가능하다는 간염 바이러스마저 그 변종이 발견 되고 있다. 인플루엔자나 간염이나 백신이 개발되어 예방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변종이 생기는 경우에는 기존의 백신이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인플루엔자와 에볼라에 비하면 에이즈는 차라리 행복한 병일지 모른다. 수혈이나 성접촉이 아니면 전염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절제된 생활로 예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서처럼 에이즈 바이러스가 공기전염으로 감염되는 변종이 발생한다면 인류는 어떻게 될까?
에이즈와 에볼라처럼 과학의 발달에 역행해서 새로 발생하는 질병이 있는가 하면 수백 년 간 인간을 끊임없이 괴롭히던 천연두는 20세기에 들어서 백신의 발명과 함께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지난 1979년 이후 지구상에 단 한 명의 천연두 환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결국 세계보건기구가 천연두는 지구상에서 완전히 없어졌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러니칼하게도 자연상태에서는 멸종한 천연두 바이러스가 실험실의 종균샘플로는 아직 살아있다. 이 종균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과 연구용으로 계속 보관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해서 아직 결론을 내리지는 못하고 있는 상태다.
연구를 빙자해서 종균의 분양을 요구하는 곳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보관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는 ‘아웃브레이크’에서 악역으로 나오는 장군처럼 바이러스를 무기의 하나로 착각하는 사람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