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삶

보리수 그늘

2009-07-17     관리자
 
나는 바람을 좋아한다. 바람 속에는 환상같은 추억과 신비한 소리, 신선한 감각이 있기에 좋아한다. 「바람이 분다」는 말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듯한 흥분을 느낀다. 또 바람 속에는 낭만적인 삶과 함께 꿋꿋한 의지를 일깨워 주는 것이 있어서 좋다.

바람은 언제나 새롭다. 순간을 스쳐간 바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마치 그 자체가 시간인 듯하다. 철이 바뀌는 것을 제일 먼저 알려주는 것도 바람이다. 아직 묵은 눈이 쌓인 들판에 어느덧 훈훈한 봄소식을 실어오고, 아직 무더위에 시달리는 입추 무렵 문득 청량한 한줄기 산들바람이 다가오는 가을을 일깨워 준다.

바람은 커다란 섭리를 느끼게 해준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분명히 있다는 바람의 실체감(實體感)이, 보이지 않는 섭리까지 믿을수 있는 겸허한 마음을 불러 일으켜 준다.

솔숲을 지날 때 「와아 와」공간을 빗질하는 듯한 바람소리를 듣노라면 엉뚱하게 무한한 우주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떨기 작은 들꽃을 어루만지는 미풍을 보며 생명의 신비를 다시 느끼게도 된다.

바람은 귓가를 스치며 비밀스런 이야기를 속삭이거나 신비한 노래를 불러준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듣지 못하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삶에 대해 겸손해질 수 있다.

나의 어린시절 추억 속에도 그 신비한 바람이 있다. 지금은 도시 한복판이 되어 흔적도 없게 됐지만 옛날 광주에는 썩 운치있는 경양방죽이 있었다. 햇볕 좋은 어느날, 아버지는 자전거 앞자리에 어린 나를 앉히고 버들가지 휘늘어진 경양방죽가를 달리셨다.

그 때 귓가를 스쳐가던 바람의 작은 휘파람 소리를 나는 아직껏 잊지 못한다. 유독 장남인 내게 엄격하셨던 아버지의 사랑을 나는 그 바람소리 속에서 확인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쉬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러시아 체흡의 단편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씩씩한 사내아이가 나아쟈에게 썰매를 타자고 했다. 나아쟈는 가파른 빙판길을 보기만 해도 겁에 질리지만, 그 사내아이를 혼자 마음속으로 좋아했기 때문에 거절을 못한다.

한 번 만이라는 다짐아래 썰매를 탄다. 죽음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듯한 썰매 위에서 나아쟈는 눈을 꼭감고 이 긴 순간이 끝나기만 기다린다. 그런데 날카롭게 얼굴을 스쳐가는 바람속에서 환청같은 소리를 듣는다.  「나아쟈, 나는 널 좋아해.」

언덕 아래에 닿았을 때 나아쟈는 초죽음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아쟈는 새파래진 입술을 떨며 썰매를 한 번만 더 타보자고 자청한다. 「널 좋아한다.」는 말이 바람소리였는지, 사내아이의 속삭임이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아쟈는 몇 번이고 썰매를 다시 타지만 끝내 바람소리인지 아닌지를 알아내지 못한다. 그러나 썰매를 타던 순간의 바람소리만은 영원히 잊지 못하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이런 바람소리 때문에 썰매라는 모험을 되풀이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 바람이 좋은 것은 나의 삶을 확인시켜주는 신선한 감각 때문이다.

오랫동안 아프거나 일에 쫓겨 방안에만 있다가 홀가분하게 털고 일어나 밖에 나섰을 때, 산뜻하게 이마를 스치는 바람이 자신의 살아 있음을 새삼 실감시켜준다.

또 가파른 언덕 위나 산마루에 올라 불어오는 바람을 맞을 때, 나는 다가오는 미래와 마주치는 듯한 작은 충격을 맛본다. 그럴 때 생각나는 것이 폴․ 발레리의 시 한 구절  「바람이 분다, 이제는 굳세게 살아야지.」

불어오는 바람속에는 삶에 영향을 주는 온갖 것들이 상징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그 많은 어려움을 헤치며 꿋꿋이 살아가려는 의지이다. 때문에 이 싯귀는 우리 마음을 꽉 움켜잡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일으키는 바람도 많다, 옛바람, 치맛바람, 춤바람, 서양바람, 정치바람........자연의 바람은 깨끗한데 사람들의 것은 몹쓸 바람이 많다.

왜 이뿐이겠는가! 점점 세상에는 이상한 바람이 많이 생긴다. 남의 바람에 휩쓸리지 않고 제 정신으로 산다는 일이 자꾸만 어려워진다. 그럴 때에 발레리의 싯귀를 새겨볼 일이다. 정말로 굳세게 살아가려면 말이다. 바람속에서 나는 삶을 지켜갈 의지를 배워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