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토순례기] 캄보디아 5 폐허의 잔재 타프롬

불국토 순례기ㅡ 왕이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빌다.

2009-07-28     관리자

  `크메르`는 산 (山)을 뜻한다. 베트남과 태국, 중국의 운남 지방까지 영토를 확장했던 크메르 제국은 1431년 타이의 맹공아래 무릎을 꿇고 `위대한 산`의 역사를 끝낸다. 그 수도였던 앙코르 ㅡ 지금의 시엠렙 ㅡ 는 무려 1백만명이 운집했던 화려한 번영의 도시에서 정글 속의 `사라진 도시`가 되었다.

  이후 프랑스의 통치가 시작되던 19세기 이 사라진 도시는 세인들에게 다시금 관심을 끌었고 계속되는 복구작업 아래 경탄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간, 베트남의 침공으로 앙코르는 전장이 되었고 계속되는 내전 속에서 또다시 폐허가 되었다. 포탄과 총알의 흔적이 생생한 이 곳, 이제는 관광의 유적지로, 1만여명의 시민이 사는 새로운 도시로 탈바꿈 하면서 인류가 세운 가장 위대한 불교유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우리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앙코르 왓트와 앙코르 톰의 바이욘 사원이 그것이다.

  그러나 280여개의 사원이 산재한 이 지역은 아직도 복구를 기다리며 폐허의 그늘 속에서 숨죽이는 수많은 유적이 있다.

  타프롬 (Ta Prohm) 사원이 그것이다. 풀벌레와 새들의 우는 소리를 들으며 아침 이슬에 흠뻑 옷을 적시며 다가선 이 정글 속의 폐허는 앙코르 왓트와는 사뭇 다른 쓸쓸한 패배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거대한 덩쿨나무, 그것은 담과 사원 건물 위에서 지름 5~6m, 높이 30~40m의 거대한 크기로 자란채 아름이 넘는 뿌리로 석조물을 휘어감고 있었다.

  곳곳의 주요 건물은 무너지고 주저앉아 그 본래의 모습을 잃었고, 덩쿨나무와 어우러진 석조물은 사방으로 뻗어나가 이 사원 전체를 길 없는 미로로 만들었다. 숨막히는 고요 속에 발에 밟히는 돌조각 소리를 들으며 문득 경주 남산의 파괴된 불교유적이 떠올랐다.

  일부 광신도들에 의해 혹은 무지한 자들에 의해 무너진 탑, 파괴된 불두(佛頭)로 얼룩진 경주 남산, 그리고 전쟁에서의 패배와 정글 숲의 침범으로 무너진 타프롬. 원인이야 어떻든 안타까움만은 같았다.

  타프롬은 동서 1km 남북 0.6km의 담으로 둘러 싸였고 3겹의 회랑이 본래의 웅장했던 모습을 유추시킨다. 관세음의 나라 바이욘 사원을 (지난호 소개)세웠던 자야 바르만 7세는 효성이 극진했다. 어머니인 왕비가 돌아가자 이 사원을 짓고 극락왕생을 빌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가장 전통적인 불교양식에 의해 건립된 이 사원은 마치 바이욘 사원을 모방한 듯 비슷한 구조로 이루어졌다. 입구의 관세음탑과 몇몇의 흔적이 역력히 그것을 보여주고 있었고 무너진 벽면에 새겨져 있는 보살상과 천녀 (Aspars )가 왕의 불심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크메르 제국에 있어서 왕은 신이었다. 6등급의 사회구조는 왕족 밑에 바라문 그리고 승려, 관리, 평민, 노예로 구성되었고, 모든 세상을 지배하는 왕이 사는 곳은 수미산을 상징하여 왕궁과 사원을 지었으며 넓은 해자와 둑길, 높은 탑과 웅장한 정문으로 장엄되었다.

  앙코르 톰의 중앙에 자리한 `코끼리 테라스`는 바로 그러한 왕족의 위엄을 상징한다. 역시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 세워진 마치 연병장 사열대처럼 생긴 이 테라스는 수만 평의 광장을 바라보며 길이 350m 높이 4m의 벽으로 세워져 있다.

  그 벽면은 역시 돌로써 조각조각 쌓아 올렸는데 실물크기의 코끼리 부대가 행진하는 모습, 그리고 비쉬뉴신이 탄 신조 가루다가 조각되어 있고 일곱개의 머리를 가진 신사  나아가가 세워져 있다. 왕은 이 테라스에서 왕족과 신하를 거느리고 크메르 군단은 사열을 지켜봤음직한 용맹한 기운이 지금도 넘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