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 탐방] 조계종 종정 노천 월하 큰스님

부처님 닮아가다 보면 평상심을 찾을 수 있지요

2009-08-02     사기순

매섭던 겨울바람도 영축산 통도사에 이르니 슬그머니 꼬리를 감춘 듯 불보종찰(佛寶宗刹) 통도사의 햇살은 유난히 따사로웠다. 푸르디 푸른 노송림, 그 솔바람 향기에 마음을 빼앗기며 조계종 종정 노천월하 큰스님을 찾아 뵈었다.
통도사 정변전(正徧殿)에 주석하고 계시는 노천월하(老天月下) 큰스님은 앳살보다 따사롭게 다가왔다.
“날씨도 추운데 먼 걸음을 했구먼. 어서들 들어오세요.”
큰스님은 편안하고 자비로웠다. 사실 종단의 최고 어른스님을 찾아뵙고 말씀을 여쭙는다는 것 자체에 적지않은 부담감을 갖고 있었는데, 그 미소, 그 말씀만으로도 잔뜩 움츠렸던 기자의 마음이 봄눈 녹듯 풀어졌다.


―스님, 건강은 어떠신지요?
“그저 근근이 지내고 있어요. 요새야 나이가 여간 많지 않아서는 많다고 할 수도 없고, 내 나이에 그래도 잘 지내고 있는 편이지요.”

―제가 뵙기로는 좋아보이시는데요.
“그렇지도 않아요. 사람은 다 나이가 들면 체력도 떨어지기 마련이고 박력도 줄기 마련이지요. 어디 사람뿐인가. 짐승도 나이를 먹으면 조그라들다가 죽고, 나무도 늙으면 모자라져요. 크는 데 한계가 있지. 이파리가 더 이상 무성해지지도 않고, 오던 새들도 안 와요.
자연의 이치가 그런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이치를 모르고 ‘나는 와 이런고’하면서 애면글면 속을 태우다 보면 그게 병통이라. 요즘 사람들은 그런 것을 보고 스트fp스라고 하던데, 우리는 예전에 우수사려(憂愁思慮)라고 했지요.”

―네, 요새 현대인들 중에는 스트레스성 질병을 앓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위해 한 말씀해주십시오.
“스트레스가 됐든, 근심스러운 생각을 자꾸 하는 우수사려가 되었든 다 자기가 하는 것이에요. 안 해도 될 것을, 또 해보았댔자 해결될 수도 없는 것을 자꾸 근심해서 스스로를 옭조이거든. 그게 문제라, 결국 스트레스를 덜 받기(스트레스는 분명히 남이 주는 게 아니라고 강조하심) 위해서는 마음공부하는 방법밖에 없지.”

―스님 말씀을 듣다보니 불교는 마음의 종교라는 말이 얼핏 생각납니다. 스님, 어떻게 하면 마음공부를 잘 할 수 있을까요?
“불법지재세간중(佛法只在世間中) 이세멱불구토각(離世覓佛求兎角)
진심지재망념중(眞心只在妄念中) 이망멱심구구모(離妄覓心求龜毛)라.
이 말씀은 ‘불법은 자못 세간 가운데에 잇고, 세간을 여의고 부처님을 찾는 것은 토끼뿔을 구하는 것이다. 참된 마음은 단지 망념 가운데에 있다. 망념을 여의고 마음을 찾으려는 것은 거북이 털을 구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지요.
마음공부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 불자들이야 살아가는 순간순간 부처님 말씀대로 살려고 최선을 다해 애쓰고, 부처님 닮아가다 보면 저절로 우리 마음 속에 있는 평상심을 찾을 수 잇지요. 그래서 복잡한 업덩어리를 쉰 참된 마음자리를 보게 되면 스트레스도 괴로움도 다 마음의 장난인 것을 알고 허허 웃으며 만사에 자유로울 수 있는 거에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라는 말씀이신데요. 초심자들도 알 수 있는 부처님 말씀을 들려 주십시오.
“제악막작(諸惡莫作)하고 중선봉행(衆善奉行)하고 자정기의(自淨其意)하면 시제불교(是諸佛敎)라, 무릇 모든 나쁜 짓은 짓지 않고 착한 일을 행하고 스스로 마음을 맑히면 그것이 바로 불교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해주셨지요.”

