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인연

신앙수기

2009-07-20     관리자
[1] 만사는 은혜 가운데서
불법배운 지 얼마 안 되는 제가 신앙에 관한 수기를 쓴다는 것은 당치 않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부처님 법문을 만나 너무나 크게 바뀐 저로서 인생고백이라면, 큰 허물이 될 것 같지 않아 펜을 잡습니다.

저의 나이 이제 40, 순탄하게 지내 온 그 동안의 시간이나, 병고로 절망의 늪을 헤매던 때나 지금에서 보니 모두가 자기 성장의 과정이었고 그 사이에 부처님의 크신 은혜가 끊임없이 내리고 있었던 것을 생각할 때 참회와 감사하는 마음이 가슴에 가득합니다.

부처님의 은혜 속에 있는 것을 지금이나마 알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지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경기도 연천읍에서 태어났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대자연의 순리 그대로 순수하게 생활하시는 부모님 모시고 성장하였으며 종교라고는 따로 없었습니다.

저의 나이 25세 때 결혼하였는데 , 경북 상주군 농가의 5남 1녀중 막내며느리가 되었습니다. 시댁도 역시 농사를 지으셨고 종교는 없었습니다. 저는 결혼하면서 바로 남편의 직장을 따라 서울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큰 고난없는 순탄한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2] 밀려온 병고
그런데 2년전 9월부터 몸이 아팠습니다. 어디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이 항상 아팠고 음식도 먹기 싫고 몸은 천근이나 되게 무거웠으며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럭저럭 고통속을 지내는 동안 다행히 불광법회 법화성 보살님을 만났습니다.

법화성 보살님의 친절한 안내로 불교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법회에도 인도된 것이 1년 전입니다. 평소에 종교에 대하여 아무런 준비없던 저는 현실생활에 성실하는 것만이 생활의 유일한 중심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법화성 보살님은 독경하고 염불하며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시면서 거듭 열심히 기도를 권하셨습니다. 저는 그리하겠다고 대답만은 하였지만 그렇게 기도가 되지 않았습니다.

몸도 무겁고 가누기가 힘들었지만 부처님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확고한 믿음이 없었던 것이 솔직한 실정이었습니다. 기도하고 수행함으로써 내 생명에 은혜로운 진리가 충만해져서 평화와 안녕이 온다는 것을 말로는 알아 듣는 듯 했지만 마음속 깊이 믿어지지 않았는 것 같았습니다.

그 후 얼마를 지나 이상하게도 소화가 잘 안 되고 골이 너무 아파서 두눈이 빠지는 것 같은 고통스러운 증세가 밀려왔습니다. 지난 해 9월 26일 아침의 일입니다. 분명히 눈을 뜨고 있었건만 제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햇빛 아래에 있다가 실내에 들어오면 잠시동안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갑자기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 그 순간을 어떻게 말해야 실감이 날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왜 이래, 내 눈이 안 보여! 이 눈이 왜 안 보이는 거야!」「엄마, 장님되면 어떻해! 엄마 나 안 보여 엄마 어떻해」아이들의 말이었습니다. 저는 연달아 외쳤습니다.「아무 것도 안 보인단 말야, 여보! 아무 것도 안 보여!」

그날 아침 지옥이 따로 없더군요. 난리가 났습니다. 국민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밥도 못 먹고 울면서 학교에 갔고 저는 평소에 다니는 병원을 찾았습니다.

응급실로 들어가 진찰을 받고 머리 엑스레이 사진을 찍을 쯤에야 눈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응급실로 들어가 진찰을 받고 머리 엑스레이 사진을 찍을 쯤에야 눈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결과만으로는 부족하니 입원하여 정밀검사를 해보자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입원하던 날 저녁, 하염없이 뜨거운 눈물이 흘렀습니다. '내가 죽으면 어떡하나, 내 자식을 위해서 지금 나는 죽을 수 없다. 가을 들판에서 남들은 모두 기쁘게 추수를 하건만,

내가 심어 놓은 곡식만 버려져 서리를 맞고 있는 거와 같이 결혼 5년만에 어렵게 낳은 내 자식들을 내가 거두지 못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남의 손에서 눈치를 보며 먼저 간 엄마를 그리워하며 눈물 흘릴 남매를 생각하니 가슴이 메어지고 심장이 터져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럴수록 병은 꼭 고쳐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다음날 입술이 부르트도록 힘든 컴퓨터 사진을 찍고 결과가 나오는 1주일을 기다렸습니다. 그날이 되자 담당의사는 내일 아침에 보호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하면서 제 시선을 피했습니다.

