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빠사나의 세계화를 주도한 빤디따라마 명상센터

세계의 수행처 / 미얀마 빤디따라마 명상센터 1

2009-07-02     관리자
_______ 세계는 하나로 열려 있다. 수행법 또한 어느 것 하나만이 유일하거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출가자는 물론 일반 재가불자들을 위해 열려 있는 세계의 수행처들을 안내하면서, 다양한 불교수행법을 소개하는 이 난에는 지난 1월호부터 미얀마의 대표적인 수행처인 파욱선원과 쉐우민센터, 마하시센터를 일묵 스님, 주기원 선생님, 일창 스님이 소개해주셨다. 이어서 수단따 님이 빤디따라마 명상센터를 2회에 걸쳐 소개해주실 것이며, 앞으로 인도, 태국, 티벳, 중국, 일본 그리고 미국과 유럽에 있는 수행처들을 안내해갈 예정이다. <편집자 주> _______


테라와다(상좌부) 불교, 미얀마 빤디따라마 명상센터의 원장이신 우 빤디따 스님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0년 4월이다. 처음 위빠사나 수행을 만난 것은 스님을 뵙기 바로 석 달 전, 그 당시 서울 안암동에 있던 보리수 선원을 찾게 되면서부터다. 마음의 번뇌가 고통스러워 참선도, 염불도 열심히 해 보았지만 조건만 주어지면 일어나는 화가 나를 계속해서 고통스럽게 했다.
『법구경』을 읽으면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그 자리에서 수다원, 사다함 등의 성인이 되거나 부처님께 제자들이 수행 주제를 받아 숲 속에서 수행을 한 후 도(道)와 과(果)의 깨달음을 구하는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그 당시 나는 내가 하고 있던 수행이 부처님이 경전에서 말씀하시는 내용과 일치되지 않는 것이 의문이었고, 점차 번뇌가 제거되어 성인이 되는 수행법도 궁금했다. 성인은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존재라 여겼기에 멀기만 했고 오직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수행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 그래서 다니던 사찰과 도반을 뒤로하고, 하고 있던 수행도 내려놓았다. 오직 부처님께서 설하신 방법대로 수행하여 부처님과 같은 지혜를 얻고 모든 번뇌가 사라지는 열반에 이르기를 매일 간절하게 서원을 세웠다.
마침 남양주 봉인사에서 ‘우 빤디따 스님의 초청법회’가 열흘 동안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참여하여 스님을 처음 뵙게 되었다. 스님의 첫 인상은, 무표정한 모습이 마치 큰 바위산처럼 느껴졌다. 열흘의 수행기간 동안 위빠사나 수행 초보자인 내가 할 일은 지금까지 해 왔던 모든 수행을 내려놓고 스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열심히 알아차림만을 하는 것이었다. 열심히 수행했기에 행복한 마음이 생겨났고 수행 결과도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를 조금이라도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었다.

▲ 우 빤디따 스님

자비와 지혜를 갖추신 살아 있는 스승, 우 빤디따 스님
우 빤디따 스님은 마하시 센터의 초대 원장이셨던 저명한 마하시 스님의 제자다. 1982년 마하시 스님께서 입적하신 후에 뒤를 이어 2대 원장이 되셨다. 스님은 스승인 마하시 스님께서 계율을 중시하셨던 것처럼, “계율은 불교의 목숨이다”라며 상가(승가)를 잘 지키는 방법은 계율을 깨끗하게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다.
나는 스님을 뵈면서 계율은 속박당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거친 번뇌를 제거하여 선정의 기초가 되는 것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처럼 부처님께서 정하신 계율은 우리의 탐욕을 제거하고 마음을 정화시킨다. 오히려 계율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면서 계율을 지키지 않고 방만하게 사는 것은 거칠음, 들뜸, 무지, 탐욕 등의 번뇌들을 생겨나게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계율로 거친 번뇌를 제거하고, 선정으로 중간 번뇌를 제거하며, 지혜로써 미세한 번뇌를 제거하는 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설하신 바이다.
1990년 스님께서는 뜻있는 보시자들의 큰 보시로 양곤에 빤디따라마 국제 명상센터를 세우셨다. 현재 빤디따라마 명상센터는 양곤, 바고, 메묘, 몰라먀잉 등 미얀마 여러 곳에 있으며, 인도, 네팔, 한국, 싱가포르, 호주, 캐나다 등 세계 열일곱 곳에 분원이 있다. 그 이외에도 스님의 가르침을 받은 출가자와 재가 제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불법을 펼치고 있다. 이와 같이 위빠사나 해외전수는 마하시 스님에 의해 시작되었으나, 그 뒤를 이은 본격적인 활동은 우 빤디따 스님에 의해 계속 되고 있다. 스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든여덟의 노구를 이끌고 해외로 수행지도를 다니신다. 연세로 인한 건강을 염려하여 조금이라도 쉬시는 게 어떠하시냐고 말씀드릴 때면, “죽는 순간까지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나의 의무다.”라고 말씀하신다.
스님께서는 매일 새벽 세 시면 일어나신다. 두 시간 동안 좌선수행을 하시고, 다섯 시면 식당에 오셔서 알아차림을 하며 음식을 먹고 있는 수행자들을 모두 둘러보신 후 마지막으로 식사를 드신다. 나는 스님께서 수행면담, 법문, 후학지도 등 밤늦게까지 한 순간도 시간을 헛되이 쓰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아주 짧은 시간의 여유라도 생기면 경전을 보시거나, 차 안에서도 제자들에게 법을 가르치는 것을 보았다. 한국에 수행지도를 위해 오셨을 때도 여행을 권유드리면, “내 마음 안의 여행(정신과 물질의 관찰-수행)도 아직 마치지 못했다”고 말씀하신다.
▲ 공양 준비를 하는 자원봉사자
▲ 우 빤디따 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는 수행자들












