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런 삶

특집/ 삶과 사랑의 의미

2009-07-27     관리자
창문을 열면 몇 그루의 소나무 사이로 맑은 아침 햇살과 더불어 파란 하늘이 보인다. 참새 떼들이 지저귀며 이른 아침을 분주히 알리고 나르는 것이다. 이렇게 꾸밈이 없는 자연을 보고 느낄 때 사랑이 움트기 시작한다. 그때쯤이면 이제 겨우 돌이지만 우리의 귀공자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펴고 오줌을 흥건히 싸놓은 채 부스스 일어나 아랫니 세 개를 내밀며 빙그레 웃으며 아빠를 본다. 그래서 얼싸안고 뺨에 뽀뽀를 해주곤 한다. 그 무렵이면 결혼 후 뚱뚱해진 나의 아내는 부엌에서 김치찌개에 얼큰한 콩나물국을 끓이면서 콧노래를 부리며 알뜰한 식탁을 꾸미기에 여념이 없다. 식탁이래야 김치찌개에 콩나물국이면 진수성찬 부럽지 않은 것이 아내의 정성 때문이지만 그 보다도 아내의 손이 간 그 정성을 더욱 사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바쁜 출근길에 초만원 버스를 몇 대 보내고 겨우 비비대며 육중한 몸을 맡기면 낯익은 몇몇의 얼굴에 오고가는 다정한 인사가 목적지까지 즐거웁게 달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해서 나의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몇 시간의 대학 강의, 젊은이들과의 대화는 나를 기쁘게 하고 나는 그들을 볼 때마다 나의 젊음을 만끽한다. 그래서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많은 시간을 갖는다. 솔직한 그들을 비판을 사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저녁이 되고 나의 본업인 연극 연습에 열을 올리는 시간이다. 손을 호호 불며 먼지 반 흙 반인 어두침침한 연습실에서 끼니도 제대로 못 채운 채 나의 연출 작업은 계속된다. 비록 고되고 어렵고 지루한 반복이지만 난 그 작업을 사랑하며 산다. 신경질도 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대본을 팽개치고 싶은 충동을 나는 억누르면서 막이 오르는 객석과 무대의 참다운 교류를 지켜보는 입장에 서면 스스로가 대견스럽고 무대에서 열연하는 연기자들을 사랑하고 싶어진다.
막이 내린 텅 빈 무대에 서서 그처럼 환호성을 보내주던 객석을 내다보면 관객들이 어지럽히고 간 그 자리지만 한 없이 고마웁고 눈물겹도록 애정을 갖게 된다. 그리고 분장실에 들어와 분장을 지우는 겸허한 연기자들의 실제 얼굴을 보면서 진실을 실감한다. 무대의 밝은 불을 끄고 나면 나이트클럽이나 호화로운 술집은 아니지만 거리의 포장마차나 골목의 대포 집에서 소주라도 몇 잔 마시는 우리들의 생활을 나는 한 없이 사랑하고 싶다. 붉은 얼굴을 하고 막버스에 몸을 의지한 채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겁지만 하늘의 별이며 가로수에 스치는 스산한 봄바람 소리며 시원한 밤공기가 모두 거짓이 없는 것 같아 사랑하고 싶은 것 들 뿐이다. 12시 땡 소리가 울려야 집에 문을 두드리지만 얼굴 한번 찡그릴 줄 모르는 아내의 소박한 미소는 나의화신이다. 우리가 아무리 불행한 세대를 살고 있지만 사랑 같은 건 벌써 인생의 마지막 장이 되어버렸다고 울음을 터뜨리긴 싫다. 이처럼 소박하고 아름다운 생활을 하면서 내주어진 인생을 사랑하며 살고 싶은 것이 나의 전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