―세상사람들은 불교가 어려운 걸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스님 말씀 덕분에 오해를 풀게 될 것 같습니다. 불교가 어렵다는 것 외에도 불교를 치마불교니, 기복불교니 하는 말에 수긍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듯싶은데요.
“기복불교라, 복을 기원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에요. 기복은 불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가 다 기복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잇지요. 그런데 사실은 부처님이 복을 주는 게 아니에요. 부처님은 유정(有情)이 다 떨어지신 분이라 실로는 복을 주고 받고 하는 경계를 벗어나신 분이에요.
다만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복을 짓는 방법을 일러주셨을 뿐이지요. 복을 짓는 것도 받는 것도 다 각자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다는 것을 깨닫고 힘써 수행하고 실천하는 불자를 공부가 익은 불자라고 할 수 있어요.”

―결국 기복에 그치고 말면 껍데기 불자라는 말씀이신 것 같은데요?
“그렇지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온 우주의 이치를 깨닫고 보니, 업을 짓고 죄를 짓는 사람들이 많은 거라. 하도 안타까워 왜 그런가 살펴보니 이 육체라는 놈 때문 아닌가.
이 육체를, 이 몸뚱아리를 잘 입히고 배부르게 하기 위해서 탐심도 내고 진심도 내고 온갖 어리석은 행동을 일삼는단 말이에요. 그래 부처님께서 몸뚱아리 조복받고, 몸뚱아리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사는 생사 자유자재의 그 좋은 도리를 사람들에게 곡진하게 설하셨는데 사람들이 다 못 알아먹는 거에요.
부처님께서는 이러구러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진리의 세계로 이끌 수 있을 것인가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지요. 하루는 사람들을 불러모아 각자 소원을 애기해보라고 했어요.
어떤 사람은 복을 많이 주세요, 또 다른 사람은 명을 길게 해주세요, 병을 낫게 해주세요, 아들딸 낳고 부자로 살게 해주세요, 사업성취, 학업성취 등등 각각 소원은 다르지만 원 근본에는 몸뚱아리에 집착하는 소원뿐이었어요.
허, 칠팔십년 후에 숨떨어지면 다 소용없는 복만 구하고 잇으니, 죽어도 죽지 않는 생사를 초월하는 그 좋은 방법이 있는데 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별볼일 없는 소원만 얘기하고 있으니….
부처님께서는 쓴 약에 감미를 입히듯이 일단은 부처님과 가까워지게 하기 위해서 기복법(방편시설)을 베풀어 놓으셨어요. 기도하면 복도 받고 명도 길어지고, 사업성취도 잘 되니까 자꾸 재미를 붙여서 부처님전에 와서 기도하는 거라. 그렇게 자꾸자꾸 부처님전에 기도하고 염불하고 수행하다 보면 점차 스스로 기복에서 벗어나 진짜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어요. 그래서 기복도 필요한 거라.
그런데 막연하게 불교를 믿으면 더디니까 부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거레요. 알고 믿드면 자연 인식도 빠르거든요. 어쨌든 기복에만 머물러 있으면 참된 불자라고 할 수 없어요.

―젊은 불자들은 무조건적으로 기복을 멀리하는 경우가 있는데 스님 말씀 덕분에 기복의 신묘한 이치를 오늘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 60여 년을 한결같이 수행정진하시어 저희 불자들을 이끌어주셨는데요. 출가 이야기, 수행이야기가 퍽 궁금합니다.
“출가한 지는 너무 오래 되어서 이제 다 잊어버렸고, 수행이야기라, 오던 날부터 시작해서 오던 날부터 해온 수행을 어떻게 이야기하누. 복을 짓는 것도 스스로 하는 것처럼 수행 역시 스스로 해야지 남의 이야기 백날 천날 들어보았자 헛일이에요. 그리고 마음공부라는 게 표나는 일도 아니고, 업적으로 남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가 없어요.
수행에 대해 조예가 없는 사람은 얘기해도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만약 얘기해주고 보여줘서 알아듣고 깨칠 수 있는 거라면 부처님 당시의 대중들은 다 깨달았을 거예요. 부처님 생전시에 매일같이 부처님과 함께 공양하고 함께 수행하고 함께 잠을 잔 이들이 1200대중이었어요. 그런데도 오직 영산회상에서 부처님의 정법을 알아들은 분은 가섭존자 한 분뿐이셨지요. 그렇듯 마음 닦는 것은 말로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표현할 수도 없는 것이에요.”

