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말씀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부처님의 그늘에 살며 생각하며

2007-05-28     관리자

 "사진에는 언어와 시, 웅변 그리고 음악등이 복합적으로 함축된 힘이 있습니다. 글이나 말로는 다 표현하지못할 무언의 힘을 주는것이 사진이지요. 사진이라는 영상을 통해 전달되는 포교의 힘은 대단합니다."

 사진을 찍는 스님 관조( 觀照 ) 스님은 일찍이 출가하여 해인사 강원을 졸업하고 주로 해인사와 범어사에서 수행하며 경전연구와 번역을 하는 한편 강원에서 스님들에게 경전을 가르치는 학승( 學僧 )이었다.

 범어사 강원 강사를 지내던 시절 포교에 관심이 있어 대학생을 지도하게 되었다. 스님 나름대로는 심혈을 기울여서 부처님말씀을 전하려고 했으나 노력만큼의 성과가 없었다.

 활자와 말을 통한 포교에 한계를 느낀 스님은 효과적인 포교의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생각해낸 것이 영상의 중요성이었다.

사진이라는 영상예술을 통해 여러 대중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보여주자' 는 생각을 한 스님은 우선 카메라를 구입했다. 그리고 사진찍는 법에 대한 책을 구하여 읽기 시작했다. 특별히 누구에게 사진찍는 법을 배운 것은 아니지만 스님의 느낌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때가 1978년 봄이었다. 걸망대신에 카메라 가방을 메고 스님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만 해도 스님의 속사정을 잘 모르는 일반 스님이나 신도들에게 스님의 모습이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스님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느니 스님의 수행이나 제대로 할 일이지 웬 사진이냐며 비난을 받기가 일쑤였다.

 그러나 포교에 대한 확실한 신념과 원력이 있었던 스님은 그 모든 질타를 어렵지 않게 극복할 수 있었다.

 산문( 山門 )의 승가모습과 산사주변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카메라에 담은 스님은 자신이 찍은 사진 몇 장을 사진전에 출품하기도 했다. 부산미전에서 금상을 타는 등 입상을 몇 번 하고 그해 가을에는 전시회도 열고 사진집도 냈다. 그러자 스님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 정말 필요하고 좋은 일한다며 격려하는 분들도 여럿 생겼다. 그리고 사진전문가들도 스님의 사진을 눈여겨 보며 '잘 찍는다'고 말했다.

 그 이후로도 줄곧 승가의 모습과 불상,마애불, 사찰 건축과 벽화, 그리고 산사 주변의 자연풍경을 영상화하여 사진집으로 펴내고, 또 전시회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사진을 통한 말없는 설법을 보여주고 있다 (스님의 사진집은 영어,독어,불어로 설명되어 많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소개하고 불교문화를 소개하는데 톡톡한 한몫을 하기도 했다).

 "저의 사진은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촬영할 뿐이기에 전혀 기교가 없습니다. '예술작품'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부족함을 주겠지만 불교를 알리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했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지요."

 스님의 사진에는 욕심이 없다. 사진을 잘 찍어보겠다는 생각도, 사진을 어떻게 찍기 위해 연출한 흔적도 없다. 다만 스님의 사진에는 사실 그대로가 그냥 그대로 드러나 있다. 아무런 꾸밈이 없고 본래 그 모습 그대로다. 그래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투명하게 맑혀 주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스님의 사진을 전문가들은 '사물을 날카롭고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글씨를 심필 (心筆 )이라 하여 글씨를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수 있다고 했던가. 마찬가지로 사진속에서도 스님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수행승 특유의 고요하고 솔직한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나 할까.

 1943년 경북 청도의 유명한 유학자 집안의 막내로 태어난 스님은 어렸을 때부터 한학을 공부했다. 18세가 되던해 불국사에 놀러 갔다가 스님들의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아 그 자리에서 스님이 되었다. 그뒤 범어사에서 수계를 받고 당시 주지스님이셨던 지효 스님으로 부터 '사물을 지혜로 비추어 보라'는 뜻으로 관조( 管照)라는 법명을 받았다.

 주로 경전을 공부하고 경전을 가르치는 학승으로 장좌불와( 長座不臥 )하며 생식을 하는등 철저한 수행을 해오던 스님이 어느날 카메라를 들고 영상포교를 시작하게 된 것도 어찌보면 필연적인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것은 순전히 기자개인의 느낌과 생각이긴 하지만 스님의 출가 인연이 그렇고, 또 관조라는 법명이 그러한 연상을 낳게 한다.

 지금까지 나온 5권의 관조 스님 사진집들을 보면서 줄곧 <반야심경>의 관자재보살 ( 觀自在菩薩 )이 연상되고, 조견오온개공도 (照見五蘊皆空道 )라는 구절이 함께 투영됨을 어찌하랴.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사진은 수만 가지의 설법을 하고 있으리라...

주로 해인사와 범어사에서 경전을 공부하고 경전을 가르치는 학승으로 장좌불와하며 생식을 하는 등 철저한 수행을 해오던 스님이 어느날 카메라를 메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게 된 것은 활자와 말을 통한 포교에 한계를 느끼고 영상포교의 중요성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예술이라면, 특히 좋은 사진을 찍는 사진작가라면 사물을 올바르게 비추어 보는 안목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단지 사물을 사물로서 바라보며 찍는 사진과 그 본질을 꿰뚫어보고 찍는 사람이 찍는 사진은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전에는 범어사 주변의 이끼가 하도 아름다워 3년 동안 찍은 이끼 사진을 모아 사진집을 내기도 했다는 관조 스님은 부처님의 숨결이 머무는 곳이라면 그 발길이 닿지 않는곳이 없다.

 카메라를 메고 전국 명산고찰을 누비며, 잘 알려지지 않은 사찰과 불사터에도 그 발걸음을 옮겨 놓는다.

 멀리는 인도를 비롯하여 남방 불교권 그리고 중국 본토에 이르기까지 불교의 성지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특히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드르 벽화의 변상도는 12부 경전을 섭렵해 부처님 말씀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표현해 놓은 그림인지라 벽화 그대로가 부처님의 말씀이라고. 그래서 스님은 그 부처님 말씀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세번이나 찾아갔다.

 보로부드르 벽화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찰벽화의 내용들도 그대로 영상포교의 역활을 하는지라 특히 이 관계의 사진들은 꼭 사진집으로 내고 싶다고 하신다.

 도대체 자신이 찍은 사진이 몇 장이나 되는지 헤아려 본 적도 없고, 또 그 수를 헤아릴수 조차 없이 많다. 이렇게 발길 닿는대로 사진을 찍다보니 소실되어 가는 중요한 불교문화재를 사진으로 남기는 다행스러움을 만나기도 했다고. 얼마전 불타 소실되어버린 금산사 미륵전과 범어사 지장전의 별과가 그 예이다.

 범어사 뒷켠에 있는 조그만 스님의 방에는 카메라 장비와 어림잡아 수만 장은 되어 보일 듯한 사진필름들이 쌓여 있었다.

 그런데 스님은 그 사진들을 결코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선뜻 내어주기도 하고, 그 사진에 특별한 애착과 의미를 부여하며 여러 말을 덧붙이지도 않는다. 다만 그 사진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그로 인해 부처님의 말씀이 전해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을 뿐이다.

 "스님, 이렇게 사진을 찍느라고 스님이 하셔야 할 수행은 언제 합니까?"

 기자의 우문에 "포교에 대한 원력이 곧 수행이 아니겠느냐"며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으신다. 佛光

        취재,정리  남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