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

창작동화

2009-07-26     관리자
 

 마침내 염부제에서 제일 큰 종이 이루어졌습니다.

 높이 열두자, 지름 일곱자반-.

 황동 20만 근을 녹여 만든 이 종을 굵고 튼튼한 밧줄로 얽어매었습니다.

 온 신라 안에서 뽑힌 50명의 장정이 목도를 하였습니다. 20만근의 종을 번쩍 들어 봉덕사 종각에 매달았습니다.

 신라의 대가람 봉덕사-.

 “종은 이루어졌다!”

 주종(鑄鐘) 대박사 박 대내마 대감이 외쳤습니다.

 “종은 드디어 이루어졌다!”

 주종 차박사 박 내마가 따라서 외쳤다.

 파발이 말을 타고 반월성으로 달렸습니다.

 대궐을 들어선 파발은 외쳤습니다.

 “상감마마, 종이 이루어졌습니다!”

 열 한 살의 혜공왕은 옥좌에서 일어서며 눈을 반짝였습니다.

 “새 종이 이루어졌다고?”

 소년왕 곁에서 소년왕의 어머니 만월부인은 가슴이 울리는 소리로 말했습니다.

 “경사로다. 두 임금에 걸린 불사가 드디어 이루어졌구나. 경사로다.”

 며칠이 지나, 봉덕사 마당에는 큰 잔치가 베풀어졌습니다. 첫 종을 울리고 종소리를 듣는 잔치입니다.

 종각 아래, 옥좌가 마련되었습니다. 소년 혜공왕이 어머니 만월부인과 함께 봉덕사에 나타났습니다.

 한림랑 김필흥을 비롯한 여러 대신들이 자리를 같이 하였습니다.

 땀 흘리며 종을 만들던 기능자들도 새 옷으로 갈아입고 옥좌 가까이에 앉았습니다.

 대가람의 여러 신도들이 절 마당을 메웠습니다.

 삼십삼천의 주인 제석천왕이 권속을 거느리고 8만유순의 수미산을 날아 내렸습니다. 신라 사람으로 몸을 바꾸어 대중 속에 앉았습니다.

 사주 세계를 지키는 사천왕이 수미산 중턱에서 날아 내렸습니다.

 지국천왕, 증장천왕, 광목천왕이 각각 권속을 거느리고 신라 땅 봉덕사로 내려왔습니다.

 염부제를 지키는 다문천도 8부중을 거느리고 봉덕사 마당으로 내려와 각각 신라 사람으로 몸을 바꾸었습니다.

 왕은 아리따운 소년의 목소리로 종을 만든 주종 대박사 박 대내마와 여러 기능자들을 칭찬하였습니다. 그리고 후한 상을 내렸습니다.

 “우리 신라는 염부제에서 가장 훌륭한 종을 갖게 되었도다. 할아버지 성덕대왕의 덕을 기려서 만든 이 종을 ‘성덕대왕 신종’이라 이름 짓는다!”

 이윽고 혜공왕은 종채를 잡았습니다.

 ……쿵! 쿵! 에밀레…………

 종이 울렸습니다. 성덕대왕 신종이 첫 소리를 내었습니다.

 쏟아진 종소리는 8만 4천 갈래로 나뉘어 서라벌을 한바퀴 돌았습니다.

 뿌리를 앓느라 시들었던 푸나무가 종소리를 듣고 금방 파랗게 살아났습니다. 가지를 앓아 넘어졌던 나무가 금방 일어섰습니다. 말라 죽은 나무에서도 잎이 돋았습니다.

 필까 말까 하던 꽃방울들이 모두 피어났습니다.

 “어디냐?”

 “봉덕사다!”

 새집에는 깰까 말까 하던 알 속의 아기 새들이 종소리를 듣고 모두 깨어났습니다.

 “아, 종소리다!”

 아기 새들은 금방 깃이 돋았습니다. 금방 날개 힘이 솟았습니다.

 “어디냐!”

 “봉덕사다!”

 아기 새들은 봉덕사를 향해 날아가 모였습니다.

 종소리가 지나는 곳마다 빈 그릇이 넘쳤습니다.

 쌀을 담았던 그릇에는 쌀이 가득가득 찼습니다.

 콩 그릇에는 콩이, 팥 그릇에는 팥이 찼습니다. 칠보의 그릇에는 칠보가 가득가득 찼습니다.

 고방에는 벼가 가득 가득, 장롱에는 옷이 가득 찼습니다.

 가물었던 논에는 물이 넘쳤습니다. 말랐던 샘물이 소리내며 솟았습니다.

 “아아, 종소리 덕분이다!”

 사람들이 소리치는 동안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섰습니다.

 “이거? 다리가 나았네.”

 앉은뱅이는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뭐냐? 뭐야? 나도 세상이 환하게 보여.”

 장님이 눈을 떴습니다. 장님을 눈을 비비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벙어리는 말을 하고, 귀머거리의 귀에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배 아프던 사람들은 배가 멀쩡하게 나았습니다.

 허리 아프던 사람들은 허리가 나았습니다.

 머리 아프던 사람들은 머리가 멀쩡하게 나았습니다.

 “종소리 덕분이다. 어디냐?”

 “봉덕사야, 봉덕사!”

 사람들은 봉덕사로 달렸습니다. 아까까지 앉은뱅이로 있던 사람, 아까까지 장님으로 있던 사람이 앞장을 섰습니다.

 -옴 가라지야 사바하, 옴 가라지야 사바하!

 종소리와 함께 ‘파 지옥 진언’ 이 들려왔습니다. 지옥을 두드려 깨는 진언입니다.

 종소리는 1만 유순을 단숨에 달려 1만 유순 높이의 철위산(鐵圍山)에 닿았습니다. 철위산의 철벽이 깨어지고 무너졌습니다.

 철위산에 둘러싸였던 지옥문에도 종소리가 가서 닿자 힘없이 열렸습니다.

 아우성으로 가득 찼던 아비지옥, 규환지옥에 종소리가 닿자 아우성이 멎었습니다.

 칼산지옥의 날카롭던 칼끝이 솜방망이처럼 부드러워졌습니다.

 불수레 지옥의 불수레가 여름 안개처럼 사라졌습니다.

 뜨거운 쇳덩이를 삼키던 철환지옥에서는 쇳덩이가 고물로 바뀌었습니다.

 초열지옥-

 대초열지옥-

 8열 지옥, 128지옥이 모두 스러졌습니다.

 -옴 가라지야 사바하!

 -쿵, 쿵, 에밀레……

 8열 128소지옥을 무너뜨린 종소리는 8한 지옥으로 내달았습니다.

 알부타 지옥-.

 니자부타 지옥……

 8한, 128소지옥도 힘없이 스러져 가고 있었습니다.

 얼음과 추위로 채워진 8한 지옥에 봄바람이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쿵, 쿵, 에밀레……

 8열, 8한 지옥이 온통 종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자유를 얻은 지옥 중생들은 귀를 기울였습니다.

 “-어디냐?”

 “신라, 서라벌, 봉덕사다!”

 지옥 중생은 종소리가 날아오는 쪽을 향해 달리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