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산이 있기에

빛의 샘/일하는 기쁨

2007-05-25     관리자

                                                                                     

  한사코 산에 올라그는 사람보고 그 위험한 산에 무어 먹을 것 있다고 힘들게 올라가야만 하느냐 물어보면 거기 산이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많은 산악인들이 어제도 희생을 당한 것을 알지만 그들은 항상 즐거운 얼굴로 늘 산행을 준비한다.

  그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고비마다 자신의 인내력과 싸우면서 투지를 불사르고 인생의 희망과 이상을 목적한 산에 걸며 나아간다 .  그런데 정작 그들은 거기에서 어떠 기쁨을 갖지 않는다.  모든 게 당연하다는 마음 뿐이다.  기쁨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산이 있기 때문이리라.

  나는 감히 일하는기쁨을 말할 수가 있을까 ?  학교 교사생활 26년째에 접어 들고 학생들에게 훈화조의 말을 한 적 있지만 본 지를 통해서는 정말 용기나지 않는다.  공자님 앞에서 한 문장을 써 보려는 것같다.  그래서 나의 글은 먼 훗날로 미루기로 하고 다음의 글로 대신한다.

  혜초 스님.  그 분은 서기 704년 신라에 태어 나셨다.  그러나 그 분의 구도 행각은 오늘날에 와서 지금 불자들이 기쁨으로 살아 있음을 알게 된다.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 인류에게 무한한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신 그 곳을 찾아 구도의 여행을 하셨다.  그의 나이 열여섯에 중국 광주에서 불교를 공부하다가 스물에 바닷길로 인도로 떠나셨다.  동. 서. 남. 북 중 다섯의 천축국을 비롯하여 이름들도 생소한 인도의 동북 서북 히말리야 근처 캐시미르의 많은 나라들을 찾아 다니셨고 다시 험한 사막과 산길로 중국으로 돌아 오셨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그 때 당시의 지리적인 상식으로 어떻게 인도로 향했고, 그 넓은 인도대륙을 종횡 무진 누볐으며 캐시미르를 넘어 중국  서부의 변방을 거칠 수 있었는지 놀라울 뿐이다.  그렇게 확신에 찬 지리적 신념과 그 험난한 여행길. 가는 곳마다 언어가 다르고 풍습이 다른데 끼니는 어떻게 해결 했으며 잠은 어디서 잤는 지, 혹 아픈 적도 없고 어떻게 건강을 유지했는 지, 나무 한 그루 쉴 그늘이 없고 물 한 모금 나오는 샘이 없는 산길을 가도 가도 마을도 없는 그러한 길을 과연 이 길이 올바른 길인지는 어떻게 알았는지 참 불가사의였다.

  하루 이틀의 여행도 아니고 무려 4년의 기간이었다.  4년이었다면 초인적인 행각이요, 지금 같으면 모들 걸 갖추고도 4년이란 우리에겐 어림없는 기간이다.  혜초 스님의 업적은 불교계의 일이기 보다 우리 모두의 경이요 기쁨이다.  그러나 혜초스님에게는 오로지 구도뿐이 었으리라.  그 어려운 구도의 행각이 오늘의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과 가르침을 주는 하나의 기쁨으로 남아 있다.

  거의 삼십여년 전 아침 밥을 먹을 때 쯤 하여 방송국 서유기를 재미있게 들은 적이 있다.  성우 장민호 선생님의 일인극이었던 것 같다.  들으면서 뭐 저렇게 황당무계할까 하고  웃던 일이 생각난다.  그러나 이제 다시 생각해 보니 반드시 황당무계하다고만 생각되는 것이 아니다.

  불법을 구하러 가는 현장 법사의 이야기인데 장안을 떠나 티벳의 변방을 한참을 돌아 인도로 향하는 길 이었다. 도중에 그 어렵고 험난한 길을 홀로 가면서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하였으면서 서유기에 저렇게 표현되었을가 생각한다.  서유기에 나오는 온갖 싸움은 바로 자기와의 싸움의 표현인 것 같다.  결국 현장 법사의 업적은 오늘날 한국 불교의 큰 밑걸음이 아닐까.

  이 외에도 우리 인류를 위한 많은 업적이 있었음을 안다.  콜롬부스, 에디슨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들이 일하는 기쁨을 말없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

  일하는 기쁨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지만 그 일이 자기를 존재케 해준다.  일할 수 있다는 것에서 자기의 존재가 확인되는 것이다.  자기를 위하여서도 우리는 뭔가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