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일과 우리 민속

특별기획

2009-07-29     관리자
4.8연등과 민속, 여러 측면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불교 민속적인 면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선 궁금한 것은 불교 민속이란 어떤 범주에 속하며 또한 불교 민속으로서의 연등은 어떤 성격의 것인가가 될 것이다.
불교 민속이란 출가자에 의한 불교라기보다 민간에서 행해진 불교 전반을 일러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민속으로서의 4.8일 연등이라 하면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민간에서 행한 연등행사를 말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오늘날에 행하고 있는 4.8연등이 민간이 주체가 된 행사냐 아니냐에 따라 연등행사와 민속과의 관계가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이 밝혀지게 될 것이다.
연등의 불교 의례로서의 의미는 불보살에 대한 공양의 한방법인 것이다.
법화경의 약왕보살본사품(樂王菩薩本事品)에 등(燈)공양의 공덕이 무량한 것으로 가르치고 있으며 또한 불설시등공덕경(佛說施燈功德經)이란 경전이 있어 등공양(燈供養)을 권하고 그 공덕을 설하고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연등은 연등회와 같은 특수한 양식의 행사를 갖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떤 양식 행사에든지 공양의 한 방법으로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공양의례의 한 형태로 봄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불교의 공양의례로서의 한 방법이 재래의 민속과 결부될 때 이것이 행사화 하고 또한 민속화되어진다. 고려 시대에 특히 성행상을 보였던 연등회하는 것은 고려 태조가 남긴 훈요에서 소이사불(所以事佛)이라 하고 있지만 더 자세히 알고 보면 민속과 결부되어진 불교 행사임을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에 전해지는 4.8연등행사도 그 이후 전해진 오랜 전통임은 말할 나위 없으며 그러기에 4.8연등의 민속적 의미를 간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연등행사의 민속적 연원을 살펴보기로 하자. 고려시대의 연등 행사는 보다 다양하여 오늘날에 전하는 4.8연등 뿐 아니라 1.15일연등, 2.15일 연등이 있었다. 여기 4.8연등은 부처님 오신 날의 축하기념 연등이라고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 하겠으나 정월 연등 이월연등 등이 갖는 행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궁금하다. 2.15일은 부처님의 열반일로 부처님 오신 날과 아울러 4대 명절의 하나로 오늘날까지 지켜지고 있는 불교적인 인연이 깊은 날이라 하겠으나 정월15일은 오히려 재래의 민속적인 근거를 강하게 지니고 있는 날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정월 상원을 등절(燈節)이라 하며 <혼사장유등달야여제석수세지례(渾舍張油燈達夜如除夕守歲之例)>라 하고 있으며 이 밖에도 이 날에는 달맞이 행사가 있어 횃불을 가지고 높은 곳에 올라 달맞이하며 풍흉의 징(徵)을 점쳐 왔다고 한다. 이와 같은 풍속은 고대로부터 있어 왔을 것이며 아울러 새해의 풍년 기원제 같은 행사가 정월 15일이었을 것이니 이것은 시월 제천(祭天)의 추수 감사제와 같은 계통의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불을 켜고 제사하며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는 연등 공양이라는 불교적 연등이 아닌 민간 신앙의 행사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이월 연등의 경우를 보면 역시 동국세시기 이월조의 용등(龍燈) 용동제(龍童祭)를 연등이라 하여 왔다는 것이다. 이는 용신(龍神)신앙의 한 형태이나 이에 연등이란 불교적 의미를 가미시키고 있음을 살필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용신 신앙은 제주 지방을 중심으로 전해진 농경의례의 한 형태이겠으나 영남지방에서는 오늘날에도 이월을 영둥달이라 하여 영둥을 풍신(風神)으로 신앙하며 불을 켜고 영등을 위하는 농경의례가 행해지고 있다. 