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의 곳간이 열리니 나라가 들썩인다 (2)

이야기 삼국사

2009-07-17     관리자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 나라를 지키자고 세운 황룡사. 이 땅에서 숨쉬고 사는 사람들의 영혼이 담긴 호국의 도량. 여기에 불법을 수호하는 용 (龍)이 있다. 그것도 중국에서 만난 신인 (神人)의 맏아들이 있다는 소식은 무엇을 뜻하는가? 적어도 중국을 지키는 능력을 갖고 있는 신인의 맏아들이라면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상식적으로도 타국에 나가 있는 맏아들이라면, 아버지의 능력을 이어받아 한창 성장하고 있는 믿음직한 모습을 떠올려 봄직하다. 자신의 시대를 마감하는 노인의 완숙한 이미지와 활력이 넘치는 팔팔한 청년이 떠오르지 않는가? 이렇게 기운 넘치는 용이 수호하고 있는 불법도량을 갖고 있는 나라다. 장미빛 미래가 다가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면 잠시 자장 (慈蔣)의 확신과 사뭇 대조적인 용의 모습을 관찰해 보기로 하자.

  때는 헌강왕 11년 (795). 물론 삼국통일 이후의 이야기가 된다. 신라가 비록 반쪽의 통일이나마 이루고 나서 오랫만의 태평성대를 구가하다 보니, 어느덧 민심은 흉흉해지고 왕위를 둘러싼 추악한 음모가 궁중을 한시도 떠나지 않는 나날이 계속 되었다. 이런 나라 분위기를 감지한 당나라의 사신이 한 달 머물다가 돌아간 다음 날이었다. 홀연히 두 여자가 궁전 뜰에 찾아와 왕에게 아뢴다. " 저희들은 동해의 용왕이 드나들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동지 (東池)와 청지 (靑池)에 있는 두 용의 아내입니다. 그런데 당나라의 사신이 하서국 사람을 데리고 와서 우리 남편과 분황사 우물에 있는 용까지 모두 세 용에게 주문을 걸어 작은 물고기로 변하게 해서 통 속에 넣어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명하시어 우리 남편들인 호국용 (護國龍)을 여기에 머무르게 해주십시오." 한다. 왕이 친히 뒤를 쫓아가 확인하니, 하서국 사람들이 할 수 없이 고기 세 마리를 내어 바쳤다고 한다.

  아니 얼마나 무기력한 용이기에 외국에서 온 한낱 술사의 주문에 걸려든단 말인가? 그것도 명색이 호국룡이라면서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용에 대한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흔히 목격되듯이 무조건 그 막강한 위력 때문에지금까지도 승신이 끊이지 않는 용을 대상화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용은 그힌을 긍정하고 활용하는 주인을 만나지 못할 때는 조그만 물고기의 처지와 다르지 않게 된다. 즉 인정된 만큼의 힘밖에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용의 속성인 것이다. 마치 불신과 질시가 팽배한 국가에서는 구성원들의 잠재력이 제대로 분출되지 못하는 경우와 다르지 않다. 반면에 각 구성원들이 서로의 가능성을 인정해주는 창조적 사고가 일반화 되었을 때는 말 그대로 국가 전체가 용트림을 할 것이다. 국가만이 아니다. 개인이 갖고 있는 잠재능력을 스스로 얼마나 발휘하는 가의 관건은 자기 긍정의 정도에 말미암는다. 이와 같이 우리 모두는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단지 그것을 제대로 내어 쓴느냐의 정도만 다를 뿐이다. 이 무한 잠재력이 바로 용의 정체인 것이다.

