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연을 노래하던 어린이들

보리수 그늘

2009-07-17     관리자
지난날의 어린이들은 대자연을 마치 집마당처럼 헤아리면서 이 속에서 신명나게 뛰어 놀았었다. 썩 활달하고도 싱그러운 삶이었고 대자연과 더불어 호흡하는 하는 사이에 대자연이 품는 신성(神性)을 온몸으로 받아 들였었다. 도시가 인간이 만든 작품이라면 대자연은 하늘이 만든 작품이다.

어린이들이 대자연과 더불어 얼마나 다사롭게 지냈는가함은 그들이 부르던 전승동요에서도 알뜰히 드러난다. 귀엽고 아름다운 새나 꽃을 보면서, 느닷없이 짐승이나 벌레와 마주치면서, 

함빡 내리는 눈이나 비를 쳐다보면서, 벗들과 재잘거리며 즐거이 뛰어 놀면서 어린이들은 즐거이 전승동요를 불렀으며 건강한 마음을 곱게 키워왔다.

두껍아 집 지어라.
황새야 물 길어라.

나뭇잎이 허덕허덕하도록 뜨거운 여름날 벌거벗은 어린이들이 시원한 바닷가 모래 벌판에서 모래를 쌓고 집짓기 놀이를 하면서 흥겹게 부르던 동요다.

한 동네에 새로이 초가집을 짓게 되면, 마을 어른들 모두가 앞다투어 물을 길어 나르고 재목을 다듬는가 하면, 함께 새벽질하며 너도 나도 일을 돕는다. 정겨운 이런 모습을 흉내내며 아이들은 손바닥으로 모래를 딱딱 치면서 이 노래를 부른다.

벗들과 함께 같은 사설을 거듭거듭 불러가며 놀이를 즐긴다. 어린이들은 이 동요를 되풀이하여 부르며 놀이하는 사이에,  이웃끼리는 늘 따스하게 도우며 사는 게 사람 삶의 질서요, 도덕률임을 자연스럽게 배운다.

더구나 시원하게 펄쳐진 수평선, 시퍼런 하늘과 바닷물을 주변에 깔고 사람 삶의 바탕인 사랑과 협동을 찬미하는 분위기는 조화로운 대자연과 어울리면서 아름다운 삶의 지혜를 긍정적으로 터득한다.

백산아 백산아
너 밥그릇하고
나 밥그릇하고
바꾸자.

한국의 농촌에서는 거리에서나 들판에서나 으례 마주치는 것은 외외히 높아 의젓한 산들. 살아 숨쉬는 듯한 봉우리들과 함께 호흡하는 아이들로서는 봉우리는 너무 크고 자기는 너무 작다. 저 봉우리들은 가멸지게 사는 듯하고 그 밥그릇도 넉넉하게 클 것으로 느낀다.

맘껏 큰 소리로 외쳤을 때 울려오는 메아리를 즐기면서 밥그릇을 서로 바꾸자고 소리쳐 제안한다. 어린이들은 대자연과  한 덩이가 된 채 벗하여 지내면서 대자연의 엄숙한 섭리를 배운다.

아방은 줄둥이
어멍은 입둥이 줄둥이
아들은 덩드렁둥이
딸은 꼿둥이

울타리에 호박이 소담스럽게 열린 모습을 보고 어버이와 자식 사이의 끈덕진 사랑을 노래한 제주도의 동요. 제주도의 말이 유별나서 표준어로 옮겨 본다.

아버지는 덩굴동이
어머니는 잎동이
아들은 덩드렁동이
딸은 꽃동이
 
<덩드렁>이란 미끄닥하며 둥글 넓적한, 짚을 두드리는 돌판인데, 여기에서는 호박 따위 열매를 비유하였다. 호박덩굴에는 크다란 호박과 더불어 호박꽃도 대롱대롱 피었다. 호박이나 호박꽃은 그 자체만으로는 있을 수 없으니, 호박꽃이 피고 호박이 열리려면 자양분을 대어주는 덩굴과 잎이 있어야 한다.

덩굴과 이파리는 한결같이 호박, 호박꽃을 위해 있다는 게 보람이다. 호박, 호박꽃이 자식들이라면, 이들에게 이바지하는 덩굴과 이파리는 어버이다. 이들은 서로 밀접한 상관 속에서 고귀한 사랑을 실현한다. 어린이들은 이런 동요를 거듭 노래하는 사이에 포근한 사랑의 분위기 속으로 안기게 된다.

대자연과 더불어 대자연의 오묘한 슬기를 배워 나가는 지난 날의 아이들은 어른이 되면서도 온몸으로 배운 바 애틋한 질서인 애정을 간직한 채 한 평생 이를 삶 한복판에서 실현해 간다. 대자연을 점차 잊어만 가는 오늘의 어린이들은 대자연의 크나큰 덕성(德性)마저 외면해 간다는 점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