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심을 잃지 않는 일상 생활로

생활로서 수행한다

2007-05-28     관리자

  자리이타의 보살정신은 곧 대자비심이고 평상심이고 무위심이고 무염착심이고 공관심이고 공경심이고 자기의 마음을 낮추어 겸손하게 하는 것이며 덕을 심는 것이다. 또 무상보리의 마음이다.

  현재가 중요하다

  ' 전생사를 알고자 할 땐 현재의 생활을 보라. 내세를 알고자 할 땐 현재의 생활에 충실해라 '

  이런 말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간단한 염불을 하고, 오늘 할일이 몇 가지인지, 꼭 오늘 해야 할 일을 중요한 것부터 머리에 기억해 둔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도 잠깐 참선을 하든지 항상 염(念)하는 주(呪)를 외우든지 하고 나서 자면 꿈도 없고 잠도 잘 온다.

  물론 부수적으로 오늘 내가 멍청이 머저리 짓은 아니 했는지, 나로 인하여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일은 안했는지 점검하고 지나가야 한다.  돈이 움직이는 경제만 점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 살림살이도 꼭 결제를 하고 지나가야 진보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자면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는 믿음(耽念)은 동덕의 모체가 된다 말하고 있고 [법화경]에서도 중생을 개시오입시켜서 신해행증으로 수행해 나가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일년 열두달을 사계절로 나누면 한계절이 삼개월 되는 셈이다.  삼개월은 구십일이다.  이 구십일 중에 칠십이일은 봄이며 나무(木)의 계절에 속한다.  나머지 십팔일은 흙(土)이 들어서 구십일을 성사시킨다.  흙이 없으면 무엇이 이루어지지 아니한다.  오행(金木水火土) 중에 흙(土)은 믿음(信)에 속한다.  세계 어디를 가나 진실한 믿음은 곳곳에 기적을 남기고 통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래서 기도 중에 제일 큰 기도느 진실한 믿음이다.

  염불선(禪 . 淨  修)

  옛 조사 스님은 목숨을 떼어놓고 간화선(看話禪)을 하되 자기 머리에 불이 붙어 있는 것을 구하는 것처럼 절박하게 하라 하였다. 화두를 들되 숨 한 번 못 쉬면 내세인 것을 생각해서 주야에 화두를 들고 어묵동정에 일여(一如)하게 해야 한다 했다.

  이것이 직지인심 견성성불 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다시 말하면 화두를 간(看)하는 일로(一路)가 마음을 밝히는 절요(切要)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자연은 천차만별이다. 즉 꽃중에도 다년생 꽃이 있고 또 일년생 꽃 중에도 민들레 채송화 백일홍 등등 모양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다.

  그렇지만 빛난는 태양은 어디를 가나 하나이고 빛깔도 같은 색이다. 인간도 동양인도 있고 서양인도 아프리카인도 중동인도 있다. 그러나 선과 악을 구별할 줄 아는 마음은 똑같은 것이다. 그래서 자기의 생활과 근기에 맞게 하나를 택해서 진실하게 공부해 가면 된다.

 명나라 때 유명한 선문종장(禪門宗匠)인 감산덕청 스님은 " 고인들이 참선을 말하려면 화두를 끌어서 말하기는 하였지만 모두 부득이 해서이다. 공안이 비록 많이 있지만, 유독 염불만이 착실하게 살필 수 있는 화두라 하였다. 진로(塵勞)가운데서는제일 쉽게 힘을 얻는곳이다 " 하였다.

  염불로 염불삼매에 들어가서 전심정업(專心淨業)을 닦을 수 있다. 진나라 때 유명한 혜원(慧遠)스님은 여산(廬山)에서 육시정업(戮時淨業)을 닦았으며 서방정토에 나기를 발원하였고, 그의 스승이며 중국 초기불교의 불멸의 공이 있는 석도안 스님도 말년에 도솔천 내원궁에 나기를 기원 하였다.

