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고전] 불수佛手를 닮았다

禪의 古典 林間錄

2009-07-31     석주 스님

󰊱 번뇌와 부동지(不動智)
운암(雲庵)회상이 동산(洞山)에 있을 때의 일이다. 한 번은 한 중이 와서 물었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무명(無明) 속의 번뇌가 곧 일체 제불의 부동지(不動智)가 된다. 일체 중생이 모두 이것을 가졌으니 다만 그 지혜의 체(體)가 성품이 없고 의지한 바도 없기 때문에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인연을 만나면 이것을 밝게 할 수 있다.] 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무명 속의 고뇌가 어떻게 해서 곧 모든 부처님의 부동지가 되는 것인지 그 이치가 극히 깊어서 알 수가 없습니다. >
운암 스님이 대답하였다.
<그것은 아주 분명한 것이다. 알기 쉽다.>
하고 곁에 마당을 쓸고 있던 동자를 불렀다. 동자는 고개를 돌려 쳐다본다. 운암 스님이 동자를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것이 부동지가 아니겠느냐?>
하고 또 동자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너의 불성이냐?>
하니 동자는 좌우를 쳐다보더니 무슨 영문인지 모른다는 듯이 가버렸다. 운암 스님이 말하였다.
<이것이 무명에 머물러 있는 번뇌가 아니겠느냐. 만약 이것을 밝게 한다면 곧 성불하리라.>
하였다.
또 한 번은 한 강사에게 물었다.
<천지개벽 시에 불이 일어나 산하대지가 모두 타버려서 세간이 공허해진다 하니 그게 사실이오?>
하니 장사가 대답하였다.
<경에 분명히 그런 말이 있습니다. 어찌 그러하지 않으리까?>
운암 스님이 말하였다.
<그 허다한 재가 다 어느 곳으로 갈 것이오?>
강사는 입을 크게 벌리고 억지로 웃으면서
<모릅니다.>
한다. 운암 스님도 또한 크게 웃으면서
<그대가 강하는 것은 모두가 종이 위의 말밖에 더 되는가.>하였다.
운암 스님의 무애 변재는 물음을 답할 때는 사람의 의표(意表)를 찌르고 물을 때는 당하는 사람의 뜻을 꺾는다. 대개 스승이 없는 자연의 지혜를 어찌 세간의 지혜로써 당할 수 있겠는가?운암화상은 참으로 일대의 법시(法施)의 주인이었다.

󰊲 三關之語
남(南)선사가 적취(積翠)에 있을 때에 부처손(不手), 나귀 다리, 태어난 곳(生綠)의 세 가지 말로써 학자들에게 물었다. 많은 학자들이 제각기 대답하였다. 그러나 남공은 눈을 감고 정(定)에 들은 듯, 한 번도 가부를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학자들은 마침내 어느 것이 옳은지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이 말을 천하 총림에서는 삼관지어(三關之語)라고 하였다.
선사는 만년에 스스로 게송 3수를 지었다. 여기에는 둘만을 기록한다.
<내 손과 부처 손을 함께 들으니/선자는 마땅히 단번에 알아차릴지라/말다툼함이 없이 이르는 곳에/자연히 佛祖를 뛰어 넘었으리.>
<내 다리는 나귀 다리와 나란히 가니/걸음마다 노두 무생(無生)을 계합하니/곧 바로 구름 열려 체가 나타남을 기다려/그 길이 바야흐로 종횡으로 자재함을 얻으리라.>하였다.
운개지선사가 한번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옛날에 두 번째 황벽(黃檗)에 가서 방당(坊塘)에 이르렀다. 그 때 한 중이 산중에서 온 것을 보고 그에게 물었다.>
<삼관(三關)에 대하여 그대들은 어떻게 알고 있소?>
<심히 묘한 말이 있습니다. 살펴보십시오. [내 손이 어찌하여 부처 손과 닮았는가]에 대하여 이르기를 [달빛 아래에서 비파를 희롱한다]했고, 혹은 [먼 길을 빈 발우를 받들어 오다]하였으며, 또 [내 발이 어찌 나귀 다리와 닮았는가]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해오라기가 눈에 섰으나 같은 색이 아니다]하였고, 또 이르기를 [빈산에 낙화(落火)를 밟는다]고 하였으며, 또 [어떤 것이 그대가 난 곳인가]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나는 어디 어디 사람이오]라 하고 있습니다.>하였다.
그 때에 내가 장난삼아 말하기를
<만약 지금 어떤 사람이 그대에게, <어떤 것이 부처 손이며 나귀 다리며 사는 곳이냐>에 대하여 묻는다면, 그대는 먼 길을 빈 발우를 들고 왔다고 대답할 것인가? 해오라기가 눈에 섰으나 같은 색이 아니라고 대답할 것인가? 만약 두 가지로써 대답한다면 불법이 혼란할 것이여, 만약 이것저것 분별해서 대답한다면 그것은 사실에 맞지 않소.>하였다.
그 중이 똑바로 나를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못한다. 나는 그에게 말하였다.
<설봉(雪峰)이 말하여 주리라.>


