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은 겁약이다

구도문답

2009-08-01     관리자

   염불과 기도


【문】저는 몸에 병이 있어 염불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염불할 때에 부처님 은혜를 생각하고 염불하는지, 그밖에 기도에 대하여 도움의 말씀을 바랍니다.

【답】염불은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끝없는 은혜 이시고 걸림없는 위신력이시고 무조건의 대자대비인 것을 굳게 믿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염불할 때나 염불하지 아니할 때나, 망심을 부리고 있을 때나 잠들어 있을 때나, 언제나 우리의 생명을 진리로써 충만해 주시고 대자비 은혜로 키워주시고 있는 것을 믿고 마음의 눈으로 보는 듯이 믿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에서 오직 염불하는 것입니다. 오직 일심으로 염불 합니다.

 이렇게 염불 기도하는 사람은 언제나 부처님의 크신 은혜가 함께 하고 있는 것을 알으므로 감사한 생각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부처님의 크신 은혜가 항상 함께하고 있는 것을 믿고 감사하며 일심 염불합니다. 그밖에 다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다른 생각들은 망념이며 수행에 장애가 됩니다.

 대개 기도의 성취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이 노력하므로써 점차 은혜를 입는다고 하느니 보다 은혜를 발견한다 하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다.

 이미 주신 은혜를 보지 않고 믿지 않다가 내 마음이 바뀌고 믿음이 청정해 지면서 부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확인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은혜가 함게하고 있건만 이것을 믿지 않는 것은 몰라서 그렇거나 아니면 무거운 죄의식 때문입니다. 허물이 있으면 참회하고 참회하고는 부처님의 은혜를 바로 믿고 정진하시기를 권합니다.

 부처님 무량위덕이 지금 내 생명에 원만히 드러나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그밖에 망념을 버리면 자연히 자신과 환경이 행복하게 바뀌게 됩니다.*

   절망은 겁약이다


【문】저는 믿고 존경하는 사람에게 배반 당하여 적지 않은 돈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살 의욕이 없고 절망뿐입니다. 살아야 할지, 죽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답】믿고 존경하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여 많은 돈을 잃은 모양인데 그 아픈 심정은 자신만을 잃은 정도가 아닌 것을 이해 하겠습니다.

 그러나 인생사를 널리 살펴 보면 무단히 피해를 보고 고통을 받는 듯이 보일 때도, 실로는 스스로의 무지이거나 스스로가 알지 못하는 인과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허물이 단연 없다 하더라도 과거에 지은 인과는 알지 못하는 것이 오늘 나타나서 고통의 결과를 볼 때도 있는 것입니다. 과거 인과에서 온 것이고 이것으로 과거인이 소멸되었다고 아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말은 위로를 위한 말이 아니고 어쩌면 진실을 보는 눈도 이런 말씀을 드릴 것입니다.

 도무지 살 의욕이 없어졌다고 하셨는데 사태는 절망이 아닙니다. 그련데도 절망을 인정하고 절망해 버린다는 것은 물론 잘못입니다. 나무의 싹을 꺽어도 새싹, 새순이 나는 것처럼 우리들은 백번 실패했더라도 다시 새로운 것을 시작할 자유와 가능성과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절망은 없습니다. 어떠한 상황도 넘어선 위대한 지혜와 힘과 성취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인간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좌절한다는 것은 스스로 무지하거나 겁약하거나 안이한 해결을 바라는 게으름의 소치입니다.

 세간사는 흘러가는 구름과 같습니다. 인간 자신은 허공과 같고 태양과도 같습니다. 위대한 자신이 허망하고 있다가 곧 없어지는 구름같은 일로 해서 자신을 몰각하고 절망할 수야 없겠지요. 일심 염불하여 절대 무한대의 대성취의 자신인 것을 믿으며 새로운 꿈, 새로운 용기, 새로운 상상, 새로운 행으로써 성공과 기쁨을 거두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영혼이 오고 가나?


【문】사람의 혼은 수백개라고들 하던데요. 49재를 베풀면 영가가 좋은 곳으로 태어났다면 그 사람의 기일에 제사 지낼 필요가 있을까요? 그런데도 천도행사에 오래된 선망부모까지 동참 축원할 필요가 있을까요? 영가는 벌써 업을 따라 육도중 어느 곳이든 가지 않았겠습니까?

