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자리를 바라보며

테마에세이/내가 서있는 이 자리

2007-05-28     관리자

  큰 곰 자리, 작은 곰 자리, 독수리 자리, 망아지 자리, 고래 자리 등등 별자리 이름들이 무척 재미있다. 무작위로 마구 뿌려놓은 것 같은 저 총총한 별무리들도 엄연한 질서와 과학적 원리 안에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대견하기도 하고 무게있는 뜻이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별난 짐승 이름의 별자리들을 보고 있으면 그 이름이나 모양새가 어떠하든 우주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자리매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사는 이치도 마찬가지여서,  결국 나와 남과의 관계, 나의 안과 바깥과의 어울림 속에서 일정한 틀과 꼴의 자리매김을 하고 그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지나온 내 삶이 뜬 구름같이 느껴져서 새삼스레 자신에 대해 짜증이 날 때가 있다.  부생공자망(浮生空自忙)이라는 글귀도 있지만,  괜히 분주하기만 했지 가려지는 것도 없고 건져지는 알맹이도 없다.  이러한 자기 검증(檢證)의 연장선 위에서 오늘의 내 자리매김을 살펴보면 부끄러운 얘기지만 실컷 울고난 뒤에 세상을 보듯, 눈앞은 일렁이는 아지랭이 뿐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따금씩 늦은 밤에 애들과 나누는 이야기들은 무언가 표현하기 어려운 넉넉함과 신선한 바람마저 내게 선사해주는 것같다.  애들이 던지는 싱싱한 의문과 진솔한 고민들이 생동감있게 가슴에 와닿는다. 이러한 애들 스스로의 내면 성찰(省擦)로 부터 반조(返照)되어 나오는 나의 실상과 새삼스럽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나로서는 더없이 소중하고 값진 소득이라 아니할 수 없다.

  아직도 우리 가족은 강북의 단독주택에 살고 있다. 그것도 스무해 가까이 증산동, 북가좌동, 남가좌동을 전전하며 서대문지역의 가장자리에 맴돌고 있다.  그러나 애들은 설흔평 남짓한 주거 공간을 고마워 하고 대학에라도 다니는 자기 처지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친구들에게는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이 일상(日常)의 자족감(自足感)에서나마 탈출해서 삶의 본질, 참된 값어치에까지 접근해보려고 나름으로 애쓰는 것같아 오히려 내게 조용한 자극이 되고 있다.  20대의 충분하고 충실한 고뇌야말로 삶의 가장 값진 거름일 수 있고, 긴 인생의 대목마다 여울목마다 자기자신을 되돌아보는 것도 결코 값싼 노릇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렇게 요즘의 나는 애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그애들보다 두 배이상 살아온 내 삶을 저울질해보고, 저희들끼리 그리는 미래상 속에서 앞으로의 나의 좌표도 새롭게 다듬질하게도 된다.  하늘의 별자리를 보면서 내 삶의 허망한 자리매김에 실망도 하고 안타까워도 하지만,  요즘은 이런 것에 조차 마음을 비우고 싶어한다.  실컷 날고 날아보아야 부처님 손바닥인 것이 손오공의 운명인 것처럼 한 세상 살면서 부지런히 직장도 가져보고,  세상의 이치와 윤리 도덕을 논하고 정치와 경제와 역사를 곱씹어 보아야 제가 머물고 있는 자리는 가족사(家族史)의 맥락에서 한발치도 멀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이 요즘 내 머리를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나이값에 어울리는 자리매김은 또 어떤 것일까 하고 풀기 어려운 문제에 매달려 보게도 된다.  묵은 친구들을 골동품 모시듯 소중하게 위하며 살아야 한다는 어느 선배의 말씀을 나는 체험적으로 소화하려고 애쓰고 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런 노력의 어느 모서리에 언제나 내가 자리하고 있으면 좋겠다.  바보스럽지만 정이있고, 외롭지만 의기가 통하는 그런 우정과 애정이 시냇물 흐르듯 자연스레 흘러가는 삶을 소중하게 붙들고 살아가고 싶다.  그런 자리에 있고 싶다.  그런 삶을 함축하는 별자리는 없을까.  佛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