󰊳 조백대사
조백대사와 청량국사는 둘이 다 화엄경을 달통하였다. 소론(疎論)을 지었는데 천하에 으뜸이 된다. 그러나 두 분의 행하는 바는 다 같지가 않다. 조백 대사는 간결하여 행함에 걸림이 없고 일체에 초출하여 스스로 여여(如如)하다. 그리고 사사무애(事事無碍)의 도리로써 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청량국사는 정밀하고 엄하여 옥을 깎아 세운 듯 그 행이 맑았으며 오욕에 물들음을 두려워하여 열 가지 큰 원을 세워 그 몸을 스스로 다스렸다. 평하는 사람은 대개 조백대사를 마음이 넓다고 하여 좋아하고 청량국사에 대하여는 그의 속박을 웃으며 화엄경 도리는 마땅히 그런 것이 아니라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하다.
<그것은 그렇지가 않다. 조백대사가 만약 머리를 깎고 비구가 된다면 아마도 반드시 청량국사와 같은 행을 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대개 이 경우 인연을 따라 종을 삼는 것이 법에 합당한 것이니 다른 경과 같이 국량(局量)이 있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 만법은 분별심
진(秦)나라의 구마라습 삼장이 아해였을 때에 어머니를 따라서 사륵(沙肋)에 간 적이 있다. 거기서 부처님 발우를 높이 받들어 이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 발우는 형상이 매우 큰데 그리 무겁지 않구나.>하였더니 곧 무거워서 견디지 못하여 소리를 지르며 땅에 내려놓았다. 어머니가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제가 마음에 분별이 있으므로 발우의 무겁고 가벼운 것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였다. 나도 이렇게 생각한다. 일체 제법은 모두가 생각에 따라서 이루어진다. 생각이 아직 나지 않았을 때는 그 양(量)이 허공과 같다. 그러나 이것을 분별할 때에 만 가지가 어지럽게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험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지 않느냐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그것은 다 허망한 망상이다. 꿈속에서 어려운 일을 당하여 괴로워하는 것처럼 마음이 심히 어둡고 아직 허약하기 때문이다. 슬프다. 사람이 누구나 충효의 마음이 없으리요. 그러나 효자 왕상(王祥)이 얼음에 엎드리면, 고기가 튀어 올라왔고 경공(耿恭)이 샘을 향하여 기도하면 곧 샘물이 솟아올랐으니 이것은 웬일일까? 그것은 그 마음이 오로지 하나이기 때문이니 영험이 이와 같이 빨리 응하기 마치 메아리 소리와 같았던 것이다.>


󰊵 달마면벽
달마대사가 처음에 양(梁)나라에서 위(魏)로 돌아와 숭산(崇山)밑에 있었다. 소림사에서는 벽을 면하여 앉아 있기만 하였다. 이것은 선을 익히는 것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그러고 지냈는데 아무도 그 까닭을 아는 사람이 없었고 다만 달마를 가리켜 선을 익히고 있다고만 하였다. 대개 선은 모든 행 가운데의 하나일 뿐 어찌 그것으로써 성인의 도를 다할 수 있으랴.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은 그렇게 알았다. 역사를 만들을 때도 그 예에 따라서 달마를 습선(習禪)조에 넣어 모든 것을 잊고 선에만 빠져 있는 무리와 함께 다루었다. 그렇지만 성인이 어찌 선 뿐이랴. 그리고 또한 선을 어기랴. 주역이 음양에서 나오되 또한 음양을 어기지 않는 것과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