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을 수행의 도량으로 승화시키라

교도소로 보내는 편지

2007-05-26     관리자

여래장(如來藏) 불자님께!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옵고, 부처님 법에 대한 열성과 호의에 진심으로 감사와 찬탄을 보냅니다. “고통과 우환 속에서 살고, 안일과 쾌락 속에서 죽는다(生於憂患 死於安樂).”는 옛 격언이 실감나는 현신설법(現身說法)을 보여주어, 선인의 역사와 철학, 지혜가 거짓되지 않음을 더욱 굳건히 믿게 됩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들 때, 제자들한테 “사람에 의지하지 말고, 법(法: 진리)과 계율에 의지하라.”고 신신당부하셨다고 합니다. 하물며 우리 말세의 범부중생은 오죽하겠습니까? 성인이 세상을 뜬 지 오래되어, 온갖 감언이설과 혹세무민이 판을 치는 것도 모두 간사한 사람들 때문입니다.
저도 다행히 부처님 법과 유불선(儒佛仙) 경전·고전 등을 접해 성인의 가르침을 배우고 믿고 의지해, 한때 방탕하고 방황했던 인생을 반성 참회하면서 조심조심 살아가고 있습니다.
건방지고 외람된 말이 될 것 같으나 불자님의 편지를 보면, 교도소라는 분위기 탓도 있겠지만 정신과 심기(心氣)가 차분히 안정되지 못하고, 조금은 산만하게 붕 뜬 느낌을 풍기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 법 공부는 선정(禪定)과 지혜(智慧)를 수행하는 것인데, 반성참회와 염불기도로 마음을 차분히 안정시키고 지혜광명을 밝히는 것이 올바른 방향입니다. 우리 마음이 명리(名利) 등 외물(外物)을 좇아 바깥으로 산만하게 흩어지면서 모든 죄악이 다발처럼 싹터 나왔는데, 이제 그 마음을 추슬러 자기 내면으로 되돌이켜 살핌으로써 회광반조(回光返照, 밖으로 향하여 구하는 마음을 되돌이켜 자기 내부의 불성과 본래 면목을 밝히는 것)하는 것이 모든 수행의 기본원리입니다.
따라서 잘못한 대가로 잠시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감금된 상태도, 알고 보면 바로 자기 본래 진면목을 찾아보라고 반성참회와 회광반조의 수행을 국가사회가 강제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국가가 모든 경비를 부담해가면서 조건부 내지 기한부 출가수행을 강제로 실시하는 셈이지요.
그러니 지정된 기간 동안 바깥 인연에 연연해하지 말고, 가능하면 가족에 대한 혈연(血緣)의 친정(親情)도 절제하면서, 철저히 고독하게 오로지 부처님 가르침에 의지해 청정하고 고요한 수행에 용맹정진하길 간곡히 권청합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편지도 끊고, 그리운 생각도 끊고, 철저히 외롭게 자성(自性)에 귀의하고 의지해 기도 염불하여, 정해진 기간의 격리가 결코 헛되지 않게 하시길 바랍니다. 제가 책을 보내드린 것도 그런 마음과 바람에서였습니다.
그리고 지난번 청하신 영치금으로 약소하지만 조금 보냅니다. 감옥운영제도에 대해 잘 몰라 개인 비용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르긴 하지만, 수행이란 게 본디 욕망을 비우고 어렵고 힘들 게 고행하는 것이라 국가가 공식으로 제공해주는 필수품만 사용하면서, 아주 필요한 물품이 아니면 역시 없이 때우며 수행의 참맛을 보는 것도 강제로 격리 감금된 신분의 특혜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고승대덕들도 감금을 수행의 도량으로 승화시키라고 설하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삼계(三界)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생사윤회(生死輪廻)의 감옥이고, 불타는 집〔火宅〕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혹시라도 제가 보내드린 책 등을 무슨 보시나 은혜로 생각하거나, 갚아야 할 빚으로 여기지 말기 바랍니다. 부처님 법으로 만난 인연이니 인연 따라 잠시 빌려 쓰고, 또 나중에 인연 되면 필요한 다른 사람들한테 보탬과 도움이 되면 되겠지요. 저도 부처님과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살아와서, 감사한 마음으로 조금이나마 보답하려고 회향(回向)하는 것이지요.
오히려 불자님은 격리되기 전에 본의 아니게 남한테 입힌 피해를 먼저 배상하는 것이 불자의 기본 도리일 것 같습니다. 피해를 본 사람은 분노와 원한으로 이를 갈 것이며, 불자님이 감금으로 고통 받았다고 해서 그 분노와 원한이 다 풀리는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이지요.
사실 법에서도 민사책임은 형사책임과 별도로 독립되어 있기 때문에, 형사처벌로 민사책임까지 면제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따라서 출소해 돈을 벌면, 먼저 피해자의 손해부터 갚아주길 바랍니다. 그러고도 여유가 있으면 부처님 법을 위해 쓰세요. 그렇게 참회하고 기도 발원해야, 올바른 인격이고 참된 불자입니다. 잘못된 처신으로 부처님을 욕되게 하고 불교를 비방 당하게 하는 사람은 참된 불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 법 명심해서 차분하고 평화로이 외로운 수행에 용맹정진하길 거듭 간곡히 권청(勸請)하면서, 두서없는 글을 마칩니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나무 마하반야바라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