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미술] 대자대비(大慈大悲) 관세음보살.

신앙과 미술

2009-07-02     유근자

 

▲ 그림1>> 석굴암11면관음보살상, 통일신라(751년), 높이 244cm, 국보 24호,경북 경주 석굴암

중생의 어머니,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상징하는 보살로 우리에게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로 익숙한데, 어느 포교사는 이것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CM송이라고 법회에서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만큼 우리에게 친근한 보살이 바로 관세음보살이다.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는[上求菩提 下化衆生] 역할을 강조한 대승불교의 꽃인 관세음보살은, 다른 보살과 달리 여러 종류가 있다. 『법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에서는 중생이 바라는 바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이 무려 33가지로 나타난다. 33가지의 모습 가운데 가장 우리에게 익숙한 성관음(聖觀音, 그림 2),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다양한 설법 모습을 상징하는 11개의 얼굴을 가진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그림 1), 천개의 눈과 천개의 손을 가진 천수관음(千手觀音, 그림3), 중생의 불안을 없애준다는 오색실로 만든 새끼줄을 들고 있는 불공견삭관음(不空絹索觀音), 불법이 번뇌를 깨뜨리고 널리 전파되는 것을 상징하는 윤보(輪寶)와 소원한 바를 다 성취케 하는 여의보주(如意寶珠)를 들고 있는 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 머리에 말머리를 얹고 있는 마두관음(馬頭觀音) 등이 유명하다.
관세음보살의 산스크리트 명칭은 ‘아바로키테슈바라(Avalokitesvara)’인데 이것을 뜻으로 번역하면 ‘관자재(觀自在)’가 된다. 여러 이름 가운데 관자재보살과 관세음보살 두 가지가 가장 널리 사용되는데, 줄여서 관음이라 한다. 관세음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핀다는 뜻이며, 관자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자재롭게 관조(觀照)하여 보살핀다는 의미이다.
관음보살은 대자비의 성자(大悲聖者), 고난을 벗어나게 해 주시는 분(救護苦難者), 두려움을 없애주고 평화를 주는 이(施無畏者), 원만하여 통하지 않음이 없는 큰 사람(圓通大師) 등으로도 불린다. 이 때문에 관음보살을 모신 법당을 우리는 원통전(圓通殿) 또는 관음전이라 한다.

 

 

▲ 그림2>> 관음보살상, 삼국시대(7세기), 서울 성북구 삼양동 출토, 높이 20.7cm, 국보 127호, 국립중앙박물관

관음보살은 어디에 계실까?
관음보살은 다른 보살과 구분되는 특징이 있는데 머리에 쓴 보관(寶冠) 속의 아미타불과 손에 든 정병(淨甁)과 연꽃이 그것이다. 보관 속에 아미타불을 표현한 것은 관음보살이 아미타불을 도와 수행자를 극락으로 맞아들여 진실한 이치를 깨닫게 하는 역할 때문이고, 손에 든 정병은 중생들의 고통이나 목마름을 없애준다는 감로(甘露)가 든 물병을 상징하기 때문이다(그림 2).
우리나라의 관음성지는 대부분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다. 3대 관음성지인 동해 양양의 낙산사, 서해 강화의 보문사, 남해의 보리암 등이 그것이다. 왜 관음보살이 머무르는 곳은 바닷가일까? 그 단서는 『화엄경』「입법계품」에 나타난다.
선재동자는 53명의 선지식을 찾아 마음의 여행을 떠났다. 안주 장자로부터 안내를 받아 28번째의 선지식으로 관음보살을 만나게 되는데, 이때 관음보살은 아름다운 꽃과 나무 그리고 바위로 장엄된 보타락가산(Potalaka)이라는 바닷가의 벼랑 위에 앉아서 물에 비친 달빛을 바라보며 선재동자에게 법을 설했다. 이것을 미술로 표현한 것이 고려 때 많이 그려진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이다(그림 3).