의사 특유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였지만 말귀야 알아 들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말 안하고 보호자를 찾을 때에는 말 못할 무엇인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오는 이미 하고 있었지만 막상 당하고 보니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3] 뇌종양과 대치하라
이튿날 의사를 만나고 나온 남편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그렇게 슬프게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애써 태연한 척하면서 '괜찮아, 치료하면 된대! 당신 힘내야 돼, 무엇이든 잘 먹고 힘내어 빨리 퇴원 하는 거야 알았지!

당신 없으니까 집에 들어가기도 싫잖아, 알았지!' 의사가 무엇이라 하더냐는 물음에는 대꾸도 없이 회사일로 손님 만날 시간이라면서 바쁘게 나간 남편이 집으로 돌아가 소리 없이 흐느끼며 그렇게 울더랍니다.

그날 법등에서 법화성, 종오, 도피안 보살님들이 병실에 찾아 오시어 기도를 해주셨고, 제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불법에 대하여 좋은 말씀을 해주시며 일심으로 「마하반야바라」'을 염하라고 일러 주시고 위로 해주셨습니다. 참으로 행복한 인연이었습니다.

저는 그분들과 같이 기도를 하면서도 제 머리 속에는 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의사는 보호자를 찾았고, 보호자인 남편은 아무 일도 아닌 척 나를 피해갔는데 도대체 내 병명이 무엇일까? 암일까? 아니면 몇 개월밖에 살 수 없는 시한부 생명이 된 것은 아닐까…」

역시 염불기도도 힘들어 했어야 힘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는 불법 만난지 얼마 안된 때이기도 하였지만, 염불 수행에 힘을 얻어 놓지 않고서 어떻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지금에야 그것을 깨달으며 마땅히 평소에 힘써 염불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보살님들이 고마운 말씀을 주시고 돌아가신 뒤에도 저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다짐을 했습니다. 무슨 말을 들을지라도 절대 흥분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하리라고…


[4] 약 먹을 수 없는 병
그날저녁 회진시간에 의사를 붙잡고 조용히 물었습니다. 『나는 불교를 믿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한 번 태어나면 죽게 되며 수행이 없을 때 윤회를 거듭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의 수명이 길고 짧은 것이 있을 뿐 사람은 누구나 죽음은 겪어야 할 일이 아닙니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죽을 확률이 7-80%라면 제 주위 사람들에게 폐 끼치고 싶은 생각 없습니다. 이대로 저 혼자만 알고 있다가 죽겠습니다. 말씀해 주셔야 저도 제 나름대로 모든 일을 죽기 전에 정리하지 않겠습니까』

의사는 빙그레 웃으며 『아주머니께서 그 정도로 각오가 되신 분이고 또 어차피 환자분과 상의해서 치료를 해야 될 일이니까 말씀 드리겠습니다. 아주머니 병명은 뭐라 할까? 그냥 「뇌종양」입니다.

다행이 악성은 아니고 그냥 혹이기 때문에 다행이고, 우선 일차적으로 약물치료를 하기로 하겠습니다.』 의사의 말은 아주 간단하고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무서운 것을 그냥 종기 정도인 뇌종양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기야 수없이 죽어나가고 참아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의 환자들을 얼마나 보아 왔겠습니까. 그들이 무신경한 것을 인정하면서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약은 딱 한 가지 뿐이라는데, 부작용이 나서 먹기 힘들었습니다. 3,4일씩 쉬면서 2차 3차 시도해 보았지만 창자까지 끓어오르는 구토를 하고 살가죽이 춤을 추는 것 같은 경련이 약 먹을 때 마다 그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약물 치료를 중단하고 뇌수술도 포기하고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면서 3주간의 입원생활을 청산하고 통원 치료를 받기로 하였습니다.

[5] 믿음과 감사와
종양의 크기로 보아 5주면 되겠다는 진단을 받고 시작했지만 말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너무나 힘이 들어 자주 중단하면서 치료하다 보니 4개월이나 걸렸습니다. 그런데 저희에게 중요한 것은 제가 방사선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의 저의 생활의 변화입니다.

저의 생활이 믿음의 생활, 기도의 생활, 감사의 생활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제가 속한 학동법등 형제들은 저의 집에 여러 차례 기도를 와 주셨고, 풋내기 불자인 저에게 바른 믿음, 바른 기도를 할 수 있도록 정말 따뜻하게 도와 주셨습니다.