 또 혼이 여러 개 있어서 혹은 업대로 가고 혹은 무덤에 남아 있기도 하는가요? 또 집터에 명당이 있다던가 사주에 따라 운명이 좌우되는가요? 금생의 노력에 따라 운명적 사주팔자도 변경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답】불법은 원래가 이론이나 사유 밖에 도리이므로 말로 설명한다는 것은 원래가 어려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물을 대하여 사유하고 논리적 합리과정을 거쳐 긍정도 부정도 하고 있으므로 말이 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도 역시 말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하문하신 바 혼에 대하여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첫째 물음이, 혼이 하나이냐? 여러 개이냐? 인데 혼은 미혹한 의식형태, 행위와 사유의 의식적 형태라고 할는지……하여튼 혼이란 업의 총체적 표정이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미혹상태는 우리가 육체로 볼 수 있듯이 업의 형태도 다양합니다. 그러나 원래가 법성진여가 있을뿐이고 미혹하여 나타난 겉 현상은 실이 아닙니다. 미혹한 경계에서만 있게 되는 것이지요. 법성은 원래로 생각 할 수 없습니다. 하나라고도 할 수 없고 절대라고 하여도 부득이 한데서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실로는 법성 본성이므로 나뉘어도 나룰 수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절대적인 하나 법성진여일 뿐입니다. 깨달아도 그것, 미혹해도 그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인간이 됐든 죽었든 천상에 태어났든 이웃집 아기로 태어났든 원래가 동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혼이 수백개라고 말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또한 어디에 태어났든 그를 향하여 공양하거나 그를 위하여 독경하는 것은 그 사람의 면전에서 하는 거와 조금도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위패를 차려 놓고 제사 지내는 그 자리와 새로 태어난 천상이나 이웃 사람과 거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49재 이후 타방세계에 태어난 사람에게 제사나 독경공양하는 것이 유효합니다. 기도때나 우란분재에 천도 공양해도 유효합니다. 우리의 관념으로는 영가가 간다 온다 하지만 법성은 본래가 거래(去來)가 없는 것을 생각하시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또 집에서 3대까지 제사를 모시는데 그 제사에 올 영가가 없다는 생각도 해답이 아닌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 삼혼칠백을 물으셨는데 저는 아직 그런 것을 잘 모릅니다. 미혹한 사람의 구조를 생각하는 사람들이(예:심령학), 사람은 육체 아래에 감정과 욕망을 통솔하는 유체(幽體)가 있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에텔체. 그리고 유체보다 깊고 안정된 이성체인 영체(靈體) 그리고 근본 중심인 심체 또는 본체가 있다고 하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사람은 깊은 심성과 겉 육체에 이르는 사이에 다층의 단계구조를 이루고 있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여기서 보면 육체에 가까운 유체나 에텔체 등은 육체는 설사 허물어져도 잠정적 존속이 가능하나 그것은 깊은 본체의 뒷받침이 없으므로 조만간 소멸 된다고 볼 것입니다. 옛부터 이르기를 사람이 죽으면 혼은 극락에 돌아가고, 백은 땅속 유택에서 편히 머물라 한 것도 이런데서 온 생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인간 본성이 분열 될 수 없고 나뉠 수 없습니다. 욱체다, 영혼이다. 나누는 것은 현상적 인식을 토대로 한 입장에서 분별하는 것 뿐입니다. 그런 분별에 따르면 현상적인 일을 이해하는데 혹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실다운 진리로 사는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앞서 말씀 드린 법성본분과 독존난사의(獨存難思議)의 믿음을 바탕으로 모든 일에 하나하나 정성을 다하는 것을 권합니다.

 끝으로 명당자리와 사주를 물으셨는데 부처님께서는 관심하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그런 문제는 너무 관심하지 않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운명은 스스로가 지은 것이며 또한 지금 스스로 짓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지은 묵은 타성이 설사 위압적 힘으로 작용해 오는 듯 보여도 그 모두는 원래가 공이므로 우리가 마음을 비우고 마음을 바꾸어 법성진리에 수순한 확신으로 살아갈 때 밝은 창조가 열리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