  [기신론]에서도 진여문에서 생멸문 나중에 염불문으로 회통을 치고 있다. 염불과 참선을 겸하여 행하는 것이 지극히 온당한 법문이다. 덕청스님은 " 지금 염불하는그 놈이 바로 자성미타(自成彌陀)이고, 정토(淨土)를 구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바로 극락이다 " 하였다. 모든 사람이 정말로 염염(念念)을 잊지 아니한다면 마음마음에 아미타불 부처님이 출현하고 걸음 걸음마다 극락의 고향에 이른다. 그런데 무엇하러 멀리 십만억 국토 밖에 따로 정토를 구하여 살아가고자 할까 하였다. 이것이 " 아미타불재하방 착득심두절막망 염도염궁무념처 육문상방자금광 (阿彌陀佛在何方 着得心頭切莫忘 念到念窮無念處 六門常放紫金廣 )--- 아미타불이 어느 곳에 계시는가. 마음 마음을 붙들어 간절히 잊지 말라 생각이 끝간데 가서 생각이 없으면 여섯 기관에서 자금의 광명이 빛나리 " 와 같은 뜻이다.

  옴마니 반메훔을 하든지 신묘장구 대다라니를 하든지 능엄주를 하든지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지장보살을 하든지, 어느 것을 택하여 진실로 하면 된다.

  주(呪)는 진언(眞言)이다. 혹은 다라니(陀羅尼)라고 이름한다. 또는 총지문(總持門)이라고 한다. 이것은 모든 불보살의 득과를 얻은 심법(心法)의 결정을 수지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무량수불이 있다. 그러므로 무량다라니문 (無量陀羅尼門)이 있다. 또한 무량수불(無量數佛)이 수지해서 성공한 득과가 있다. 염불을 배우는 자가 많이 각종을 다 염하는것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해도 된다. 어느 한 경이든 무슨 주이든 하나를 정해놓고 일심불난(一心不亂)하고 일문(一門)으로 정진하는 것을 종(宗)으로 해야 한다.

  마땅히 일법(一法)이 일체법(一切法)과 같이 평등한 뜻을 알아야 한다. 저 법성게(法性偈)에 " 일중일체 다중일 일즉 일체 다즉일(一中一切 多中一 一卽一切 多卽一) " 의 뜻을 알아서 일치불난(一致不亂)의 경계에 도달해야 한다.

  여기에서 옴마니 반메훔의 공덕을 소개하고자 한다. 관세음보살의 주(呪)인 육자대명신주(六字大明神呪)는 관세음보살의 미묘한 심인(心印)이다. 무량무변 불가사의한 공덕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이 패를 목에 걸고 다니기도 하고 정성껏 주력도 한다. 그러면 무량한 제불보살이 곁에 있으며, 천룡팔부(天龍八部)가 호지함을 얻게 된다. 무량삼매 법문을 갖추고 있어 육바라밀의 원만한 공덕을 행하게 된다.

  관세음보살은 구원겁에 이미 성불을 하여 마치었다. 그 때의 불호(佛號)는 정법여래(正法如來)였다. 중생을 제도 하기 위해서 보살의 몸으로 나투셨다. 만약 그 이름을 염송하면 " 천처기구 천처현(千處祈求 千處現)" 해서, 연을 따라 감응하지 아니함이 없고 미혹한 중생을 인도하지 아니함이 없다.

  그리하여 무량복을 얻게 하고 무량한 죄를 소멸하게 한다. 이 주를 차고 다니거나 항상 보살의 성호를 염송하는 자는 조난사고에서 생을 얻을 수 있고 스스로 능히 업장이 소멸되어지고 복과 지혜가 증장되어지고 흉을 만나더라도 길(吉)로 화(化)하게 되고 난(難)을 만나더라도 상서로운 일이 들어오게 되고 속히 무상보리를 얻게 된다 하였다. 그러므로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보배이며 마음을 밝히는길이 된다.

