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의 실증] 전생의 실패를 후생에도 괴로워하다(3)

윤회의 실증

2009-07-31     이안 스티븐슨

<톤홀이 보이는 것을 보니 내 가게가 아주 가깝다>고 말한 이 아이의 말은 공회당[타운․홀을 톤․홀이라고 잘못 발음]근방에 왔을 때 한 것인데 누구 말을 듣고 한 말은 물론 아니다. 이공회당에는 아무런 표지도 없을뿐더러 얼른 보기에는 회교 교회당 모양을 한 것이므로 처음 보는 사람이 공회당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건물이다. 이 공회당의 모양도 필자가 직접 확인하였다. 또한 [톤․홀]이라는 단어는 이 아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입에 담고 지내던 단어인데 가족들은 이 말의 뜻을 그때까지 알지 못 하였다가 이 자리에서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마차가 비스킷트 가게 앞에 가서 도착하자 [파모드]는 환영 나온 [모한]을 보고 <형님>하면서 정확히 알아맞히었다. 물론 [파모드]로서는 이 사람과도 첫 대면이다. 이 아이는 이 때에 [모한]이라는 이름을 부르지는 않았지만 [오fot만에]만난 형을 보고 감개무량해 하는 모양이었다. 가게에 관해서 첫 마디의 말은 <누가 베이커리(製菓機)와 소다수 제조기를 돌보고 있지?>라는 질문이었다고 그 곳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증언하는 것이다. [모한]으로서는 의욕적 사업가였던 [파마난드]의 모습이 곧 직감되더라고 한다. [베이카리]라는 영어단어는 [파모드]의 큰 관심사인 비스킷트 제조설비를 의미하고 있었다. 이상으로 세 개의 단어가 다 나오게 되었는데 [파마난드]의 죽을 때의 상황에 관련되는 [바스․텁]이 되었건, [톤․홀]이 되었던 또 이제 나온 이 [베이커리]가 되었던 모두 [파마난드]의 생애를 통해서 기억에 깊이 남아 있어야하는 단어인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불가사의를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 것은가?

이 아이는 가게 안에 들어서는 두 가지 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 날 소다수 제조 기계는 [파모드]를 시험하기 위해서 일부러 취수(取水)파이프의 접촉을 끊어 놓고서 이 아이를 골탕 먹일 작정이었던 것이다. 이 기계는 물을 끌어들여 거기에 압력을 주어 탄산가스를 불어 넣어서 소다수를 제조하는 장치인 것이다. 이 아이는 숨을 죽이고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여러 사람 앞에서 기계 사용법을 정확하게 설명한 것이다.

또 가게 내부를 돌아보고 나서 입구로 돌아온 이 아이는 <내 앉을 자리가 없잖아>라고 불평을 하더라고 [파마난드]의 사촌인 [R․K 메헤라], [N․K 메헤라],[샬마] 교수 등이 증언하고 있다. 인도의 가게는 대체로 가게 입구 가까이에 [가디]라고 불리우는 좌석이 마련되어서 점주(店主)가 여기에 앉아서 손님을 맞이하고 또 점(店)내부를 감독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가게도 [파마난드]가 살았을 때에는 그렇게 되어 있었던 것인데 그가 죽은 뒤에 일부를 뜯어 고쳐서 이때에는 [가디]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파모드가] 이와 같은 불평을 터뜨린 것이다. 이 불평은 이 아이가 생존 중에 있었던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또한 이 아이는 이어서 [모한 브라더즈]가 같은 시내에서 경영하고 있던 [빅토리․호텔]의 지붕 모양, 고리고 [메헤라]씨 댁의 [파마난드]가 쓰고 있었던 방의 미닫이 등 [파마난드] 생존 시와 달라진 것에 대해서도 일일이 지적하였던 것이다.

[파모드]는 자기의 전생의 가족들, 즉 [파마난드]의 가족들을 일일이 알아 맞추었다. [메헤라]씨 댁의 넓은 정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때쯤 되어서는 벌써 이곳에 도착하여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였기 때문에 서로의 분위기도 한결[가족적]으로 된 상태였다. 방 한가운데 앉아 있는 것은 [파모드]인데 실은 이 아이야말로 가족 노릇도 하고 손님 노릇도 하는 그런 처지에 있었다. 이 아이는 원래부터 [모한]에게 현재의 [샬마]가 보다도 [메헤라]가에 있고 싶다고 말하곤 하였던 것이니까 전생의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을 무척 기쁘게 여기고 있었다.

