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넘어진 자, 그 땅을 짚고 일어나야 한다”

지혜의 향기 / 슬픔을 이기는 법

2009-07-29     관리자
요즘 세상에 슬픔이 만연한 느낌이 든다. 사회적 집단 슬픔현상에 빠져있다. 전직 대통령의 불의의 서거와 그 분을 애도하는 추모객들에게서 진정한 슬픔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었다. 상실의 아픔이 큰 탓이다.
기쁨과 슬픔이란 우리들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동요이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일상사로 작용한다. 종소리는 더 멀리 제 소리를 보내기 위해 더 아파야 한다. 슬픔 또한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슬픔이야말로 아픔을 통해서 더 성숙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으로 하여금 그 영혼을 정화하고, 높고 맑은 세계를 창조하는 힘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게도 큰 슬픔의 기억이 몇 번 있다. 아주 오래 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부친의 소천(召天)을 일컬어서 ‘천붕(天崩)’이라고 한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뜻이다. 기둥이 무너졌으니 내 삶인들 온전했겠는가? 그리고 그 후 의형제인 친구의 죽음은 나를 천 길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지게 하였다. 그때도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다. 또 몇 년 전에 소중히 기르던 강아지가 죽었다. 미물에 불과한 한낱 강아지의 죽음이었지만 그때도 너무 서러운 나머지 굵은 눈물을 흘리며 통곡한 적이 있다. 내 행동이 철없는 어른으로 비쳤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 일은 내게 있어서 크게 슬픈 일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슬픔이란 빠져나오려고 애쓸수록 나를 더 깊은 수렁으로 끌어당기는 거대한 늪과 같은 것이다. 그놈의 속성은 사람을 괴롭히기도 하고 한층 더 성숙하게도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땅에서 넘어진 자, 그 땅을 짚고 일어나야 한다(因地而倒者 因地而起)”는 보조국사 지눌의 법어가 ‘슬픔에 빠진 자는 스스로 슬픔을 딛고 일어나야 한다’라는 화두로 전달돼 온다. 생로병사의 핵심을 단숨에 관통하는 강렬한 명령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 슬픔은 스스로 딛고 일어나야 한다.
우리에게는 망각이라는 묘약이 있어서 어떤 환난이나 고통, 기쁨조차도 잠시 머물렀다 흔적도 없이 사라짐을 이미 경험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다. ‘레테의 강’을 건너면 모든 기억이 상실된다고 한다. 고통과 아픔, 번민과 슬픔 때문에 과연 모든 것을 망각하고 싶은가? 현실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슬픔에 빠져있다 하여도, 누구도 레테의 강을 건너려 하지 않는다. 슬픔보다는 아름다운 것들을 추억하며 살아가는 삶이 훨씬 가치 있는 삶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인들 상처 없이 사는 사람이 있겠는가? 슬픔 없이 사는 이가 있겠는가? 모두들 제 몫을 견디며 사는 것이다. 세상에 슬픔을 이겨내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견디며 승화해야 한다. 슬픔과 친구가 되어 화해하고 용서해야 한다. 그럴 때, 결국 모진 세월이 조용히 해결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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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상 _ 한국외대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수필문학」에 수필, 「시세계」에 시가 당선되었다. 현재 우리은행 지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