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財富觀 (하)

해외 康壇

2009-07-06     관리자

        4. 재부의 처리 방법

우리는 돈이 있어도 목적에 완전히 도달하지는 못한다. 그러면 어떻게 자기의 재부를 처리 할 것인가? 이는 여전히 주된 과제이다. 만약 당신에게 매 달 만원의 수입이 있다면 당신은 당신의 재부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잡아함경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일부분은 자기의 식생활에 쓰고, 두 부분은 사업 경영에 쓰고, 나머지 한 부분은 남겨 두어라. 가난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나는 이 이치를 끌어다가 재부를 어떻게 처리 할 것일까 열 등분으로 나누어 설명하겠다.

10분의 4 : 사업을 경영함

10분의 3 : 가정생활에 씀

10분의 2: 수요에 대비하여저축

10분의 1:  복 짓고 공덕 쌓는 데 씀

大寶積經에서는 재부를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 말해 주고 있는데, 파사익왕을 예로 삼았다. 그의 재부는이미 생활을 위한 계산은 필요 없었다. 그는 재부를 세 가지로 다음과 같이 나누었다.

3분의 1 : 종교 공양에 쓰고

3분의 1: 빈궁한 자를 구제하는 데 쓰고

3분의 1: 국가에 봉헌하는 자원에 씀

열반경에는 재부를 처리하는 방법으로 생활의 수요를 제하고 네가지로 나누었다.

4분의 1: 부모 처자를공양하는데 씀

4분의 1: 노비를 돕는 데 씀

4분의 1:친척과 친구에게 나누어 줌

4분의 1:국가와 사문에 봉헌함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각자 자기의 재부에 대해 역시 자기 자신의 처리 방법이 따로 있을 것이다.

       5. 불교가 인정한 재부

앞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어떤 재부는 불교가 인정하고, 어떤 재부는 불교가 인정하지 않는다. 무엇이 불교가 인정한 재부인가? 불교가 인정한 재부는 다음과 같다.

1) 건강한 신체 : 건강한 신체는 우리들의 재부이다. 몽창(夢窓)국사가 말하기를, [족함을 아는 것이 제일 부유한 것이고, 병이 없는 것이 제일 귀한 것이고 친구와 사이 좋은 것이 제일 좋은 것이고, 열반이 제일 즐거운 것이다 ]라 했다  속담에도, [청산에 머물러 있으면 땔나무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라 했다.

2)생활이 마음과 같음 : 돈이 있어도 번뇌가 많으면 생활이 마음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진정한 재부라 할 수 없고, 크게 부유하고 크게 귀한 것이 아닌 것이다. 만약 생활이 마음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그것은 매우 뜻있는 인생인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생활이 마음과 같아질 수 있을까? 은혜에 감사하고 족함을 아는 것이 제일 부유한 것이다.

3)앞 길이 순조로움 : 인생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평탄하지 못한 운명 속에서 분투하는 것 이라면 진실로 뜻 있고 힘있는 인생인 것이고, 만약 앞길이 순조롭지 못한인생이라도 더욱 많이 노력한다면 뜻있는 사업인 것이다. 만약 앞길이 순조롭다면 이것은 인간 사이의 좋은 인연 덕택이라는 것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떤 사람이 좋은 인과를 가질 수 있고 앞길이 순조로울 수 있다면 그것은 자연 최대의 재부인 것이다.

4)권속의 평안 : 막대한 재산이 있어도 평안하지 못한 사람으로 인해, 우리는 불광산에서 제창해서 매년 봄 평안등회를 거행하는데, 아름답고 번화함은 사람을 평안하게 하여 기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5) 합법적인 재화 : 불교가 완전히 재화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황금은 독사이나, 황금은 역시 법을 널리 펴고 중생을 이롭게 하고 수행하는데 필요한 도구이다. 소위 군자는재물을 취하되 취하는데 도가 있다. 단지 합법적인 재화를 서서 복을 짓고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말하면 말할수록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우리 불교는 합법적인 재부를 찬미해야 하고 재부를 배척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신도가 돈이 많을수록 법을 보호할 힘이 있는 것이다. 불교에 돈이 있어야 부흥할 수 있는 것이다.

6)마음의 근원: 불교에서 제일 좋고 실용적이라고 인정한 재부는 마음의 근원이다. 땅 속의 석유와 석탄은 모두 에너지의 근원이다. 그런데 진정한 자원의 근원은 우리 마음 에너지의 근원이다.

흥일대사는 물질적으로 그렇게 궁핍했지만 괴로움으로 알지 않았고 마하 가섭은 그렇게 고통을 극복하고 수행했지만 줄이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동서고금 불교에는 얼마나 많은 고행하시는 스님과 수행자가 있었던가. 그분들은 그렇게 조금도 소유하지 않았지만 빈궁하다고 생각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음 속 근원적으로 부유함을 누렸기 때문이다.

        6. 가장 궁극적인 재부

마지막으로 나는 여러분들께 우리 불교가 말하는 최고로 귀한 재부를 말하겠다. 그것은 [반야]이다. 금전이 많고 많아도 역시 다할 날이 있다. 우리 중국 속담에, [막대한 재산도 몸에 지닌 기술에는 못 미친다]는 말이 있다. 한가지 기능을 배운 것은 어더한 재부를 가진 것보다도 좋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반야 지혜는 어떤 금전이나 기능보다 귀한 보배이다.