뇌종양으로 중증에 빠져있던 중에 부처님의 광명을 보고 병을 고친 무위선 보살님을 저의 병실까지 모셔다 그분의 투병생활, 기도생활까지 들려주었습니다. 이처럼 고마운 형제들에 둘러싸여 지내면서 저의 감사한 생각은 말할 것도 없고 부처님이 가르침에 대한 믿음도 차차 깊어져 갔습니다.

저는 여태껏 살면서 이 세상에서 좋은 일을 한적이 그리 없는 것 같은데 제 주위에는 이렇게 좋은 분들이 계셔서 나를 도와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새롭게 솟아났습니다. 정말 고마운 우리 불광형제들입니다.

그런데 어느날인가 우리 법등형제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면 물은 밑으로 다 빠진다, 하지만 콩나물은 그 물을 먹고잘 자라지 않느냐.

밑으로 물이 다 빠진다고 물을 안주면 그 콩나물은 어떻게 되겠느냐. 이와 같이 불법도 일심으로 믿고 읽고 외우면 차츰 깊은 뜻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열심히 기도 정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제 얼굴에서는 쥐가 났습니다.「왜」인가하면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기도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가슴속 밑바닥에서부터 절실하게 우러나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형식적으로만 기도를 한다는 말인가,

마음이 없는 기도로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저의 마음 바닥에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맙게도 나에게 기도를 권하는 법등형제들에게 마음속에서 항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것이 이 콩나물 기르는 비유이야기를 듣고서 비로소 제 잘못을 깨달았습니다.「그렇다. 명절 때면 고향에 가기 위하여 차표를 사려고 줄을 지어 서 있으면 그 줄이 아무리 길어도 시간이 가면 표를 살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왜 줄을 서지도 않고, 표를 사려고 애를 쓰고 있었을까 참 한심하다……」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제가 크게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도 기도하라고 간절히 권해오면 대답만 하고

실제로는 하지 않던 기도를 그날부터 제 나름대로 열심히 시작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행복한 인연이고 고마운 우리 불광 법등가족입니다.

[6] 기쁨은 믿음에서
그때부터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경을 읽고 염송을 했습니다.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법등형제 보살님에게 물어 가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아침에는 10시부터 11시까지, 저녁에는 9시부터 10시까지 삼귀의, 반야심경, 천수경, 금강경독송, 반야바라밀염송 천념 등 일과 정진을 밀고 나갔습니다.

그때 부처님의 말씀이 새롭게 가슴에 와 닿았고 감사한 생각이 솟아올랐으며 입에서는 언제나 바라밀 염송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부터는 과거에는 모르던 평화로운 느낌이 솟아나고 감사한 생각이 더욱 간절했습니다.

그리고 살고 싶은 욕망에 자식을 핑계 삼아 살아야 한다고 눈물지었던 지난날에 대한 두려움이 깨끗이 사라지고 기쁨과 평화를 마음에서 느낄 수 가 있었습니다. 누구라 말할 것 없이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물론 저의 병도 어느덧 잊어버렸습니다.

[7] 크신 은혜 갚으리
이렇게 감사한 마음은 부처님 은혜에 보답해야 겠다고 마음속 깊이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나의 주변에서부터 바라밀법문을 전하여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였습니다.

3주간의 입원생활과 4개월간의 방사선치료하는 동안 친정 어머니에게 걱정끼쳐 불효 막심하였던 것이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대자비광명이 어머님께 비추어지기를 기원하여 제일 먼저 전법하고, 친정형제들 그리고 두 분 이모님에게도 바라밀 가르침을 전하여 불광가족으로 정착되었습니다.

저는 염불정진 부처님 은혜를 다시 새롭게 느껴졌고 병은 옛날 일로 잊어버렸으며 매일 기쁨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저는 더욱 정진하고 전법하여 인연 있는 모든 분, 온 이웃에게 부처님의 광명소식을 전하여 크신 은혜에 보답할 각오입니다.

얼마전 정기 진찰하는 날 저를 보신 담당선생님은 「어떻게 건강관리를 하였길래 그렇게 좋아졌느냐」고 하면서 고맙다고 기뻐하시더군요. 저는 서슴없이「모든 것이 부처님 은덕」이라고 말하니,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모든 것은 부처님 덕, 그 가운데 의사 덕도 조금, 아주 조금은 있지 않겠느냐 해서 같이 웃었습니다. 저는 부처님의 법이 우리들 개인과 우리나라의 안정과 세계 평화를 가꾸는 근원 진리라는 가르침을 깊이 믿으며, 반야바라밀 법문을 닦아 불보살님 은혜에 보답할 것을 다시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