[파마난드]의 아들인 [N․K 메헤라]가 이 아이에게 <[파모드]야, 너에게 물어볼 것이 있는데 말이야>라고 하니까 [파모드]는 크게 나무라면서 <바리야, 너 말버릇이 나쁘구나, 나를 아버지라고 불러야지 [파모드]가 무엇이야?>라고 말하더라고 증인들이 말하고 있다.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가 자기보다도 훨씬 나이가 위인 청년을 나무라는 것이다. 이 가족들의 얼굴에는 금방 기묘한 표정이 떠올랐으나 곧바로 가라앉았다.

왜냐하면 이 아이의 나무람이 어디까지나 아버지다왔기 때문이다. 이 아이의 말은 계속되었다. <너도 그렇지 뭐야, 고단, 나보고 아버지라 불러야지 감히 이름을 부르는 게 말이 되느냐 말이다. 내가 몸만 너보다 작다 뿐이지 아버지임에는 틀림없는 거야.> 이 아이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성실 그대로다. 다섯 살도 채 안된 어린 아이가 스무 살 가까운 두 사람을 앞에 놓고 제법 아버지다운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이때에 [파마난드]의 모친이 방에 들어왔다. [사하란풀]이라고 하는 곳에 살고 있었던 이 부인으로서는 이때가 [파모드]와의 첫 대면이며 메헤라 가의 다른 식구들이 몇 시간 전에 이 아이와 처음으로 얼굴을 맞댈 째까지 이곳에 도착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부인을 보자마자 [파모드]는 곧 <어머니>하고 알아차렸다. 어머니라고 불리운 여인은 이 아이 앞에 와서 앉았다. 이리하여 단란한 분위기는 점차로 조성되고 아무도 이 [파모드]가 자기들의 옛 식구인 [파마난드]의 후신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이 아이는 [파마난드]의 처였던 [난드라니]보고 <당신은 지금도 날 괴롭힐 생각이지?>하고 말을 걸었다. [난드라니]로서는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는 말이었다. 방안이 잠시 조용하여졌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있는 [장형(長兄)]인 [모한]보고 하는 말이 <형님, 저는 이 사람과 줄곧 싸움만 하고 지냈습니다.> 이 때에서야 비로소 [파모드]가 말한 뜻을 [난드라니]도 알아차렸고 다른 형제들도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이 때 [난드라니]는 속으로 <이 아이는 분명히 내 남편이었던 사람이구나>하고 생각했다. 실제로 죽기 전까지 [파마난드]는 자기 아내와의 싸움을 하루도 걸른 날이 없었고 [메헤라]가의 식구 모두는 그런 일을 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의 사실 조사에서 일반적으로 증인들은 고인(故人)이나 그 관계자들에 관한 좋지 못한 일은 말하지 않는 것이 상례이다. 그런데 一九六一년에 내가 조사 나갔을 때의 어떤 증인은 <[파마난드]는 그의 아내의 바가지가 무서워서 [사하란풀]로 도망간 일이 있었다>고 증언해준 것이 있다. <[파마난드]는 [사하란풀]에 별도의 가게를 가지고 있었다> <나를 괴롭힐 생각이지?>라고 하는 [파모드]의 말은 생전의 [파마난드]와 [난드라니] 부부의 좋지 못했던 사이를 그대로 드러낸 말이라 할 것이다. [파모드]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난드라니]앞으로 다가들더니 자기 옆으로 데려다 앉힌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당신은 내가 왔는데도 어째서 [빈디]를 안하고 있지?> 또 <왜 흰 [싸리]를 입고 있어?>라고 나무란다. [빈디]라는 것은 남편이 살아있는 인도 여인들이 이마에 그리고 있는 빨간 색의 작은 동그라미의 표지를 말하고 있는 것인데 이 부인은 미망인이기 때문에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고 또한 [싸리]는 여자가 걸치는 옷인데 미망인은 백색, 유부녀는 유색의 것을 걸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분명히 [난드라니]를 자기의 처로 보고 하는 말인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인도에서는 어린 아이와 성인과의 사이에는 엄격한 예의범절이 있는데 작디작은 어린 아이가 낯모르는 성인여인을 보고 이러한 말을 한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대화는 내외간에서만 있을 수 있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넘어가야 하겠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