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 된다

보리수 그늘

2009-07-04     관리자
 요새 유행하는 말 중에〈하면된다〉는 게 있다. 정치가에서부터 배우, 가수, 운동선수, 대학교수에 이르기 까지 하면 된다는 말은 시대의 절대적 행동윤리처럼 배어 있는 듯하고 낙도 어린이를 가르치는 교사, 행상으로 저축 상을 받는 부녀자, 새마을운동 지도자 같은 분들도 브라운관을 통해 하면 된다는 정신을 강조한다. 신문, 잡지 같은 인쇄매체에서도 주먹만한 글자로 강조해대니 어느덧〈하면 된다〉는 의지에 전 국민이 들떠 있는 느낌이다.

 나는 수삼 년 전부터 이 말을 사납게 듣고 있다. 하면 된다? 정말 하면 될까?

 사람 사는 마을의 일이 그렇게 수월할 순 없을 것이다. 한다고 해도 끝내는 이루어지지 않는 게 인생이고 이룬다 한들 그건 여전히 불안한 환상에 불과할 것이다. 사람이란 살아가는 과정의 고통ㅡ 과정이기 때문에 때로는 아름다울 수도 있는 고통의 바다를 항해하는 작은 선박에 지나지 않는다. 고통의 바다를 항해하는 노정에서 때때로 정박하는 인정의 항구로 해서 항해의 에너지를 이따금 공급받을 뿐인 작은 선박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는 맹목적인 목적의식은 자칫 사람의 인정을 눈멀게 하고 이웃의 아픔을 쉽게 외면하게 하며 이기적 독선의 노예가 되게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요즈음의〈하면 된다〉는 말에는 또한 제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무분별한 성취욕을 부채질하는 뉘앙스가 있어 더욱 걱정스럽다, 해서는 안 될 일이 무수히 많고 해야 할 일을 바로 고르기가 어렵기 짝이 없는 죽살잇 길에서 무엇이든 하면 된다는 무분별한 관용어는 욕망의 포로들로 득실거리는 이 세태에 편승하는 말로나 들리는 것이다. 그래서 땅값을 아파트값을 농작물 가격을 마음대로 주물러 대려들고 이웃을, 국민을, 민족을, 종교를 우롱하고 왜곡하는 짓도 스스럼없이 해치우게 된다.

 산 사람이면 무언가 해야 한다는 건 사실이다. 산다는 게 바로 행동이며 행동은 산 사람에게 주어진 운명의 하나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사람의 행동은 분별이 있어야 한다. 허위와 불의에서 바름과 참됨을 찾아내고, 이기적 욕망과 사악함에서 자비와 선량함을 분별해 내어야 한다 짐승과는 달리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께 조화되어야 하기 때문에 각자가 참되고 바르며 선하고 자비로운 행동하기를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때 그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빼앗으려 들고 그들의 직분과 생활에 불안을 느끼게 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허황된 욕망의 문화, 독선의 문화를 정당화 하게 하며 마침내는 자신의 불행을 재촉하기에 이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 스팡이라는 한 신통치 않은 가수가 있었는데 그는 제3바리톤을 노래했다고 한다. 어느 날 지휘자가 가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에게 햄리트의 유령노래를 부탁했다. 그건 베이스로 해야 하는 노래였다. 그는 분별없는 지휘자의 명령을 분별없이 받아들여 눈 내리는 겨울언덕을 걸어 다녔는데 그래야 감기가 들고 감기가 들어야 베이스를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고 한다. 이래가지고 오페라가 제대로 될리 있으랴?

 무분별한 지휘자가 너무 많은 세상이고 병들기 위해 눈 내린 언덕길을 걸어 다니는 어처구니없는 가수 또한 너무도 많은 세상이다. 눈앞의 성취욕을 달래기 위해 눈먼 사람들이다.

 아이들의 놀이터에서 아이들 모르게 주머니 가득 유리조각을 줍다가 경찰관에게 도둑으로 의심을 받았다는 어느 교육자의 숨은 자비심이 그립고, 현실적 안녕을 저버린 채 끝끝내 지구는 둥글다는 참을 말하다 뜻을 이루지도 못하고 고초를 겪어야 했던 갈릴레오의 참된 행동이 그리운 시절이다. 가려야 할 일이 많고 노력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일 또한 많은 세상에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의 삶이란 건 그래서 가히 고통의 바다라 할 것이다. 오늘의 신문사에서도 도처의 무분별한 살의와 허위를 만난다. 동정이가지 않는 죄악을 보며 하면 된다니? 하고 반문한다.

 하면 된다ㅡ . 힘주어 꽂아대는 이 말이 아내가 남편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어버이가 자식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요즈음처럼 속삭여져도 정말 괜찮은 것일까? 하면 된다? 【佛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