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화와 일과 수행

생활로서 수행한다

2007-05-29     관리자

  과거도 미래도 생각지 않고 오직 그 순간에만 완전히 몰입하여 새롭고 밝은 마음으로 아무 선입견 없이 그리는 초심(初心) 이것을 하루일과에 옮겨보니까 미운 마음, 복수심, 편견심 등 정신적인 독과 고통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창의력과 일의 능률까지도 향상 되었다.

  "생활로서 수행한다."

  우리가 아침에 깨어나 먹고 일하고 잠자는 등등 살아 숨쉬며 활동하는 모든 것들이 부처님께 이르는 길이며 수행일진대 달리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러나 나 역시도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생활하게 된 것이 그다지 오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  역시 특별한 인연으로 비롯되었기에 이 이야기를 소개할까 한다.

  내가 한국에 온 것은 1968년이다. 미국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한국에 오게 되었다. 처음 근무지는 전북  부안군 변산면으로 나는 그 마을의 한 가정집에서  하숙을 했다.

  지금은 이 세상분이 아니지만 그 집에는 마음씨 좋고 순박한 할머니가 계셨다. 그 할머니는 5남2녀의 자식이 있었음에도 마치 나를 친아들처럼 대해 주셨다.

  마을 사람들이 " 도대체 누군데 그렇게 잘해 주는냐 " 고 할 때마다 " 부처님이 보내 주신 내 아들이라 "고 했다(그런데 실제로 내 나이와 할머니의 죽은 여섯째 아들이 나이가 똑같았다). 그리고 할머니는 '불교는어려운 것이 아니며 분별 없이 베푸는 것이라' 고 자주 말씀하시며 그렇게 사신 분이셨다.

  그 당시에는 ' 부처님이 보내주신 내 아들 ' 이라는 말 뜻을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차츰 그 말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더 1970년대 초 나는 서울에 오게 되었고, 주위에서 많은 불자들을 만나고 이 분들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기도 했다. 불교를 체계적으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대원정사 야간 불교교양대학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난 정오 보살님의 인도로 불광사 광덕 큰스님으로부터 법해(法海)라 는 법명을 받기도 했다.

  불교교양대학을 졸업하고 " 어떻게 계속 공부를 해야 하나 " 하고 고심하던중 희안한 일이 벌졌다.

  어느날 묘한 기분이 들어 집에서 향 하나를 피우고 한지 한 장을 접어 염색물을 투입했다(이 일은 평소에 내가 취미 삼아하는 일이다). 어느 정도 말린 후 펴보니 승복형상위에 나비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이었다.

  '나비춤' 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염색 작품은 뜻밖에 제 11회 대한민국 불교미술제전에 입선, 전시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떤 스님이 이 그림의 작품경위를 들으시고는 " 나비춤을 하는 곳에 가서 그림을 배우라 " 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로서는 그 스님의 말씀이 수수께끼 같은 대답이었다.

  얼마 후 나는 미국인 건축학 박사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 분은 그 다음날 봉원사에 계시는 단청과 불화의 인간 문화재이신 만봉 스님을 만나기로 했는데 통역을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이튿날 봉원사 사하촌(寺下村)에 있는 만봉 화방에서 처음으로 만봉스님을 뵙고 인사를 드린 후 통역을 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냐고 여쭈었더니 절에서 나비춤을 하고 있다고 말씀 하셨다. 나비춤이라는 말씀에 깜짝 놀라 화방에 꽉찬 불화를 바라보며 그 음악소리를 듣고 있노라니까 미술전시회 때 그 스님의 말씀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후 만봉 스님을 한번 더 찾아뵙고 본격적으로 불화습작을 시작했다. "불화를 제대로 배운다는것은 9천 장의 그림을 그려야 하는 엄청난 작업이다. 시간으로 따지면 20년이 걸려야 한다. 초기 단계에 시왕초(十王草)의 원본 위에 한지를 놓고 1천장을 먹물로 그대로 베낀 후에 원본을옆에 두고 목탄으로 1천장을 그려야 하고 그 다음에 시왕초의 1천장을 그려야 하는 자초(自草)라는 과정이 있다.

  중간단계에는 천왕초(天王草)를 똑같은 식으로 3천장, 그리고 고등 단계에는 여래초(如來草)를 같은 식으로 3천장 그려야 한다. "

  만봉 스님으로부터 이러한 설명을 들은 나로서는 그 자리에서 졸도 할 정도로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뿐 선뜻 시작하기엔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그런나 나는 금어(金漁 : 불화나 단청을 완벽하게 배운 미술가)가 되겠다는 욕심없이 스님의 지도에 따라 차분한 마음으로 습작을 시작했다.