 

 

 

 

 

 

 

 

 

 

 

 

 

 

 

 

▲ 그림3>> 수월관음도, 고려, 비단에 채색, 98.4×47.8cm, Freer Gallery of Art, Smithsonian Institution, U.S.A

달빛 아래 보타락가산 바닷가에서 선재동자에게 설법하는 관음보살
고려의 걸작 수월관음도 속으로 여행을 떠나 보자. 여기에서 눈에 띄는 것은 관음보살의 시선이 머무르는 왼발치에 선재동자가 허리를 굽히고 합장한 채 머리를 들어 관음보살에게 법을 구하고 있다. 갈증을 달래줄 감로법(甘露法)을 얻고자 하는 그 간절한 마음이 선재동자의 자세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시선을 관음보살의 오른손 근처의 바위 위에 놓인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으로 옮겨보자.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의 정병에는 연꽃이 꽂혀있는데 고려 불화 속의 정병에는 왜 버들가지가 등장하게 되었을까? 이것은 관음보살이 갖는 성격 가운데 하나인 치병(治病)과 관련이 있다.
버드나무와 관음보살을 함께 언급하고 있는 경전은 『청관음보살소복독해다라니주경(請觀音菩薩消伏毒陀羅尼呪經』이다. 이 경전에는 부처님 당시 바이샬리 국에 역병이 돌자, 부처님께서 관음보살에게 ‘버드나무 가지와 깨끗한 물’을 바치도록 하고 관음보살의 이름을 부르게 해 역병을 물리쳤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것은 바로 모든 어려움을 구제한다는 관음보살의 제난구제(諸難救濟)의 성격을 잘 드러내 준다. 손에 버들가지를 든 관음보살을 양류관음(楊柳觀音)이라고 하는데, 고려불화 속 수월관음도에는 이 버들가지가 정병에 꽂혀 있어 고려적인 독특한 모습을 창출했다.
관음보살의 뒤쪽에 있는 청죽(靑竹)은 『삼국유사』「탑상편」의 낙산사 창건 설화와 연관 있어 보인다. 의상 대사가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이 낙산의 굴 속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이곳에서 목욕재계하고 머물렀는데, 관음보살의 진신이 나타나 “앉은 자리 위 산꼭대기에 대나무 한 쌍이 솟아날 터이니 바로 그곳에 전각을 짓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남겼다고 한다. 의상 대사가 굴 속에서 나오니 땅에서 대나무가 솟아났고 이 자리에 법당을 지었다. 이 절이 바로 낙산사이다.

 

 

 

 

 

 

 

 

 

 

 

 

 

 

 

 

▲ 그림4>> 천수관음상, 고려(10~11세기), 높이 58cm, 프랑스 기메미술관

천수천안(千手千眼)으로 중생을 보살피는 천수관음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은 오늘날 불자들이 가장 많이 독송하는 『천수경』에 등장하는 주인공으로 여러 이름으로 불리지만 천수관음(千手觀音)이 가장 친근하다.
통일신라 경덕왕(742년~765년 재위) 때 한기리에 사는 희명이라는 여자아이가 다섯 살 때 갑자기 눈이 멀었다. 하루는 어머니가 눈먼 아이를 안고 분황사로 가서 천 개의 손을 가진 천수관음상 앞에서 아이를 시켜 노래를 지어 부르게 했더니, 아이가 두 눈을 뜨게 되었다는 설화가 『삼국유사』에 전하고 있다.
천수관음은 천 개의 손과 그 손 각각에 눈을 갖춘 형태로 표현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42수만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합장한 두 손을 제외한 40수는 각각 육도윤회하는 25종류의 중생을 뜻한다. 즉 이것은 40×25=1,000이 되니 결국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천수관음을 42수로만 표현하는 아이디어를 발휘한 것이다(그림 4).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이 아닌 두 눈과 두 손만 가진 우리가 마음의 눈을 뜬다면, 바로 주위의 모든 분들에게 천수관음으로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천수관음상 앞에서 오늘 아침 다져보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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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자 _ 덕성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박사과정을 이수했다. 「통일신라 약사불상의 연구」로 석사학위를, 「간다라 불전도상(佛傳圖像)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와 문화예술대학원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사찰문화재보존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