이렇게 볼때 정월과 이월의 연등은 재래의 농경에 의한 민속적 연중행사의 기반이 보다 강력하게 뒷받침되고 있음을 살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한편 이와 같은 연등회의 개설은 비록 조저에 의해서 행해졌다 하더라도 그 행사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민중이었다는데 더 큰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즉 고려사에 전하는 연등회에 관한 기사 중 연등회는 왕공(王公) 귀족(貴族)에 한한 행사가 아니라 공사(公私)에 의하여 경향 각지에서 행해진 일반화 된 풍속이었음을 전함이 그것이요, 다른 한편 풍속으로서의 4.8일 석가탄일에<家家燃燈 前期數句>이라 하여 집집마다 연등하였다고 함이 그를 일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상에서 보면 연등의 행사는 농경의례로서의 달맞이 등유(燈油)의 민속 행사와 불교의 등공양(燈供養)이 승합되어진 민속적인행사라는 것이 분명해 진다. 고려 태조가 훈요에서 연등행사를 <事佛行事>로 규정 지워 불교적 해석을 하고 있음을 이미 당시부터 재래의 영둥 달맞이 등의 민속 행사가 불교의 연등공양의 행사로 전환되어지고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라 하겠으나 한편 4.8연등이 정월연등, 이월 연등보다는 훨씬 뒤에 성행하는 것을 보면 오랫동안 연등행사는 불교적 의미보다는 민속적인 의미를 더 강하게 지녔던 것으로 짐작되어진다. 이렇게 생각하면 민속적인 기원은 상당히 오랜 전통을 갖는 것이라 하겠는데 즉 불교 전래 이전에는 제천대회(祭天大會) 기농제(祈農祭)의 성격을 지닌 행사가 정월 이월연등에서 우선 불교 의례화 하고 다음에는 불교의례화한 연등행사가 다시 부처님 오신 날과 같은 경축 행사에 병설되어 오늘날에 전하는 4.8연등으로 발전하여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4.8연등의 민속적 의미를 살피려고 할 때는 연등을 등공양(燈供養)이라고 하는 좁은 의미에서 살필 것이 아니라 연등회라고 하는 행사적 의미로 살필 때, 보다 더 큰 의미를 찾아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등공양은 사월 팔일 부처님 오신 날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의례에서도 언제나 하게 되는 것이다. 4.8연등은 등공양이 행사적이란데 의미가 있고 이와 같은 행사적 등공양이 우리의 민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와 같이 행사적 성격을 지닌 4.8연등의 민속적인 축제이다. 정월 연등 이월 연등은 기농(祈農)에 대한 축제이며 4.8연등은 부처님 오신 날에 대한 축제이다. 그리고 축제의 방법을 연등으로 하였을 따름이다. 고려 연등의 행사가 연등뿐만 아니라 백희(百戱)와 잡기(雜技)로 축제의 기분을 한층 도 고조시키고 있었음은 그를 말하여 주는 것이다. 조선조 이후에 정월 이월 연등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으나 4.8연등이 그 축제의 기능을 함께 하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기를 민속 행사라는 것은 민중의 구체적 관심사와 결합하고 있다는데서 큰 의미를 살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의 부처님 오신 날도 연등행사가 경향각지에서 성행한다. 시내의 교통을 마비시키는 제등 행렬도 있게 된다. 분명히 축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 축제가 무엇을 위한 축제인가 하는 구체적인 회답을 얻을 수 없을 때 그 축제는 의미를 잃게 된다. 그리고 이 날을 기하여 부처님의 광명이 우리의 구체적 관심사와 어떻게 결합되어지느냐 할 때 비로소 민중의 축제가 되는 것이다. 농경 사회에서 연등 행사가 농의례와 결합함은 그를 일러주는 것이다. 오늘날의 연등행사가 우리의 민속으로 건재하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민중의 구체적 관심사와 연등 공양이 어떻게 결합하고 있느냐 함에 주의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민속 불교란 민중에 의한 불교의 인식 방법으로서의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참된 민중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등공양이 갖는 <지혜를 밝힌다>는 불교적 의미가 구체적 민중의 소리와 결합되어질 때 4.8연등은 모름지기 축제로서의 본뜻을 다하게 될 것이란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