  항상 뇌리를 떠나지 않는 고국을 생각함에 걱정이 떠나지 않던 자장 (慈藏)아니던가? 어찌 기쁘지 않으리오. 움츠렸던 소국 (小國) 컴플렉스로부터 드디어 비상의 날개를 한껏 편다. 자장만이 아니었다. 자장의 신념을 국가적인 자신감으로 받아 들이고, 이를 구상화한 당시의 분들 모두가 그러했다. 자신들의 무한 능력인 호법룡을 감지하는데서 끝난 것이 아니다.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에 옮기니, 그 첫 번째 작품이 바로 황룡사 구층탑이다.

  그러나 불사는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치고 만다. 거대한 탑을 세우기에는 신라의 기술이 너무도 낙후되어 있음을 싫어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중도에 포기할 만큼 한가로운 국가적 대사가 아니었다. 국내 기술진이 안된다면 다른 데서 데려오면 그만 아닌가? 모처럼 분출하기 시작하는 거국적인 에너지를 멈추게 해서는 안된다. 중론은 기술 선진국인 백제에서 사람을 데려오기로 결정한다. 엄청난 보물과 비단을 가지고 백제에 간 사신은 드디어 아비지 (阿非知)라는 장인을 대동하여 돌아온다. 이제 바야흐로 역사가 시작되려 한다.그런데 훗날 통일의 대업을 완성한 무열왕의 아버지인 용수 (龍樹), 불교사에 길이 빛나는 용수보살과 같은 이름의 사람이 이 사업을 주관하였다는 것은 역사의 필연인가?

  상식적으로 이 정도라면 모든 사전 준비는 끝난 것 같다.그런데 막상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돌출한다. 총감독을 맡고 있는 아비지가 200명의 일꾼들을 데리고 처음 탑의 찰주 (刹柱 : 탑 꼭대기에 있는 장대)를 세운 날이었다.

  아비지의 꿈에 본국인 백제가 멸망하는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누구나 자기의 조국은 있기 마련이다. 일개 공장이일지라도 삶을 보듬어 주는 조국이 사라지는 꿈은 예사로울 수가 없다. 뭔가 꺼름칙하다. 이런 마음으로 무슨 일을 진척시키리오. 손을 놓고 가만히 생각한다. 이 불사는 단순한 불사가 아닐 것이라는 강한 예감이 든다. 이때다. 홀연히 법당에서 한 노승과 장사 한 사람이 나오더니, 찰주를 말없이 세우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새 깊은 상념에서 깨어난 아비지는 고개를 가로젖는다. 마침내 백제인이 아닌 순수한 불자로 돌아간다. 참으로 `자비에는 상대하여 싸울 적이 없음 (慈悲無敵)`을 몸소 체득한 보살이다. 너와 나로 나뉘어 다투는 이 땅의 투쟁심들이 부처님의 자비 속에 용해된다면, 그것이 참된 대승의 이상 아니겠는가?

  이렇게 어렵사리 완성된 탑의 규모가 `철반 (鐵盤) 이상의 높이가 42척, 이하는 183척에 이르렀다.`고 하니, 그 엄청난 불사에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물량적인 면만의 평가에 그친다면, 이는 너무나 세속적이다. 온 나라의 구성원이 부처님으로부터 비롯된 삶임을 확인하는 기념비적인 불사가 이루어진 것이다.

  원래부터 부처님나라임을 만방에 드러내는 계기가 드디어 도래한 것이다. 이제 명실상부한 국가불교의 기초가 마련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국가불교의 확립이라는 자장의 원대한 계획이 박차를 가하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드웨어적인 측면이 어느정도 갖추어졌다면, 다음은 이에 걸맞는 소프트웨어의 개발이다. 덩그러니 건물만 있으면 뭐하나? 보기 좋은 전시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자장의 머리속은 백두산의 큰 맥인 산에 문수보살이 상주하고 계심을 헤아리고 있었다. 아직 일반인들은 이름도 모르고 있었지만, 중국이 아닌 우리나라에 오대산이 있어 왔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이 땅의 절박한 마음에 신앙의 불씨를 심으러 오대산을 향하는 자장이다.                                       ㅡ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