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끝

보리수 그늘

2009-07-17     관리자
희미한 오렌지색처럼 짙은 애를 담은 풍경이 우리의 두눈에 가득 맺힐 때, 세월의 건널목에서 신호등이 바뀌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참으로 쓸쓸하다.

해서, 바람이 머리카락에 와 부딪혀 흩어지고, 강물이 노을을 받아 싸늘하게 빛나고 있음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며, 그 기다림의 끝에서 만나는 그 무엇-사물과 사실과 사람들-조차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다. 더욱이 내가 몰라서 슬픈 것은 내가 보다 바람직한 만남을 위해 내가 어떻게 해야되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이 초겨울 그 기다림의 열망으로 인하여 얼마전 가을 하늘처럼 맑은 순수와 접하게 되었다. 버스는 자리가 전부 차서 한 사람도 서있지 않았고, 사람들은 각기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창 밖을 바라보고 있어서 달리는 버스 안은 고요했다. 이윽고 한 정거장에서 소년이 올라 탔다.

모두들 그 소년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됨을 느꼈고, 소년은 내 앞에 와서 멈추었다. 나는 별 생각없이 그 소년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그 소년은 다리를 약간 절뿐더러 정신 장애자 인 듯 싶었다. 고요한 오후의 버스 속에서 그 소년이 제법 큰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너 이거 없지?」사뭇 반말투이다. 「이거 정말 좋은거야.」소년의 손에는 진홍의 단풍잎 두장이 곱게 놓여 있었다. 소년은 그것을 바라보더니 볼에 대고 조심스럽게 부비고 냄새도 맡는다. 「너 이거 하나줄까?」 마치 귀중한 보물을 선물하듯이 머뭇거리다가 단풍잎 하나를 내민다.

사람들의 시선이 이 고요한 오후의 진풍경으로 모아졌고, 나는 약간의 부끄러움과 함께 그 단풍잎을 조심스레 받아들며 「고마워」라고 말하자 그 소년은 온 얼굴이 단풍잎보다 더 빨개지며 환하게 웃는다. 나도 따라서 웃었더니 잠시 후에 「잘가」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에서 내렸다.

나는 다시 그 자리에 앉아 종점까지 오는 동안 똑같이 그 단풍잎을 바라보고, 볼에 부벼도 보고, 냄새도 맡아 보았다. 그러자 이상하리만큼 신비스럽게도 나의 만성 두통이 싹 사라지고, 구름 위에 앉아 둥실 떠 있는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이었다. 그 이후로 오랫동안 소년의 미소와 그 단풍잎 때문에 무척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다.

인생을 긴 여정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길고 긴 여정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사물과 사실과 사람들을 만날 수 밖에 없다. 행복과 불행조차도 우리가 무엇을 만나느냐에 달려 있으며, 우리 삶의 참가치도 이 만남을 어떻게 진지하게 인식할 것인가에 두어야 한다고 해도 별로 과장된 표현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무엇을 만날 것인가를 모르면서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 민족에게서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선(善)과 악(惡)의 보상 심리는 하나의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다. 선을 행함으로써 그 사람은 선과 만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며, 그 기다림의 끝에서 그는 좋은 일, 좋은 사람과 만날 것이다.

악을 만나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 기다림의 끝이 요원해서 우리가 감지하기 몹시 힘들지만 기다림이 간절하면 분명히 만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것이 어쩌면 내세(來世)가 될지도 모르지만.........

무엇하나 아쉬운 것도 없고 몹시 기다려지는 것도 없는 20세기말, 고도로 발달한 기계화, 산업화시대속에서 여전히 우리를 설레게 하며, 기쁨에 들떠 잠 못이루게도 하고, 절대의 평온 속에서 침잠할 수 있게하는 많은 선(善)들을 꿈꾸어 본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며 올해가 다 가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단 한 가지라도 선을 행할 것을 다짐해본다. 그로인하여 나는 기다리는 것이다. 인간들이 오랫동안 그래 왔듯이....

마지막으로 내가 한 번도 선을 행함이 없이 그 오후의 고요한 평화와 티 하나없는 순수를 만나게 해준 전생(前生)의 나에게 무척 감사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