테라와다 불교의 세 가지 특징
처음 테라와다 불교를 접하면서 가장 크게 마음에 와 닿았던 세 부분이 있다.
▲ 숙소로 돌아가는 수행자
첫째, 모든 스님은 자신의 견해가 아닌 부처님의 말씀인 삼장(경·율·론)의 경전을 들어 법문을 하시는 것이다. 그렇게 하심으로 자신의 잘못된 견해가 들어설 자리가 없고, 자신의 수행과 경전이 맞아 떨어지기에 신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 보시물의 청정성이다. 주고받는 보시가 깨끗하게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칫솔 하나라도 보시자가 스님께 말씀드리지 않고 스님 방에 두고 가면 스님께서는 그것을 건드리지 않고 다른 이들을 시켜 치우게 하거나 그 자리에 그대로 놓아둔다. 올리는 모든 공양물은 스님의 터치(손으로 가볍게 공양물을 건드려 보시 받음을 확인함)가 있어야만 보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한 보시 올려진 돈은 스님의 시자(까삐야)가 받아서 쟁반에 올려 드리면, 돈에 직접 손을 대지 않고 아시기만 한 후 시자들이 가지고 있다가 스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필요한 곳에 적절히 사용한다.
보시금은 보시한 사람의 선업이 더 커지도록 주로 불사하는 곳에 쓰인다. 보시물은 스님께 보시하는 것과 상가에 보시하는 것으로 구분된다. 상가에 보시할 경우 이름과 금액을 밝히고 어떤 곳에 쓰이길 바라는지 말하면 바라는 곳에만 사용된다. 쓰인 후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영수증도 보내준다. 이러한 보시방법을 통해 보시를 하는 사람의 마음에 신심과 기쁨이 일면서 선업을 더욱 빛나게 한다.
셋째, 상가와 운영은 구분되어져 있다. 상가는 법문과 경전공부, 수행 지도, 후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며, 법을 원하는 국내외 모든 곳에 수행과 법을 편다. 운영은 운영진들이 상가와 관련한 일들을 스님께 보고하고 허락을 받아 이끌어간다. 운영진과 자원봉사자들은 한가한 시간에 쟈스민 꽃으로 목걸이를 만들어 내다팔기도 하고 농사지은 것 중 남는 것은 시장에 팔아 상가에 보탬을 주기도 한다.

- 다음 호에서는 빤디따라마 명상센터 소개와 아울러 수행법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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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빤디따(U. Pandita) 사야도 _ 1921년 미얀마의 수도인 양곤에서 출생. 7세에 사원교육을 받았고 12세에 출가하여 20세에 구족계를 받고 비구가 되었다. 1950년 마하시 사야도의 지도하에 위빠사나를 수행하였으며, 여러 스승 아래서 본격적인 교리 연구를 하여 1951년 실시된 법사(담마짜리야) 시험에 합격하였다. 양곤에서 열린 불교 제6차 결집 때(1954~1956) 경전의 교정을 맡아보았다. 이후 마하시 센터 분원에서 수행을 지도하다가 1982년 마하시 수행센터의 2대 원장이 되었으며, 1990년 빤디따라마 위빠사나 명상센터를 건립했다. 위빠사나 수행의 대가인 디파 마, 조셉 골드스타인, 잭 콘필드 등 수천 명의 명상 수행자를 지도했으며, 미국, 유럽, 호주뿐만 아니라 한국 등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도 수행을 지도하고 있다. 또한 미얀마 정부로부터 ‘대명상 스승’의 명칭을 수여받았다. 국내 번역서로는 『위빠싸나 수행의 길』 『바로 이번 생에』 『한여름에 내린 눈』 『평화로운 행복으로 가는 길』 등이 있다.

수단따(본명 손승효) _ 1951년생으로 일찍이 불교에 입문하여 십수년간 염불선, 참선수행. 2000년 위빠사나 수행을 시작하고 우 빤디따 스님께 수행을 지도 받기 시작했으며, ‘수행의 노력으로 고귀한 길에 이르는 이’라는 뜻의 ‘수단따’라는 법명을 받았다. 현재 빤디따라마 서울 위빠사나 명상센터(http://panditarama.com) 선원장으로서 수행 지도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