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寺의 향기] 승보종찰 조계산 송광사

고사의 향기

2009-07-01     관리자

백리길 송광사 바위와 꽃 속으로 오다가며
객(客)이 와보니 고요한 절 풍경 한가로운데
스님 누워있는 죽루(竹樓)는 푸르기만 하다.
이 산천은 내 꿈에서 보는 지경인가.
풍경소리 한 밤에 은은히 들리고 내일 아침 떠나고자 하매
정은 넘쳐 호계(虎溪)의 웃음이런가.

아마도 이것은 송광사를 두고 읊으신 이수광(李晬光)님의 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이곳을 찾는 모든 순례자들의 공통된 마음이리라.
전라남도 승주군(昇州君) 송광면에 위치한 조계산, 송광산 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산은 덕유산, 추월산, 무등산과 더불어 호남의 명산중의 하나로 꼽힌다.
그 산 주변에는 수많은 명찰과 암자가 산재해 있고 경사가 가파른 산의 정상, 연산봉은 송광산 일대를 병풍처럼 둘러서 가히 절경을 이루고 있다.
삼보사찰(三寶寺刹) 중의 하나로 승보종찰(僧寶宗刹) 이라고 불리우는 유서 깊은 고사(古寺) 송광사.
송광사가 정확히 언제 초창(初創)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신빙할 만한 자료는 없으나 송광사에 전해 내려오는 <松廣寺誌>에 의하면 신라 말 혜린(慧璘) 선사가 사찰을 세우기 위해 적소를 찾던 중, 서운(瑞運)이 가득 뻗어있는 고요한 곳에 이르러 맑은 시내를 거슬러 올라가 기반을 닦으셨다. 이윽고 그 곳에 절을 세우니 교룡(蛟龍)이 뛰는 듯하고 풀포기도 나는 듯 하여 장려(壯麗)를 이루었다 한다. 이에 산명을 송광이라 하고 사호(寺號)를 길상(吉祥)이라 하였는데 기록에는 대중(大衆)의 수효가 약 30여명에 불과한 소규모의 사찰로 되어있다.
이렇듯 소규모의 사찰 송광사가 오늘날 이처럼 유명한 대찰(大刹)이 된 데에는 고려 명종 27년(1197년) 지눌 보조국사께서 기울어 가던 고려불교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정혜결사운동’ (定慧結社運動)의 도량으로 이곳을 선택, 사원의 확충과 함께 사호를 수선사(修禪社)라 고쳐 부르고 당시의 여러 불교사상을 재정리 선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 선양하시고 쇠퇴일로의 고려불교를 이곳에서 중흥시켜 오셨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로부터 대를 이으신 진각, 청진국사 등 16국사를 비롯 단일사찰로써는 유례가 없는, 헤아릴 수 없는 고승들이 수선사의 정신을 이어 우리나라 정신계, 사상계를 이끌어 옴으로써 이조 초부터는 명실공히 ‘승보종찰’이라는 지위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고려 말부터 강하게 불기 시작한 배불숭유(排佛崇儒)의 조류로 한때나마 이 명찰의 기운이 쇠퇴하는 듯 했으나 조선조 서산대사의 동학(同學), 부휴선수화상(浮休善修和尙)과 그의 문하생들의 직접. 간접적인 요람이 됨으로서 승보종찰의 면모를 과시했다.
이러한 전통은 물론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정혜사 개창의 전통에 힘입은 바 크지만 최근까지도 효봉스님, 구산스님을 비롯하여 거승(巨僧)들을 배출한데서 대가람의 지위를 굳히게 되었다.
송광사는 신라 말 창건 이후 오늘날까지 대략 여덟 차례의 중창을 거치는 동안 임진왜란, 6.25 사변 등 크고 작은 역사의 운명과 더불어 사찰의 많은 부분이 소실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그때마다 많은 스님들의 원력에 힘입어 복원이 됨으로써 옛 고승들의 체취가 도량 곳곳에 남아있어 대가람의 면모를 유지해 오고 있다.
특히 1983년 부임하신 현재의 현호 주지스님께서는 108평이나 되는 웅장한 대웅전을 비롯하여 지장전, 승보전, 박물관, 음향각, 행해당, 목우헌, 인월암, 진여문, 무형문, 효봉선사 영각 등을 신축하셨고 대웅전에 삼존불, 사대보살 지장전에 지장보살, 좌우보처, 십대왕, 승보전에 본존불, 좌우보처, 1200 스님 상을 조성하여 봉인하셨고 또 대웅전 안의 사리탑을 조성하셨으며 그리고 현재는 구산스님 추모 사리탑, 사적비, 공덕비 등을 조성중이다.
그리고 천여 년 말없이 버티어 온 큰 가람답게 송광사는 긴 역사와 더불어 가장 많은 사찰 문화재를 가지고 있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목조삼존불감(국보 42호), 고종제서(高宗制書 : 국보 43호), 국사전(國師殿 : 국보 56호) 등 국보 세 점, 금동요령(보물 176호), 대반열반경소(보물 90호)를 비롯 보물 열두 점, 천연기념물 88호인 곱향나무 쌍향수와 지방문화재 여덟 점 등 성보(聖寶)외에도 추사(秋史)의 서첩(書帖), 대원군의 난초족자 등 문화재들이 자체 박물관에 전시돼 산사를 찾는 이들을 반기고 있다.
부처님처럼 지혜광명을 온 누리에 비쳐 온, 한국불교의 주춧돌 역할을 해온 송광사의 늦은 밤, 걸음을 재촉해 일주문을 나선다.