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성학] 다르게 사는 여성

삶의 여성학

2009-07-18     관리자

 우리는 가끔 오랫동안 못 만났던 사람을 어느날 갑자기 엉뚱한 장소에서 만나는 수가 있다.

  필자와 용여사가 학교 교정에서 느닷없이 만난 것이 그런 경우였다. 당시 주부였던 우리는 아이들이 어릴 때 한동네에 살면서 차도 함께 나누고 교육 이야기며 세상 이야기를 곧잘 나누던 사이였다.

  각자 수업을 끝내고 다시 만난 우리는 교정 벤치에 앉아 그동안 궁금했던 신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여성들의 수다떨기 단골 메뉴인 아이들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용여사는 아들만 둘이었는데 당시 미국에서 돌아와 미국생활을 그리워하는 아이들을 달래며 교육을 철저히 시키는 것을 보았는데 이제는 두 아들을 모두 장가를 들였다는 것이었다.

  한동네 살때 보면 실질적으로 사는 미국생활의 습관탓도 있겠지만 검소하고 철저한 면이 있는 분이었다.

  " 훌륭한 아드님 장가보내고 시어머니 되시니까 어떻습니까?" 라는 물음에 "아, 우리나라 법도 있는 당당한 시어머니 난 그거 잘 못해요. 나는 그냥 내 마음대로 내 법대로 하는데 잘 아는 아우가 나를 보고 한국풍습 다 흐려 놓는다고 야단합디다." 라며 용여사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용여사는 아들 둘을 결혼시키면서 시어머니들의 가장 큰 관심사이며 마술지팡이가 되어주는 예단을 없앴다는 것이었다. " 번거롭고 돈쓰고 장사에게 끌려다녀야하는 그 짓을 뭐하러 하겠수. 결혼 예복도 그 쪽은 그댁 좋아하는 걸로 하라고 했고 나는 바빠서 가까운 시장에서 칼라 (색)만 보고 해입었지. 우리집 양반도 자기가 해입고.... 작은 놈은 전세집에 살림을 차려 놓은 상태여서 신혼 여행 다녀온 후 인사만 하고 자기네 집에서 자라고 보냈지. 자기 네 집두고 피곤한데 우리 집에 잘 거 없잖우? 그런데 참 우리나라 법도는 우수웁디다? 사돈이 놀라서 전화를 했어요. 우리 애가 무얼 잘못한 모양인데 마음을 푸시라고 그 전화를 받고 얼마나 놀랐던지.... 딸 가진 어머니가 그렇게 신경을 쓰는데 혼사 때는 아들 가진 어머니가 무엇이든지 먼저 양보해야 해요."

  그러면서 용여사는 이번 추석에 자기네는 제사도 안하고 며느리가 애기 낳은지도 얼마 되지 않아서 자기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가지고 아들네 집에 가서 함께 지냈다는 것이었다.

  " 그런 시어머니가 어디 있어요? 그러시다가 며느리 버릇 다 버리겠네." 라며 짐짓 비난을 했더니 용여사는 한 술 더 뜨는 것이었다. "이봐요. 나는 아들내외가 집에 오면 음식 못하게 해요. 이건 내 집이고 우리 집에 온 사람이 아들내외라 할지라도 우리집 부엌에서는 내가 요리를 한다는 생각이거든요. 나중 설거지는 같이 하지만 결혼해 나간 아들은 자기네 인생이 따로 있는 것이고 그러라고 결혼시킨거 아니우? 아들네 집 전화? 난 안해요. 둘다 직장 있고 좀 바빠요?" 나는 딸이 없으니까 딸같이 도와주면서 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보고 싶어요.

  교정에 앉아서 오랫만에 만난 동네 선배와 수다를 하는 동안 필자의 눈앞에는 혼수 걱정으로 얼굴이 찌그러진 딸가진 어머니들의 얼굴과 `내가 어떻게 키운 아들인데`라며 한많고 힘들었던 지난 날을 보상받아야겠다는 듯 온몸에 힘을 주고 앉아 있는 아들 가진 어머니들의 얼굴이 함께 어른거렸다. 딸을 둔 어머니나 아들을 둔 어머니나 우리는 똑같이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삶을 살아온 한국의 어머니들이며 가부장의 그늘에서 살아온 한많은 여성들인데 왜 이렇게 이중적인 사람으로 꼬여버렸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남존여비의 사회에서 길들여지며 살아온 역사만큼이나 우리 어머니들이 딸과 아들 두 개의 얼굴을 가진 어머니로 살아온 세월이 길고 마음의 주름살도 깊은 것 같다. 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시집과 고부갈등으로 상담을 하러 오는 여성들은 한결같이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이거봐요 언제 우리가 자식에게 보상받으려고 자식키웠어요? 그런 걸 왜 엉뚱하게 며느리에게 받으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못나서 그런지.... 그렇지 않아도 고부간은 가까워지는데 한계가 있다고 봐요. 그런데 강제로 명령하고 요구하면 그 앞에서야 복종하는 척 하겠지만 마음 속으로 사랑하겠어요? 불평불만이 많아도 아들 가진 사람이 양보하면 젊은 부부는 편안해져요. 우리 세대 어머니들이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 건 우리 몫의 인생을 살았던 것 뿐이지요. 어머니들이 변화해야해요 내 고통이 네 고통이 되고 네 고통이 내 고통이 되잖아요? 내 자식이 어디 내 소유인가요. 내 며느리도 남의 집 귀한 딸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해요.그리고 나야 안목이 없어서 작은 선물도 당사자가 고르게 했지만 한쪽은 안목찾고 다른 한쪽은 안목 없다는 소리 안들으려고 모두 그 야단들 아니겠어요? 안목 그거 사람 잡는 것 아니우?"

  저녁나절 바람이 시원했지만 용선배의 이야기는 필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마치 삼복더위에 시달리다가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방에 들어간 듯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뒤틀리고 답답 갑갑한 한국의 어머니, 숨막히는 지배복종의 시집관계가 어딘가에서 뚫어지고 풀려나가는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자녀 결혼을 전후한 돈 문제, 안목문제, 아들 쪽 사돈댁 심기 살피고 예단 맞추는 문제로 홍역을 치루는 많은 딸 어머니들과 그 어머니의 또다른 의식 속에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답답 갑갑한 한국의 아들 어머니 모습이 달라지고 변화하고 있다는 희망을 비쳐주는 다르게 사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아들 제일주의 선봉자인 우리 어머니들은 남자 중심의 사회에서 남계의 대를 잇고 조상을 받들기 위해 아들 집착적인 어머니로, 당연히 보상을 요구하는 탐욕적인 어머니로 모두가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여성들이며 이것이 우리 자신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