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과 심리치료 - 자비와 지혜 배양 컨퍼런스

새 불교 새 물결

2009-07-02     관리자
5월 첫째 주 주말(5월 1~2일) 미국 보스턴의 하버드 의대 평생교육원에서 캠브리지 정신과 의사연합의 주최로 ‘명상과 심리치료’(부제: 자비와 지혜 배양)를 주제로 달라이 라마를 모신 컨퍼런스가 있었다. 이 컨퍼런스는 주로 심리치료에 미치는 명상수행의 효과에 관심 있는 정신과 의사들과 심리치료자들을 중심으로 2년에 한 번씩 열리는데 올해는 달라이 라마를 모시고 특별히 3년 전부터 준비해 온 행사다.
이 행사를 주관해 온 주최 측에 의하면 미국 심리치료사에 전환점을 가져오는 역사적 행사라고 한다. 한국에서의 강의 일정과 경비 등, 이런 저런 이유로 컨퍼런스에 참석하는 것을 망설였었다. 그러나 발표자들 가운데는 평소에 관심 있었던 사람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고 특히 뇌과학과 명상분야의 연구를 일찍부터 시작해온 허버트 벤슨(Herbert Benson)과 현재 이 분야에 두드러진 연구결과물들을 내놓고 있는 리처드 데이비슨(Richard Davidson)도 발표한다. 게다가 1,200명이나 되는 심리치료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자리인지라 그 분위기를 직접 느껴보고 싶어서 10일간의 일정으로 서운사 초파일 행사 겸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2008년을 기준으로 미국의 인구는 3억이 조금 넘는다. 불교 명상수행자 잭 콘필드에 의하면 그 가운데 불교 수행자의 숫자는 5백만 명이고 요가수행자의 숫자는 천만 명이라고 한다. 우리 한국에 비하면 미국의 5백만 불자는 수적으로는 작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그들이 해마다 쏟아내고 있는 불교관련 논문들과 저서들, 그 외 수행성과물의 질적 내용들을 생각하면 이미 그 모두를 소화해 내기에는 너무 방대함을 느낀다.

명상요법에 대한 관심과 기대
아무튼 정신치료자들 사이에 명상의 열기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정신치료에 미치는 명상수행의 가치나 의미를 알고 적용하는 치료자들은 여전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설사 치료자 자신이 그 가치를 알고 직접 수련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내담자들에게 공개적으로 명상수행을 권유하는 데는 아직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한마디로 아직은 명상수행의 치료효과가 정신치료의 주류에 속하지는 못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번 행사를 기점으로 명상요법이 심리치료의 주류로 진입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확신을 바탕으로 그들은 이번 행사를 치르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특히 컨퍼런스 참가비만 정신과 의사들은 475달러, 심리치료자와 기타 관련자들은 395달러였는데도 발표된 지 3주 만에 1,200석이 모두 마감되었다. 늦게 신청하여 대기자 명단에 올라 있다가 취소자가 없어서 결국 참석하지 못한 사람이 수두룩했던 것을 보면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참고로 참가비는 작년과 3년 전에도 같은 가격이었으니 달라이 라마가 참석한다는 이유로 더 많이 받은 것은 아님을 밝혀둔다.)
컨퍼런스는 아침 8시부터 시작되어 오후 5시까지 진행되었다. 생각보다 낯익은 얼굴들이 여럿 보여서 반가웠고, 그들과 점심을 함께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듣는 것도 적지 않은 즐거움이었다. 첫 날은 10여 명의 치료자들과 심리학 교수들이 달라이 라마에게 질문하고 달라이 라마가 답변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질문의 주제는 오전 3시간은 자비심, 오후 3시간은 지혜에 관한 것이었다.
이튿날에는 달라이 라마 없이 7명의 발표가 있었다. 그 가운데는 앞에서 소개했던 허버트 벤슨과 리처드 데이비슨의 발표도 있었고, 스트레스 감소 프로그램으로 우리 한국에도 잘 알려진 존 카밧진(Jon Kabat-Zinn)도 있었다. 나는 이틀 내내 내게 주어진 끝없는 배움과 체험의 인연들에 대한 환희심과 감사함으로 무리한 일정에서 오는 피곤함을 잊을 수가 있었다. 누가 나에게 컨퍼런스 분위기가 어떠했었는지 묻는다면 그날 점심을 함께 했던 그룹 일원이 달라이 라마를 록스타(Rock Star)에 비유했던 것으로 대신하고 싶다. 그의 비유를 확인차원에서 어떤 의미냐고 물었더니, 예상했던 대로 달라이 라마의 진솔함과 자연스러움이 모든 청중을 흥분과 기쁨으로 가득하게 만들었고 그 속에서 청중은 서로 한마음이 되었다는 것이다.

행복도 훈련과 반복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비록 이틀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앞으로 나 자신의 수행과 연구를 위한 일종의 방향을 제시받았다고 느낄 만큼 강한 체험과 영감의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어떤 형태로든 내가 느끼고 체험한 것들을 지금, 이 지면을 통해서 월간 「불광」의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데 막상 표현을 하려고 하면,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될 지 막막하고 답답해질 뿐,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때의 그 감동이 아직도 내 안에 생생하게 살아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모두 말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한 가지도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것인지, 그 이유는 모르겠다.
아무튼 나누고 싶은 말들이 수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리처드 데이비슨이 뇌과학 연구결과를 통해서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즉 행복과 같은 심리적 특성들도 스포츠나 다른 재능들과 마찬가지로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골프를 치거나 바이올린 연주가 연습 없이 그냥 하루아침에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니듯이 우리가 행복해지고 편안해지기 위해서도 긴 시간의 훈련과 반복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운동선수가 수없이 좌절하고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프로가 되어가듯이 깨달음을 얻고 행복해지고자 하는 우리들도 그런 과정의 시간들이 필요한 것이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자비와 지혜의 관계다. 원효 스님은 자비와 지혜가 새의 양 날개, 수레의 두 바퀴와 같다고 했고, 육조 혜능대사는 ‘자비=지혜’라고 했는데 달라이 라마는 자비는 지혜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존 카밧진이 그의 부인과 함께 부모의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 명상수행이 자녀교육과 성장·잠재력 개발·건강한 부모자녀 관계에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가를 발표했는데 그 또한 인상적이었다.
아무튼 이번 컨퍼런스는 불교와 현대과학의 만남이 어떻게 우리들의 정신적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지, 또 경쟁과 갈등의 인간관계를 협력과 상호보완의 관계로 전환시키고,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중심의 사고에서 자연과 인간의 공존· 연기적 관계의 실천을 강조하고 설득하는 중요한 장이었다. 특히 사람들이 삶을 행복하고 기쁘게 살 수 있도록 그 구체적 방법을 가르치는, 즉 지혜와 자비심을 배양하는 교육시스템이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