금강경에, [ 만약 어떤 사람이 4구게만이라도 받아가진다면 그 공덕은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칠보로 보시하는 것보다 낫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곧 보물을 보시하는 것이 비록 많아도 결국은 한계가 있고, 법을 보시하는 것은 비록 적어도 그 공덕이 무궁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4구게는 즉 4구의 불법 반야이고, 그것의 공덕은 삼천대천세계의 칠보보다도 낫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슨 이유일까?

어떤사람이 외지에 나가 장사를 했다. 연말이 가까와지자 빨리 집으로 돌아가 해를 보내고 싶었다. 집에 돌아가기 전에 부인에게 줄 선물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길을 걸어가며 보았지만 마땅한 게 없었다. 그런데 길거리에서 노스님 한 분이 곁에 [게송(偈頌)]을 팝니다]라고 쓴 간판을 놓고 앉아 계신 것이 보였다. 그는 노스님께 물었다. [ 어떤 게송을 파는 것입니까?] 노스님은 대답했다. [ 본래 나의 게송은 황금 20냥인데, 보아하니 당신은 인연 있는 사람 같으니 당신이 나에게 게송을 산다면 한 수의 게송에 황금 10냥이면 되겠오.] [어찌 그리 비쌉니까? 10냥의 가치가 있습니까?. 좋습니다. 스님에게서 게송을 사겠습니다.]

노스님은 게송을 말했다. [ 앞으로 세 발자국 가서 생각하고 뒤로는 세 발자국 물러서서 생각하세. 성내는 마음이 일어날 때엔 생각해야 하네. 꺼진 불 아래 성난 불이 제일 길상하네. 단단히 기억해 두시오. 이후에 당신이 만약 분노하고 화가 날 땐 나의 이 게송을 꺼내 읽어 보시오.]

[이 4구의 말이 황금 10냥의 가치가 있다구요? 가치 없습니다. 없다마다요. 스님, 당신은 사람을 크게 속였습니다.]  노스님은 허허 한 번 웃고 말았다. 상인은 상대방이 연로한 출가인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스님과 다투기를 그만 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달하자 마침 한밤중이었다. 문이 잠겨져 있지 않아 한번 미니 곧  열렸다. 부인을 부르려고 생각했으나 부인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침상 밑에 두 켤레의 신발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한 켤레는 여자 것이었고 다른 한 켤레는 남자 것이었다. 그는 [ 이런 몰염치한 사람 같으니라구. 내가 집에 없다고 이런 나쁜 짓을 하다니.] 하고 분노가 치밀어 부엌으로 가서 식칼을 가져와 이 간부와 음부를 죽이려고 했다. 마침 칼을 들고 죽이려 할 때 돌연히 그 노스님이 그에게 판 게송이 생각났다. 그래서 그는 그 게송을 읽기 시작했다.    [앞으로 세 발자국 가서- 생각하고 뒤로 세 발자국 물러서서-생각하고 성내는 마음이 일어날 때엔- 생각해야 하네. 꺼진 불 아래 성난 불이- 제일 길상하네.] 그가 그곳에서 왔다갔다 하며 소리 내어 읽자 그의 부인이 놀라 깨었다. 부인은 남편이 침상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말했다. [ 아이고, 당신은 어찌 이리도 늦게 돌아오셨나요? ] 남편이 노해 말했다. [ 침상에는 아직 어떤 사람이 있을 텐데?] [없어요.] 남편이 신발을 가리키며 책망하여 물었다. [ 아! 오늘이 새해을 맞이하는 날인데 당신이 돌아오지 않아서 당신이 그리워 단란의 길상를 꾀하기 위하여 당신의 신발을 침상 앞에 놓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 남편은 듣고서 큰 소리로 말했다. [ 가치가 있구나. 가치가 있어! 이것은 황금 백냥, 천 냥, 아니 만 냥의 가치가 있구나.]

그러므로 [지혜]는 사람으로 하여금 냉정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게 해 준다. 반야 지혜를 어떻게 재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왜냐하면, 이 [반야]는 값을 다질 수 없는 보물이고, 사람마다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고 개개인에게 없는 것이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반야는 영원한 진리이고 끝없는 자아이다. 반야를 깨달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이것은 무한한 포용력을 갖는 것이다.

반야는 무엇일까? 반야는 空으로 해석될 수 있고, 간단히 설명 하자면 허공은 삼라만상을 포함하는데 공하지 않으면 없는 것이다. 고로, 공하기 때문에 비로소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은 반야를 포용한다는 것은 마치 허공이 만유를 포용하는 것과 같다.

반야는 허공만유와 같은 것이고, 사실 이 [반야재부]는 모두 내마음 속에 있다. 왜냐하면 이 반야가 우리들에게 진리를 증명할 수 있게 해 주고, 정리(情理)를 알게 해 주고, 眞我를 알게해 주며, 영원한 생명을 얻어 증명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반야를 갖는다는 것은 곧 광명을 갖는 것과 같다. 대낮에 보이는 일체는 모두 우리들 것이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