  만봉 스님께 배우게 된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한장씩 한장씩 시왕초를 그리며 차차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대원정사 강의시간에 배운 불교교리가 불화습작 속에 숨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먹, 벼루, 붓, 한지, 화진(畵鎭)등을 준비해놓고 방석에 앉아서 한장을 그릴 때마다 우선 삼라만상께 합장을 하고 반배를 한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겸손심과 존경심을 기르는 반족의 연습이므로 습작하는데는 무엇보다도 항상 경건한 마음의 자세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복잡하게 사는 현대인들이 흔히 지나치기 쉬운 것이 초심(初心)이라고 생각한다. 불화습작에서 10장을 그려 보았던 1천 장을 그려보앗던 8천장을 그려보았던지간에 그릴 때 마다 새롭고 밝은 마음으로 아무 선입견 없이 그려야 하는 것이다. 과거도 미래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이 순간, 이 붓, 이 먹물, 이 한지에만 완전히 몰입하는 방법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를 반복하므로써 집중력을 기르는 것이다.

  불화습작에서 실천하게 되는 이 초심을 하루일과에 옮겨보니까 놀라울 정도로 생활 태도가 달라졌다. 선입견이 없어지며, 미운 마음, 복수심, 편견심, 등등 정신적인 독과 고통이 없어질 뿐만 아니라, 못하겠다던가 하기 싫다던가 하는 핑계나 아상과 아집이 없어지고 창의력 또한 어느 정도 발휘하게 되는 것 같기도 했다.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며 두려움이나 미숙한 감정도 없어지고 근무하는 태도나 일의 능률 까지도 향상 되게 해주는 이 초심방법이야말로 종교에 관계없이 누구나 실천한다면 일상생활이 좋아지고 대인관계도 좋아질 수 있는 생활의 한 방편이 아닐까.

또한 불교교리의 하나인 인과론(因果論)에 따르면 특정한 결과보다는 실천하는과정이 중요하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결과 자체만이 목적이어서는 안되는 법이다. 일을 해가는 과정에서 한눈 팔면 실수하기가 쉽고 그 결과는 그 만큼 저절로 틀리게 된다. 과정에만 집중하고 잘하면 결과는 저절로 좋은 것이다.

이 교리는 습작하는 사람에게, 근무하는 사람에게, 더 나아가서 이 사바세계의 모든 일에 뿐만 아니라 내생에까지도 해당되는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있다면 청정심이다.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아름답게 긴장없이 자연스럽고 맑고 밝게 해야 하는것이다.

만봉 스님께서 그렇게 말씀을 해 주셨듯이 우주의 영원함에 비해서 20년간의 연습작업은 아무것도 아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이 45년동안 설법을 하신 그 기간도 찰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인류를 우주의 결과가 아니고 우주의 과정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올해로서 한국에 온 지 23년째가 된다. 아침에 일어나 부처님 전에 예불을 올리고 만봉 화실에 나가 4시간씩 탱화 공부를 한지도 벌써 5년째를 맞는다. 직장(대우 기획조정실 기업문화부)에 나가 일하는 5시간 마저도 탱화 그리는 일에 쏟고 싶지만 이것 또한 나의 수행과 떨어져 있지 않은 또 다른 수행이기에 열심히 한다. 지금까지 2,300여장의 시왕초를 그리고 있지만 넘쳐나는 법열로 눈물 흘린 것이 몇번인지 모르겠다. 죽는 그 날까지 한국에 살며 탱화를 계속 하고 싶다. 관세음보살탱화를 그리더라도 그 탱화를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자비심이 일어나고 신심이 솟아날수 있는 그런 탱화를 그리고 싶다.

 그리고 또 하나 불교관계 서적을 힘닿는대로 번역하고 싶다. 광덕 스님의[보현행원품 강의]와 [청화 스님 설법집] 그리고 한국 불교전설들을 번역하여 널리 알리는 일을 앞으로의 원으로 삼고 있다. 이 모두가 전법의 좋은 방편이 될 것이며 나의 수행의 길이기 때문이다.

브라이언 베리 : 대우기획 조정실 기업문화부에 근무중. 조계종포교사 연등 국제불교회관 창립멤버로 매주 일요일 염불회를 지도하고 있으며, 저서에 영역본 [ 자기를 바로 봅시다 ][부모은중경 ] [108대 참회문] {무상게]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