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이 익어가는 계절에

물처럼 구름처럼

2009-07-29     관리자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감촉에 가을이 성큼 다가온 소식을 느낍니다.

  방문을 열면 짙푸른 감잎 사이로 누르스름하게 익어가는 감 가지가 한 눈에 들어 옵니다. 무겁게 매달려 있는 감이 날로 누렇게 변해가는 걸 보는 재미도 괜찮습니다. 굵은 감알이 문득 옛 도반 생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물론 함께 승복을 입고 절에서 지냈던 도반이었습니다. 어느날 그는 속가로 돌아가서 지내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 그의 이름을 밝힐 단계가 아닙니다. 그저 옛 도반이라고만 해둡시다. 지금도 기억 속에 남아있는 옛 도반의 훌륭한 인품과 모습은 늘 신선합니다.

  그동안 소식이 없다가 금년 여름에 한 산중 말사에서 만나 하룻밤을 지낸 적이 있습니다. 옛 도반의 첫 인사가 퍽 인상적이었습니다.

  "축생 (畜生)이 되어 왔습니다."

  그가 건넨 말입니다.

  "아만승 (我慢僧)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건 나의 인삿말입니다. 우리는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의 건강한 모습은 그동안 그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퍽 다행스러웠습니다. 여전하게 지금도 존경하는 도반입니다.

  오히려 대승 보살의 길은 저 옛 도반과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는 중국 불교순례를 다녀온 이야기를 잠시 재미있게 들려주었습니다. 반가운 이의 입을 통하여 고고한 수행담을 듣는 일도 큰 즐거움의 하나입니다. 겸손의 미덕을 갖춘 큰스님의 덕담같은 일화는 나에게 산 교훈입니다.

  옛 도반은 고인의 옛글에 밝고 생각이 깊은 일면 현대 젊은이의 세계에도 뒤지지 않을만큼 다재다능 합니다. 그의 입을 통하여 듣는 미담 고사 (古事)는 홀연 지극한 성스러움을 황홀하게 불러 일으킬 만큼 크게 감동적입니다.

  음악감상에도 조예가 있습니다. 대장경을 좌우에 갖추고 경전을 탐독하는 가운데서도 음악감상 시간을 아끼지 않습니다. 흔한 표현으로 팔방미인인 셈입니다.

  이제 대승 보살처럼 속가로 떠난 그가 아깝기는 하나 제 역할을 어디가나 하리라 믿기 때문에 그 서운함도 잠시 동안입니다.

  "대장경 같은 좋은 책은 어떻게 하였소?"

  내가 궁금해서 옛 도반에게 물었습니다.

  "한 권도 손댈 수 없었소. 삼보의 정재 (淨財)로 모은 책이기에 모두 절안에 그대로 두고 나왔소."

  대쪽 같은 그의 정신의 일면입니다.

  올 때 흰구름과 함께 오고     갈 때 밝은 달과 함께 간다

  오가는 한 주인공                  필경 어디에 있는고.

  來餘白雲來     去隨明月去     去來一主人     華竟在何處

  그의 아내가 된 보살이 전화로 하는 말이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한 스님이 옛 도반의 속가에 전화를 걸었을 때였습니다. 보살이 전화를 받고는,

  "할 말이 없네요." 하는 단 한마디였습니다. 모두 구면이기 때문에 이 한마디 말로써도 충분히 뜻은 전해질 수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누가 무엇을 탓할 것인지.

  옛 도반과 인도 성지순례를 떠날 계획을 가졌던 게 다섯 해 전의 일입니다. 일을 그르쳐서 따로따로 성지순레를 떠난 형편이었으나 어쨌든 우리는 적지 않은 인연을 가졌습니다. 그는 위빠싸나 수행법에도 관심을 부였는데 줄곧 선방수좌로 안거를 채운 경력이 꽤 긴 듯합니다.

  번역한 글도 아름답습니다. 재주가 많은 이는 다 속가로 나가고 사람 못된 이만 남아 승가를 지킨다는 지대방의 우스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다 인연의 소리로 들으면서도 방문 앞의 가을 감나무 가지를 내다보면서 옛 도반을 생각하자니 괜스레 입맛이 떫습니다.

  남아 있는 우리 승가가 충분히 제역할을 하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 때문이지요.

  병으로 죽고 속가로 나가서 죽고 이래저래 죽는 도반이 늘어날 때마다 가슴이 아프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내 신상발언을 해보겠습니다. 사실은 나도 한때 나갈 생각을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고 나갈 생각이 꽉 차있었을 때 누가 손만 내밀어서 이끌면 쉽게 허물어질 그런 곤궁을 맛보았습니다.

  그것도 한때의 생각이었습니다. 곧 마음이 잡혀서 더욱 마음이 굳어지는 걸 경험하였습니다. 크게 부끄럽게 생각하고 불전에 깊이 참회 기도를 올린 그 후론 다시는 나갈 생각을 먹지 않았습니다.

  참회 기도를 이때처럼 진심으로 쏟아내어 올린 적도 드뭅니다. 정말 깊은 꿈에서 깨어나듯 정신이 바짝 들었습니다. 한동안은 망연자실하여 몸둘 바를 모를 정도였습니다.

  옛 도반이 속가에 나간 일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느껴지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지난 날을 생각해 볼때마다 적지 않은 불연 (佛緣)이 출생에서부터 있었던 모양입니다.

  탁발 나온 스님이 모친의 태몽에 나타나서 한 손에 노란 경책을 다른 한 손에 흰 실타래를 쥐고 문 앞에 서 계시다가 모친께 건네주고 떠나셨다는 이야기를 오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전생부터 내가 불가에 깊은 인연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으나 어쨌든 어렸을 때 교회를 그렇게 열심히 다니면서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연극의 배우로 분장해서 재미있게 지냈던 일이 먼 추억 속에 담겨 있습니다.

  내 주위 대부분이 카톨릭이나 기도교인인데도 열 대여섯 무렵에 용케 절을 택한 용기가 내 일이지만 대단합니다. 중학생 때 자퇴서를 학교에 내고 최초로 입산을 결행한 적이 있었으니까요. 그때 나는 문제 아이도 아니었고 결석을 하는 아이도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자랑하건데 장학생으로 착실히 학교에 잘 다니는 모범생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아직 큰 소리를 칠 때가 아닙니다. 남자는 관 뚜껑을 덮기까지 허리 아래 일은 장담하지 못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난 추석에 삼 년 천일 기도를 입재하고 법화경을 독경하는 데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안하던 독경 기도 탓인지 밤에는 극도로 피곤한 몸을 뉘입니다. 방송 나가는 일과 원고 쓰는 일도 웬지 싫어지고 독경 삼매에 빠지고 싶은 생각만 간절합니다.

  저 감이 익어서 떨어질 때쯤이면 서리가 내리겠지요. 세월의 무상함이 익어가는 감을 통해서 절실히 전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