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남이 미래다

선심시심

2009-07-15     관리자

병인년이 저물고 87년 정묘년의 새 아침이 밝았다. 이렇듯 흐르는 시간속에서 함께 돌아가는 것이 사람의 삶인 것이다. 태어나면서 머무르고, 머무르면서 변해가고, 변하면서 사라져가는 이 네 모습이 결국 삶의 전부일 것이다.

이 삶의 네 가지 고리가 서로 맞물려 원인이 되기도 하고 결과가 되기도 한다. 태어남과 사라짐을 하나의 시간적 흐름의 선으로 보면, 태어남이 원인이 되어 사라짐의 결과가 있다 하겠지만 이것을 고리의 환상으로 보아 하나의 원 위에 놓아 두면 태어남이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사라짐이 원인이 되어 태어남의 결과가 오는 것이다.

그래서 대승에서는 태어나고 머무르고 변함이 현재의 시간이요 사라짐이 미래가 아닌 과거라 하며, 소승에서는 태어남이 미래이고 머무르고 변하고 사라짐이 현재라 한 것이다. 삶을 단순하게 하나의 선상에 놓았을 때는 이해되지 않는 말일 것이다.

병인년이라는 지난해를 고착해 놓고 보면 정묘년 금년의 태어남이 미래이나, 병인년의 이 시간적 존재는 이미 을축년이라는 재작년의 시간이 과거로 사라졌기에 이 시간이 현재로 존재하게 된것이다.

이렇듯 고리 모양으로 순환하는 것이 시간의 흐름이거늘 이 고리의 어느부분을 잘라 직선으로 그어놓고서 가고 옴을 따져 기쁨이나 슬픔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 삶을 어리석게 하는 것은 아닌가.

정묘년의 새해. 온 천하가 새해의 새 아침이라 하여 즐거워한다. 하지만, 이 새해를 맞는 사람사람의 마음은 다를 것이다. 자라나는 이는 더 먹는 한 살이 즐겁지만 늙어가는 이에게는 더 먹는 한 살이 아니라 줄어가는 한살이 되어 서글픔이 앞설 것이다.

같은 시간 한 순간을 이렇듯 자신의 처지에 따라 똑같은 사실을 달리 느끼게 하는 것이다.여기서 이 늘어난다 줄어든다 하는 생각이 얼마나 망녕된 것인가 하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태어남이 과거의 사실이 아니요, 미래에 오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기 이전에 있었던 과거의 사실이었다 한다면 태어나고 사라짐이 둘이 아니요, 하나의 고리위에 있는 한 사실임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원인이 사라짐이요, 결과가 태어남<因滅果生> 이라 한 말씀이 새삼 진리의 법어임을 느끼게 한다.

삶의 순간순간이 이렇듯 참된 이치의 실현이요, 여여한 법체의 현현 일진대 깨달음의 묘체가 바로 이 순간에 있는 것임을 실감한다.

조선시대 편양선사(鞭羊禪師)의 법통을 이은 월사대사(月師大師 : 1651~1706)의 제자인 설암 추붕(雪巖 秋鵬)선사의 시는 이런 점에서 매우 사사적이다.

진리 찾아 몸 잊기 20년
하루 아침 트인 공 하늘 가 돌다.
허공에 이는 불꽃 三界 불태우고
겁의 바다이는 연기 九泉을 말린다.
그림자 없는 나무 꽃은 난만하고
싹도 트지 않는 가지 열매 동글동글
불사약 찾아 쓸데없음 알겠으니
바로 이 수고로운 삶이 깨우침일세

鑽極忘形 二十年       一朝功透入寥天
虛空發 燔燒三界       劫海生咽涸九泉
無影樹頭花爛熳        不萌枝上果團圓
自知休覓還丹草        卽此勞生大覺仙 

마음속 생각을 서술한다는 시다. 

진리를 찾음에 있어서 자신이 따로없다. 깨달음이 항시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순간의 일이다. 깨달으면 사다리없이 하늘에 오른 상태이다. 원인이 있어 이는 불꽃이 아니기에 허공에 일고 바다에 연기가 솟는다. 이에 삼계를 불사르고 구천의 물을 말린다.

그림자 없는 나무요, 싹이 없는 가지이나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다. 모두가 돈오의 순간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가 현재의 삶 그 자체이지 깨달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큰 깨달음이요, 굳이 신선이란 이름이 있다면 이것이 참다운 신선이다.

사람들은 신선의 묘약을 찾는다하여 법석이지만, 이 묘약은 삶 그 자체에 있는 것이지 따로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새해의 태어남이 미래에 있지만 그것이 현재로 존재할 때는 이미 과거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