  평상심(平常心)이 도(道)이다

  고려 말 이조 초기에 김백곡(金柏谷一得臣)이란 유학자가 있었다. 백이숙제전(伯夷叔齊傳)을 일억 일만 팔천 번을 독송했다고 하며 자기가 사는 정사를 억만제(億萬齊)라 했다 한다. 송대의 정자(程子)도 중용(中庸)을 만 번이나 독송했다고 한다.

  이런 것도 염불이나 마찬가지이다. 또 효제충신(孝悌忠臣)은 무성지락(無聲之樂)이라 한다. 소리 있는 음악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으로 울릴 수 있엇던가. 이것도 무가보의 보배이다. 이런 것은 모두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일상 생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중국 송나라 때 소동파거사는 대시인이기도 하며 동시에 저명한 서법가(書法家)이고 화가이다. 당나라 때의 한유(韓愈), 유종원(柳宗元), 북송(北宋)의 구양수(歐陽修)와 같이 당송 팔대가 중의 한 사람이다. 세상에서는 이들은 '한유규소(韓柳歐蘇)'라고 한다.

  그는 성품이 강의정직해서 아첨하는 소인배의 참소로 좌천도 많이 당했다. 그가 항주(沆州)에서 관(官)을 지낼 때의 일이다.

  하나의 안건이 들어 왔는데, 빚을 꾸어간 자가 빚을 안갚는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가 조사해본 결과 빚진 자가 부채장사를  했는데 그 때 마침 장마가 져서 부채는 안팔리고 부채에 곰팡이만 많이 슬었다.

  이 딱한 사정을 보고 소동파는 부채의 곰팡이를 닦아내게 하고 부채에 시(時)를 써주면서 시장에 나가 팔게 해주었다. 부채가 날개돋친 듯 모두 팔리었다. 그 빚진 자는 빚을 갚았을 뿐만 아니라 소동파의 선심(善心)에 항주 백성은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또 어느 한 때는 일장(一場)의 대홍수가 났을 때 만백성의 재산과 생명을 보존해 주었다. 그가 항주에 있을 때는 당시에 원조율사(圓照律師)가 정통법문을 열었을 때이다.

  소동파는 그의 부모의 천복(薦福)을 위해서 화가에게 아미타불상을 그리게 하고 자신은 한 수의 시를 썼다. 그런데 이 시가 조정을 욕했다 하는 어떤 사람의 비난으로 인하여 옥에 갇히게 되었다.

  후에 신종(神宗)은 사람을 암암리에 보내서 그를 관찰하게 했는데 그 때 마침 그가 달게 잔 나머지 코고는 소리가 문밖까지 들려왔다. 그러므로 신종은 소식의 마음에 진실로 아무 일이 없음을 알고 출옥을 시켰다.

  그 후로 그는 맹세코 살생을 하지 않는 계를 가지었으며 그의 친구 진계상(陳季常)에게도 개와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 권하고 시를 써서 그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가한 시간이면 항상 안국사(安國寺)에 가서 분향묵좌(焚香默坐)하고 업장을 참회했다고 한다.

  그의 관리 생활은 부침(浮沈)이 많았다. 시골 관리로 내려 갈 때면 항상 아미타불상과 큰 표주박을 가지고 갔으며 밭사이의 작은 길을 천천히 걸으며 염불을 가창했다고 한다.

  그의 관리 생활은 떠돌았지만 시종 평상심을 잃지 아니하고 활달하고 명랑했으며 민간에게 관심을 보여주고 불법 가운데서 자비와 지혜로써 민중의 허다한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그는 임종시에 더욱 불호를 송지(誦持)하는 것을 그치지 아니하고 편안하게 왕생했다고 한다.

이것은 바로 불법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일상생활로 부터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예이다.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이러한 보살정신은 곧 대자비심(大慈悲心)이 평상심(平常心)이고 무위심(無爲心)이고 무염착심(無染着心)이고 공관심(空觀心)이고 공경심(恭敬心)이고 자기의 마음을 낮추어 겸손하게 하는것이며 덕(德)을 심는것이고, 잡란이 없는 마음이고 사견(邪見)이 없는 마음이고 무상보리(無常菩提)의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