―수행하시면서 특히 인상에 남아 있는 분이나 재미난 일화가 있으신지요?
“도반들이고 스승님들이고 대부분 고인이 되셨지요. 난 본시 기억을 안하고 덤덤하게 사는지라 뭐 별로 할 얘기가 없네요. 다만 충남 예산 덕숭산 수덕사의 만공 스님 회상에서 몇철을 났는데 지금도 기억에 남고, 저기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에서 한암 스님께 참선지도를 받은 게 인상에 남아요. 두 분 스님 다 당대 제일의 선지식이셨지요.
또 재미난 이야기라, 허 참, 우리 스님네들은 무자미(無滋味)가 재미라. 시쳇말로 재미있다고 하는 게 없지요. 굳이 재미있는 것을 들자면 그저 선방에 않아서 꾸벅꾸벅 졸고 앚??있는 거라고나 할까요.”

―스님, 병자년 새해 벽두에 우리 불자들에게 한말씀 해주십시오.
“우리 불가(佛家)에서는 나날이 새날이고 새해입니다. 그만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알차게 살아야 해요. 새해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부처님처럼 섬기고 수행에 힘씁시다.
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지족제일부(知足第一富)라고 하셨어요. 족한 줄 아는 것 이상 가는 부자가 업성요. 마음에 부족함을 smRLaus 느낄수록 허덕이게 마련이고 끝내는 물질에 휘말려 정신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불교를 믿는 것은 지족함을 배우는 거라고도 할 수 있어요.”

―지족함의 교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말씀이 아닌가 합니다. 결과적으로 지금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 모든 문제들이 만족할 줄 모르는 탐진치 삼독심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일어난 소소한 문제뿐만 아니에요. 사람들이 겉으로 겉으로 껍데기에만 신경쓰고 문화가 물질문명으로 치닫다 보니 이루 말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어요.
환경문제니 전쟁이니 하는 것도 다 인간의 허망한 욕심, 만족할 줄 모르는 전도된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에요. 이제는 스님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외형은 그만 신경쓰고 마음 찾는 공부를 해야 합니다. 모두가 수행인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말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표가 될 한말씀만 더 해주십시오.
“부처님께서 이미 다 해놓으셨는데 내가 어디 따로 할 말이 있겠어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만 살면 그게 바로 잘 사는 길입니다.
예를 들면 불교에는 불자들이 지켜야 할 계율이 아주 세세하게 잘 되어 있어요. 다른 종교에는 10계가 있는데, 불교에는 5계, 10계, 250계, 348계가 설해져 있어요.
사람들은 이 계를 어느 특정인, 특히 비구 250계, 비구니 348계 등은 스님들만 지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게 그렇지 않아요. 문명국의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다 계를 지킬 수 있어요. 계를 잘 지키는 사람이 많아질 때 이 사회는 상식이 통하는 정의로운 사회, 밝은 사회가 되고, 그대로가 불국토가 될 겁니다.
그리고 또 한마디 덧붙이자면, 주체성이 있는 민족이 되자는 겁니다. 내가 구식이라 그런지 모르지만 요즘 시내를 다니다 보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거리의 간판마다 뜻도 알아보기 힘든 정체불명의 외래어가 범람하고 있는 것을 볼라치면 딱하기 그지 없습니다. 막걸리 한 잔 파는 데도 슈퍼라고 하고 물건 몇 가지 쌓아놓고는 센타라고 하는데 그게 맞는 말인지.
또 요새는 세계화다 뭐다 해서 외국어 교육을 어릴 때부터 시킨다고 하는데 참, 서양것을 배우는 것은 다 좋은데 무조건 따라가니 문제예요. 말은 곧 혼이에요. 말을 한 가지 쓰더라도 그 의미를 알고 제대로 쓰고, 될 수 있으면 우리 것을 살리고 아껴야 해요.
어쨌든 주체성을 바로 세우고 계율을 잘 지키면서 부처님 말씀대로 하루하루 날마다 새롭게 살면 우리의 본래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나 개인은 자유자재의 탕탕무애한 경지에 살게 되고, 사회는 밝아지고, 우리 나라는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로 발전하게 되리라 봅니다.”

―스님, 오랜 시간 귀하신 말씀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